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3.16 16:59
남산에서 꽃이 가장 빨리 피는 남녘 자락의 올해 개나리다. 봄에 피는 꽃은 해마다 비슷하지만, 그를 보는 사람의 모습은 해가 갈수록 다르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 정치판에 달라지지 않는 사람은 아주 많다. 자리를 늘 그대로 지키고 있으니 말이다.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의 문장 가운데 즐겨 읽는 작품이 하나 있다. 복숭아와 오얏꽃 피는 봄날 열린 흥겨운 잔치자리에서 나온 글이다. 이름은 <春夜宴桃李園序(춘야연도리원서)>다. 봄의 흥취가 넘치는 파티에서 적는 글이라는 뜻이다.

그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무릇 하늘과 땅은 만물이 거쳐 가는 여관이요, 시간은 영겁을 지나는 손님(夫天地者萬物之逆旅, 光陰者百代之過客).” 또 맞이하는 봄날의 잔치에서 그가 생각하는 세상과 삶이 무엇인지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봄은 만물이 돋는 계절이다. 그래서 움이 터서 무엇인가 자라난다는 뜻의 ‘발생(發生)’이라는 단어 또한 원래 봄의 별칭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봄을 맞으며 흘러가는 시간, 곧 사라지는 세월을 느끼기도 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새로운 것이 헌 것을 대체하는 일도 거듭 이어진다. 새로움은 新(신), 이미 시간의 때를 탔음은 陳(진)으로 적기도 한다. 앞의 글자는 보통 나무를 새로 베어냈을 때의 상황을 일컬었다고 푼다.

陳(진)의 풀이는 조금 복잡하다. 원래는 군대가 어느 한 곳에 모여 떼를 이루는 陣(진)과 같은 뜻의 글자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늘어놓다’의 진열(陳列)이라는 뜻을 얻었고, 더 나아가 내버려 둬서 시간이 흐른 경우의 ‘옛 것’이라는 새김까지 획득했다는 풀이가 있다.

아무튼 우리는 그 두 글자로 신진(新陳)이라는 말을 만들었으며, 그 뒤에 ‘줄줄이 사라지다’라는 뜻의 대사(代謝)라는 낱말을 붙여 신진대사(新陳代謝)라는 성어까지 지어냈다. 새로움과 낡음이 서로 자리를 바꾸며 일정한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상황이다. 신구(新舊)라는 단어는 요즘 자주 쓰는 말이다.

경질(更迭)은 우리 쓰임에서 ‘어느 자리로부터 물러나는 일’로 자주 등장하지만 이 역시 만물이 끊임없이 갈마드는 경우를 일컫는 말이다. 교체(交替), 경환(更換), 변환(變換) 등과 같은 맥락이다. 오래 머물고 싶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우리가 비켜갈 수 없는 일들이다.

중국에서 가장 긴 흐름을 보이는 장강(長江)의 물결을 묘사한 말이 재미있다. “장강의 뒷물이 앞의 물을 밀어낸다(長江後浪推前浪)”는 표현이다. 뒷물이 앞의 물을 끊임없이 밀어내면서 장구한 흐름을 이어가는 모습을 그렸다.

신진대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몸에 탈이 난다. 세상에서의 삶 또한 마찬가지다. 때가 와서 자리를 뒤의 사람에게 물려줘야 함은 달리 증명할 필요가 없는 이치다. 그러니 세월의 흐름에 따라 물러날 사람은 물러나는 게 바람직하다.

요즘 우리 정치판의 신구(新舊), 신진(新陳)의 교체와 갈마듦은 어떨까. 바꾼다고 바꾸지만 크게 바라볼 때 ‘그 나물에 그 밥’ 정도다. 새로운 이를 자리에 들이지 못하는 여당의 상황이 특히 그렇다. “해마다 꽃은 비슷하지만, 사람은 다르다(年年歲歲花相似, 歲歲年年人不同)”는 시구가 있다.

이 구절 달리 비틀어도 좋겠다. “해마다 피는 꽃처럼 사람들도 같네(年年歲歲花相似, 歲歲年年人又同)”라고 말이다. 새로운 물로 흐름을 잇지 못하면 닥치는 것이 정체(停滯)요, 더 나아가면 부패(腐敗)다. 이를 쉽게 건너뛰는 우리 정치인들의 배짱이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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