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현건 기자
  • 입력 2020.02.03 06:00

'일하는 국회법' 사실상 유명무실…여야 5당, 반성없이 남탓 공방 일관

13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국무총리(정세균) 임명동의안 표결을 진행하고 있다.(사진=전현건 기자)
지난 13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국무총리(정세균) 임명동의안 표결을 진행하고 있다.(사진=전현건 기자)

[뉴스웍스=전현건 기자] 국민의 대표로 구성된 국회의 본연 임무는 국민의 의사를 최대한 반영해 법률을 만드는 것이다. 또 입법기관인 국회는 법안을 처리하는 것 역시 중요한 임무다.

임기 말을 향해 달려가는 20대 국회는 사상 처음으로 2만 건의 법안을 쏟아내고선 정작 처리된 법안은 역대 최소였다. 그 결과, 19대 국회에 늘 수식어처럼 따라붙던 역대 최악의 '식물 국회'라는 악명을 물려받게 됐다.

뉴스웍스가 국회사무처 의사국 의안과에 확인한 결과에 따르면 현재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은 지난 31일 기준으로 역대 최고 규모인 2만3970건이었다. 하지만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된 법안은 7994건으로 처리율은 역대 최저인 33.3%에 그쳤다. 그 결과 법안 1만5976건이 본회의 문턱도 넘지 못한 채 국회에 계류됐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19대 국회에서는 접수된 법안 1만7822건 가운데 8013건이 처리됐다. 임기만료 폐기는 9809건으로 처리율은 44.9%다.

18대 국회는 접수 법안 1만3913건 가운데 7612건이 처리됐고, 임기만료 폐기가 6301건이었다. 처리율은 54%였다. 17대 국회는 7489건 가운데 4328건이 처리됐고, 3161건이 임기만료 폐기됐다. 처리율 57.7%다. 16대 국회에서는 2507건 발의 가운데 69.9%인 1753건이 처리됐다.

1996년 15대 국회부터 현재 국회까지 법안 처리율은 줄곧 하향세를 기록했다. 

◆국회 임기 만료 5개월 전…2월 임시국회서 비쟁점 법안만 처리 예상

문제는 20대 국회가 앞으로 5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난 30일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원내수석부대표가 2월 임시국회를 개최하는 데 합의했다. 하지만 총선을 앞둔 사실상 마지막 국회로 상임위에 계류된 법안들이 통과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긴 어렵다. 당 차원에서 총선 모드에 들어간 만큼 상임위 법안 처리에 물리적 시간이 부족하고 선거구 획정 같은 선거에 더 큰 힘을 쏟을 것이기 보여서다.

심지어 여야는 검찰 관련 문제와 우한 폐렴 대응책 등을 놓고 대립각을 세우고 있어 2월 임시국회는 비쟁점 법안으로 최소한의 범위에서 처리될 전망이다.

이렇게 국회 임기가 만료되는 순간까지 통과되지 못한 상당수 법안은 내용 한 번 검토 없이 자동 폐기된다. 역대 최악의 처리율로 생산성이 떨어지는 진정한 '식물국회'가 되는 것이다.

제 20대 국회 계류의안통계(사진출처=국회의안정보시스템 홈페이지 캡처)

그간 국회 회기마다 들어왔던 오명을 씻어버리기 위해 20대 국회는 출범하자마자 국회 정치발전특별위원회를 만들고 국회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국회의장 직속으로 여야 교섭단체에서 추천한 외부인사로 국회혁신자문위원회를 구성해 국회 개혁안을 내놓았다. 

그 결과, 국회 파행이 이어지더라도 각 상임위의 법안 소위원회만큼은 매달 두 차례 이상 열도록 하는 내용의 '일하는 국회법'이 지난해 통과됐다. 

하지만 일하는 국회법은 사실상 유명무실한 것으로 밝혀졌다. 어겨도 처벌받는 강제 규정이 없는 법이기 때문이다.

민주당 원혜영 의원은 지난해 12월 불출마 선언 기자회견에서 "일하는 국회를 만들고, 법과 제도로 보장하기 전에 현재 국회법 규정만 지켜도 국민이 보기에 훨씬 일하는 모습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원 의원은 "법률심사도 워낙 밀리니까 한 달에 두 차례 법안심사 개최하도록 여야가 합의해서 국회법에 넣었지만 안 지킨다"며 "어떤 때는 여야 정쟁이 있다 보니까 전면 보이콧 해서 안 하고, 정말 부끄러운 일입니다만 그런 일이 없는데도 바쁘다고 안 한다"고 토로했다.

17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 본관에서 열린 '제21대 국회의원선거 제1차 공직선거정책토론회'에 참석해 토론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바른미래당 임재훈 사무총장, 새로운보수당 정운천 공동대표, 더불어민주당 박정 의원,  자유한국당 백승주 의원, 정의당 김종대 의원이 지난 17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 본관에서 열린 '제21대 국회의원선거 제1차 공직선거정책토론회'에 참석해 토론하고 있다. (사진출처=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유튜브 캡처)

◆'역대 최악' 만들어 놓고 여야 5당은 남탓 공방만 일관

이런 와중에도 의원들은 이런 최악의 처리로 '식물국회'를 만든 책임에 대한 자성과 반성의 목소리조차 내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더욱이 역대 최악의 20대 국회를 놓고 '남탓 공방'으로 일관하고 있다.

여야 5당(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새로운 보수당, 정의당)은 지난 17일 21대 총선을 앞두고 열린 첫 정책토론회에서 20대 국회가 최악인 걸 인정하면서도 책임을 서로에게 돌렸다.

민주당 박정 의원은 "20대 국회는 여야 간 정쟁에 의해 민생이 희생된 국회"라며 "선거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을 통한 패스트트랙으로 인해 국회는 폭력 사태까지 일어났고 식물국회에 있어서 동물국회까지 진전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마지막 정기국회에서 데이터3법, 민식이법 등을 포함한 어린이안전 관련법, 유치원3법과 청년기본법 등을 통과시킨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면서도 "20대 국회는 최악의 국회로서 새로운 대한민국의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당 백승주 의원은 "지금까지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4+1이라는 끔찍한 혼종이 등장했다"며 "국회가 집권여당을 중심으로 이전 같지 않은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법안처리는) 원내교섭단체 간 협의를 통해 이뤄졌어야 한다. 예산 심의도 날치기로 넘어가는 모습을 지켜봤다"며 "국회가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보수당 정운천 공동대표는 "지난 1년 동안 패스트트랙에 올려놓은 선거법, 공수처법, 검경수사권을 갖고 1년 내내 '막장 국회'가 됐다"며 "한국당에 요구하고 싶다. 아무리 문제가 있는 법일지라도 교섭단체 속에서 독소조항을 빼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고 민주당도 3법이 그렇게 중요했냐"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여야 합의 없이 중요한 법들이 통과가 되면서 어떻게 20대 국회가 좋은 평가를 받겠냐"고 덧붙였다.

바른미래당 임재훈 사무총장은 "전반기에는 식물국회, 후반기에는 동물국회로 전락돼 국회가 국민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는 것이 아니어서 정치인 한사람으로서 석고대죄하는 심정"이라며 "21대 국회는 제3, 4세력이 등장해 국민께 절충과 소통의 정치, 화해와 협력의 정치를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말했다.

정의당 김종대 의원은 "국회가 시끄러운 것은 민주주의가 살아있다는 증거이지만, 20대 국회는 싸우는 것 자체가 목적이 돼서 문제였다"면서 "한국당이 태극기 부대에 점령돼서 협상에 나오질 않으니 동물 국회라는 불상사가 나온 것"이라고 비난했다.

전문가들은 생산성 최악의 국회에 대해 질 좋은 법안을 발의하는 것으로 해결될 문제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의원은 입법문제도 중요하지만 지역구 관리와 자신을 지지한 유권자들의 뜻을 대변하는 것도 의원의 임무다"며 "무조건 법안 수를 채우는 것 보다는 정말 쓸모 있는 법안을 처리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강윤 정치평론가는 "19대 국회와 큰 차이 없이 이번 국회도 진영 간 논리로 인해 생산성이 떨어졌다"며 '너죽고 나살자'는 식의 전투개념으로 원내전략에 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평가했다. 이어 "의원의 평가를 계량화하기 좋은 법안 통과를 대표적인 척도로 삼는다. 의원들이 생색만 내고 고생을 안 하면서 법을 만들어왔다"면서 "의원들이 고심하고 중요한 법안들을 노력해서 만들면 생산성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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