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장진혁 기자
  • 입력 2020.01.23 09:15

[뉴스웍스=장진혁 기자] 법령에서 정한 원칙을 아예 지키지 않으면서 수험생을 그저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는 것으로 보이는 공공기관이 있다. 바로 의료기사법을 따르지 않는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이하 국시원) 얘기다.

의료기사법에 따르면 국가시험에서 '실기시험'은 '필기시험 합격자'에 대해서만 실시한다. 의료기사법 시행령 제3조 2항은 "국가시험은 필기시험과 실기시험으로 구분하여 실시하되, 실기시험은 필기시험 합격자에 대해서만 실시한다. 다만, 보건복지부 장관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필기시험과 실기시험을 병합하여 실시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현실은 이런 규정과는 정반대다. 치과위생사 국가시험은 실기시험을 먼저 치르고 추후에 필기시험을 본다. 병합이란 단어 뜻과는 전혀 달리 시행되는 것이다. 게다가 실기시험을 치르고 난 뒤 합격 여부조차 필기시험 전에 알려주지 않는다. 수험생에게 '고통'을 이중으로 제공하는 셈이다.

치위생학과를 졸업하는 대학생들은 해마다 국시원이 주관하는 국가시험을 통해 면허증을 취득한다. 치위생사 국가시험은 매년 1회만 실시되기 때문에 수험생들이 갖는 압박감은 엄청나다. 시험에서 떨어질 경우 1년간 허송세월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같이 중요한 시험인데도 의료기사법을 따르지 않은 채 버젓이 실시되고 있다.

국시원은 치위생사 국가시험에 대해 실기시험을 먼저 실시하고 한 달 뒤에나 필기시험을 치르게 하고 있다. 제멋대로 순서의 앞뒤를 바꾼 것이다. 이에 비해 물리치료사 국가시험의 경우에는 필기·실기시험이 병합돼 하루에 모두 시행된다.

치위생사 국가시험도 법 규정대로 필기시험 합격자만 실기시험을 실시해야 하고 부득이할 경우 같은 날 실시하는 것이 맞는데도 잘못된 관행이 계속되고 있다. 더구나 실기시험 합격 여부를 필기시험이 끝난 뒤 한꺼번에 공개해 수험생들의 부담감과 허탈감을 증폭시킨다.

(사진출처=국시원 홈페이지)
제47회 치위생사 국가시험 일정. (사진출처=국시원 홈페이지 캡처)

예를 들어, 제47회 치위생사 국가시험의 경우 실기시험은 지난해 11월 16일에, 필기시험은 지난해 12월 15일에 실시됐다. 이에 수험생들은 한 달간 자신의 실기시험 합격 여부를 모른 채 필기시험에 심혈을 기울여야 했다. 

제47회 치위생사 국가시험을 본 송OO 씨는 "필기·실기시험의 순서가 바뀐 것은 수험생 입장에서 큰 스트레스로 다가온다"며 "실기시험 결과를 모른 채 필기시험을 봐야 하는 것도 불안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송OO 씨의 국가시험 결과, 실기시험에서 불합격했고 필기시험에서 합격했다. 실기시험에 불합격한 사실은 나중에 같이 발표되기에 그녀는 필기시험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

송OO 씨는 "만약 실기시험에서 떨어졌다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필기시험을 당장 공부하지 않고 아르바이트나 취업 준비를 했을 것"이라며 "한 달간 열심히 공부해서 필기시험에 합격했음에도 실기시험 불합격 사실을 몰랐기에 허탈감이 매우 컸다"고 말했다.

송OO 씨의 경우처럼 한 가지 시험이라도 불합격했다면 다음 해에 다시 처음부터 실기시험과 필기시험을 치러야 한다.

더욱이 시험 범위에 포함되는 과목인 '의류관계법규'에는 '국가시험은 필기시험과 실기시험으로 구분하여 실시하되, 실기시험은 필기시험 합격자에 대해서만 실시한다'라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 내용은 시험문제로 출제될 가능성도 있다. 국시원은 의료기사법을 따르지 않는데도 수험생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법규를 달달 암기하는 격이다.

국시원 시험본부 관계자는 기자와의 전화를 통해 "현재 치위생사 국가시험은 의료기사법과 다르게 시행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보건복지부의 승인을 받아 실시되고 있다"며 "대학교 학사일정·취업 시기 등과의 조율로 인해 시험순서의 앞뒤가 바뀌게 됐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한 관계자는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간호사 등 24개 직종의 보건의료인 국가시험을 주관하다 보니, 빡빡한 일정으로 인해 시험순서를 국시원 편의에 맞게 바꿨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발 양보해 시험순서가 바뀌는 것까지는 넘어갈 수 있다하더라도 그로 인해 실기시험 결과를 나중에 알려주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게 수험생들의 입장이다.

송OO 씨는 "실기시험은 총 4분간의 짧은 시간 동안 실시되며 채점위원 2명이 즉시 채점한다"며 "채점 결과가 바로 나오는데 왜 나중에 필기시험 결과와 동시에 알려주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여기에 더해 실기시험은 모든 시험이 끝나도 감점요소를 알려주지 않는다. 국시원 측은 필기시험 문제의 모범답안에 해당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내세운다. 국시원은 국가가 주관하는 보건의료인 시험을 독점으로 주관한다. 이러다 보니 갑의 자세가 은연중 밸 수밖에 없다.

더구나 치위생사 국가시험의 응시수수료는 13만5000원에 달한다. 국시원이 실기시험 결과를 당장 알려주지 않는 이유는 미리 불합격 사실을 알고 필기시험을 치르지 않는 수험생에게 일정 금액을 환불해줘야 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만약 이런 지적이 진실에 가깝다면 국시원은 불공정의 화신일 뿐이다.

수험생들은 원칙대로 시험을 치르고 그 결과를 제대로 알 권리가 있다. 국시원이 그저 수험생들을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는 시험평가기관이 아니라면 말이다.

국가 의료면허증을 따는 첫 걸음부터 관련자 모두가 법을 지키지 않는 행태도 고쳐져야 마땅하다. 보건복지부부터 법령 개정을 통해 불법이 지속되는 것을 시정할 책임이 있음도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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