기자명 손진석 기자
  • 입력 2020.01.27 09:00

“옛 전통주는 아무리 마셔도 정신 놓을 만큼 취하지 않아”
2013년부터 전통양조장 관광 상품화…다양한 술맛과 이야기 담겨

갓 술성된 탁주를 시음을 위해 잔에 담고 있다. (사진=손진석 기자)
갓 숙성된 탁주를 잔에 붓고 있다. (사진=손진석 기자)

[뉴스웍스=손진석 기자] 우리나라에서는 술은 마시는 것이 아닌 먹는다고 표현한다. 술을 음식의 하나로 보기 때문이다.

우리의 술은 약주(藥酒)라고 불리기도 한다. 술 마시러 가자고 할 때 “약주 한잔하러 가자”고 말한다. 약주(藥酒)에는 맛있는 술이라는 의미와 건강에 도움을 주는 술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약주는 집을 찾는 귀한 손님에게 대접하거나 집안 대소사 때 식구가 함께 마시는 하나의 음식으로서 집에서 직접 만들었다. 현재 주류산업 내에서는 약주를 만들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최근 우리 전통주의 대중화가 점차 이뤄지고 있는 모습이다. 먼저 정부가 일제 강점기부터 사용되던 주세법을 개정하는 등 규제 완화를 시행하고 있고, 찾아보기 어려웠던 전통주를 판매하는 업소들이 증가하면서 대중화·상업화가 진행되고 있다. 심지어 한류 붐에 힘입어 수출도 되고 있다. 그저 명절 선물로 여겨졌던 전통주가 일상의 삶속으로 스며들어 또 다시 전성기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 술은 달고 부드럽고 과일향 깊은 방향주(芳香酒)

옛 사람들은 술을 적게 마시면서 술이 갖는 고유한 풍미를 음미하려고 했고 계절에 맞는 약재를 술에 넣어 자연의 흐름에 건강을 맞췄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단 맛이 강한 술을 선호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통주 생산 업체의 한 대표는 “과거 조상들이 손수 빚어 즐겼던 가양주들과 지금의 술들은 전혀 다르다”며 “우리 술은 맛이 달고 부드럽고 과일향이 깊은 향취가 있는 방향주(芳香酒)다. 지금의 술처럼 알콜 도수가 높아 조금만 마셔도 금세 취하는 그런 술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간 맥이 끊긴 채 구전과 문헌으로 전해오던 석탄주, 감향주, 방문주 등 수십 종의 전통주들을 재현해본 결과 전통주는 아무리 마셔도 정신을 놓을 정도로 취하지 않았다”면서 “그렇다고 숙취가 있는 것도 아니며, 아무리 취하고자해도 취할 만큼 많이 마실 수 있는 술이 아니다”라고 했다.

한국전통주연구소 박록담 소장이 내외주가 뜨락에서 풍류회를 진행하고 있디. 이 자리에서 복원된 전통주와 다양한 계절주의 시음회를 진행했다. (사진 제공=삶과술)
한국전통주연구소 박록담 소장이 내외주가 뜨락에서 풍류회를 진행하고 있디. 이 자리에서 복원된 전통주와 다양한 계절주의 시음회를 진행했다. (사진 제공=삶과술)

현재 재현된 전통주들 중에서 도수가 높은 술은 한꺼번에 많이 마시더라도 빨리 깨는 것이 특징이라는 점도 이채롭다.

◆술 맛 좀 볼까?…찾아가는 양조장

그동안 전통주 복원에 많은 사람들이 매진한 덕분에 전국에 많은 양조장이 들어섰다. 지역 특색에 따라 운영하면서 관광 상품으로서도 충분한 가치를 가지게 되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는 2013년부터 이런 지역의 양조장을 관광 상품으로 육성해 우리 술 본연의 풍미를 현장에서 직접 느끼고 즐길 수 있도록 ‘찾아가는 양조장’을 선정하고 지원하고 있다.

‘찾아가는 양조장’은 지자체의 심사를 거쳐 추천된 양조장을 대상으로 술 품질인증, 양조장의 역사성, 지역사회와의 연계성, 관광요소, 품평회 수상이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선정한다. 국순당(횡성), 도란원(영동), 좋은술(평택), 배상면주가(포천), 우리술(가평), 신평양조장(당진), 대강양조장(단양), 태인합동주조장(정읍) 등 전국 38개 양조장이 뽑혔다. 단지 아쉬움은 전통주가 아닌 지역특산주와 와인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선 3대 명주인 감홍로 죽력고 이강주 (사진 제공=김원하 기자)
조선 3대 명주인 감홍로 죽력고 이강주 (사진 제공=김원하 기자)

선정된 양조장들은 모두 특색이 있다. 술맛도 다 다르다. 더욱이 술 만들기 체험과 일부 양조장에는 돌아갈 생각 말고 술맛을 제대로 보라는 뜻에서 숙박 시설이 구비되어 있는 곳도 있다. 잠시 들려 관광하듯 돌아본뒤 맛있는 술 한병 구입해도 좋고 직접 술을 담그고 술이 익을 때 찾아와 한잔해도 좋은 곳들이다.

그 중 특색 있는 몇 곳을 소개한다.

먼저 경기도 포천에 있는 배상면주가의 산사원은 술익는 냄새가 발길을 사로잡는다. 여기에는 전통주박물관과 정원 등이 있다. 국순당의 창업주 우곡 배상면 선생의 일대기와 씨 누룩 등을 볼 수 있다.

서울의 강남 테헤란로에는 전통주 갤러리가 있다. 이달의 시음주를 선정해 매달 무료로 전통주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는 곳이다. 갤러리에 들어가면 세계 맥주만큼 다양한 전통주에 놀라게 된다.

전북 정읍시 태인면에 위치한 무형문화재 송명섭 명인이 운영하는 태인합동주조장을 찾아 죽력고를 맛보기를 권한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죽력고는 최남선이 조선상식문답에서 조선 3대 명주로 곱았던 술이다.

푸른 대나무를 토막 내 항아리에 넣고 불을 지펴 대나무 몸통을 상하지 않게 온전하게 진액을 내린다음 대잎, 솔잎, 생강, 석창포, 계심 등 약초와 함께 상온 증류하여 소주를 내리듯 만드는 죽력고는 알싸하고 상쾌한 맛과 대나무 향이 묻어 있는 투명한 황색을 띄는 30~35도의 재래식 소주다.

죽력고에는 전봉준 장군의 이야기도 전해진다. 전봉준 장군이 전북 순창 상치에서 전투에서 져 일본군에게 잡혀 두들겨 맞아 만신창이가 되어 기력을 차리지 못할때 죽력고 몇 잔을 마시고 기운을 차려 서울까지 꼿꼿하게 갔다고 한다.  

태인합동주조장의 또 다른 전통주인  '송명섭 막걸리'는 전통 방식으로 주조되어 그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막걸리 판매를 시작하는 당일 미리 줄을 서지 않으면 맛보기 힘들만큼 인기가 좋다. 

그동안 잊혔던 우리의 전통주는 이제 겨우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물론 아직 옛것을 완벽하게 살려내지는 못했다. 그동안 습관처럼 일제 강점기부터 쉽게 술 만드는 방법을 사용해왔기에 전통방식의 술 담그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또한 입국과 첨가제로 만들어진 속성주 술맛에 길들여진 소비자들도 전통주의 술맛이 어색할 수 있다.

2016년 대한민국 명주대상에 출품된 전통주 (사진=손진석 기자)
2016년 대한민국 명주대상에 출품된 전통주. (사진=손진석 기자)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리는 대한민국 우리술축제와 가평 자라섬 막걸리 축제,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 등 다양한 전통주 축재와 품평회도 매년 진행되면서 점차 전통주에 대한 인식과 입맛이 개선되고 있다. 우리 전통주를 옛것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많은 장인들이 전국 곳곳에 있다는 점과 정부의 다양한 전통주 지원 정책에 힘입어 일제 강점기 이전의 우리 가양주 문화가 되살아나기 위해 싹트고 있다는 점도 희망적이다.    

좋은 술을 만나면 좋은 벗과 주거니 받거니 대작하고 싶어진다. 한 잔 술을 마시면 근심걱정이 사라지고, 두 잔 술을 마시면 득도(得道)를 한다. 여기에 한잔 더 해 석 잔 술을 마시면 신선(神仙)이 된다하니 술을 멀리 하기는 힘든 일인지도 모른다. 사실 신선이 될 만큼 좋은 술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오는 10월 1일 추석에는 지역 양조장에서 만들어진 품질 좋은 전통주를 차례 상에 올려보자. 슈퍼마켓에서 팔리는 술보다 더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신토불이(身土不二)라고 지역의 쌀을 사용해 생산한 이러한 술들을 차례 상에 올리는 것은 조상에 대한 큰 덕목이기도 하지만 음복으로 술맛을 보는 술꾼들에게도 큰 즐거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