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태기 교수
  • 입력 2020.02.04 22:50

김태기의 경제클리닉 “민주화 이후 중산층 정책 실종…기술혁신·세계화 대응한 인적자원개발 방향 새로 정립해야”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우리나라는 경제성장으로 중산층이 증가했고, 중산층의 확대로 민주화에 성공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경제성장과 민주주의가 후퇴하면서 중산층이 감소했다. 중산층 증가(감소)와 정치경제 발전(후퇴)의 관계는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라 일반적 원리에 속한다. 이러한 관계는 중산층 감소에 따른 사회불안을 이용해 문재인 정권이 집권한 것과 그 이후의 상황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조국의 부패나 586의 패권주의로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이들의 무지가 경제를 위기에 빠뜨리면서 중산층은 급감했기 때문이다.

어떤 나라든 신뢰의 감소는 경제활동을 위축시키고, 중산층의 약화는 소비의 위축과 투자의 축소로 이어진다. 이러한 일반 원리는 지난 3년 사이에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정치와 경제 그리고 중산층의 붕괴에서 확인된다.

중산층의 기준은 다양하나 소득을 우선으로 본다. 소득분포 가운데 위치한 중위소득의 50% 이상부터 150% 이하의 가구를 중산층이라고 하는데,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중산층은 감소하다가 일시적으로 반등해 2015년 68%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2017년 64%, 2019년 58%로 낮아지면서 지난 4년 사이에 10% 포인트, 지난 2년 사이에 6% 포인트 떨어졌다. 반면, 50% 이하의 저소득층 비율은 2015년 13%에서 2019년 17%로 올라가 4% 포인트 올라갔다. 중산층이 고소득층으로 상승하기보다 저소득층으로 추락이 많았다는 점을 말해준다. 중산층은 현재의 소득을 넘어 미래에 대한 인식의 문제이기도 하다. 사회 분위기와 가치관이 중산층이라는 인식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객관적으로 중산층이지만 자신을 중산층으로 생각하는 비율은 높거나 낮다. 북부 유럽처럼 소득과 기회의 불평등이 작으면 중산층으로 생각하는 비율이 실제보다 높고 반대로 남부 유럽처럼 큰 나라는 비율이 낮다. 우리나라는 자신을 중산층으로 생각하는 비율이 객관적인 중산층 비율(58%)보다 훨씬 낮다. 5년 단위로 실시하는 통계청의 2019년 사회조사를 보면 본인보다 자식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고 응답한 사람은 29%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10년 전인 48%보다 무려 20% 포인트나 떨어진 것이다. 서울시의 최근 여론조사(2020년 1월)를 보면 69%가 불평등이 심각하고 60%는 기성세대와 청년 세대의 불평등이 심각하다고 느끼고, 불평등 인식은 30대가 가장 높다.

부모는 대학을 나오지 못해도 중산층이 되던 나라가 자녀는 대학까지 졸업해도 중산층이 되지 못하는 나라로 바뀌었다. 누구나 중산층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고도 경제성장에만 있지 않다. 우리나라는 경제성장과 함께 소득분배가 좋아져 국제기구와 세계적인 경제학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대부분 국가는 경제성장 초기 단계에 소득 불평등이 커지다가 어느 수준 지나면 정부가 복지 지출을 확대해 소득 불평등이 완화되기에, 노벨 경제학 수상자인 쿠즈네츠교수의 가설이 등장했는데 우리나라는 예외였기 때문이다. 그 비결로는 경제개발계획의 한 축으로 추진했던 중산층 정책을 지적한다. 우리나라는 유럽처럼 노동시장에서 결정된 소득을 정부가 사후적으로 재분배하는 정책보다는 일할 기회를 많이 만들고 소득을 키우도록 만드는 정책에 주력했다.

중산층 정책의 핵심은 교육정책, 노동정책, 산업정책, 복지정책 등의 연계에 있었다. 소득을 결정하는 교육의 기회를 확대하고, 취업 능력과 직결되는 직업교육·훈련을 강화하고,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을 지원하고, 재산을 증식하도록 저축과 주택제도를 만들고, 건강을 뒷받침하도록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성장과 분배가 선순환하도록 만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장점은 민주화 이후 유럽의 복지정책을 맹목적으로 따라가면서 살리지 못했다. 민주화 이후 전교조 바람이 불면서 교육은 노동시장과 단절되어 입시에 치중했고 직업교육·훈련을 무시했으며, 대학진학률이 올라갔으나 기업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어 취업률은 떨어졌다. 주택도 수요 억제에 기울어 폭등하도록 만들었다.

민주화 이후 중산층 정책은 실종되었다. 중산층 강화는 선거구호로 이용되었을 뿐 중산층을 위협하는 최대 요인인 기술혁신과 세계화에 어떻게 대응할지 방향조차 잡지 못했다. 기술혁신은 연구개발 투자확대, 세계화는 수출시장확대 정도로 간주하고 이에 따른 일자리의 원리 변화에 대해 눈을 감았다.

어떤 나라든 기술혁신과 세계화로 인해 고용과 소득은 일하는데 필요한 숙련(스킬: skill)에 따라 달라진다. 중숙련 일자리는 자동화로 그리고 저숙련 일자리는 중국 등 개도국에 위협받고 반면, 고숙련 일자리에 대한 수요는 증가한다. 숙련을 키우려면 교육은 물론 기업의 조직과 일하는 방식의 변화가 필수적이지만 오히려 숙련 형성을 방해하는 제도와 관행이 판치게 되었다.

미국은 중산층 강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핵심 정책을 인적자원개발에 두고 있다. 산학연협력을 강화해 교육과 노동시장의 연계를 강화하고 독일의 직업교육을 모방하면서 대대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독일은 디지털기술의 활용을 위해 산업 4.0정책을 추진하고 동시에 기술혁신 시대의 미래 노동을 위한 노동 4.0정책에 노사정이 협력한다. 북부 유럽은 개방경제의 이점과 약점 때문에 기존의 복지국가 모형에서 탈피해 복지와 노동시장의 연계를 강화하고, 근로자들이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움으로써 고용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정책을 추구한다. 이러한 변화는 중산층 감소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면 경제는 물론 사회불안을 피할 수 없다는 정치인의 자각이 정파와 이념을 초월했기에 가능했다. 우리나라는 지금이라도 중산층 정책의 새로운 방향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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