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현건 기자
  • 입력 2020.02.09 06:05

재탕·선심성 주류…민주당, 이용률 모를 공공와이파이에 혈세 5780억 투입
한국당, 내세울 자체 공약 없어…정의당, 청년표 얻으려고 인기영합주의 시도

김재원(왼쪽 세 번째) 자유한국당 정책위의장을 단장으로 하는 '국민과 함께 하는 2020 희망공약개발단'은 6일 국회정론관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안전 공약'을 발표했다. (사진=원성훈 기자)
자유한국당 김재원(왼쪽 세 번째) 정책위의장을 단장으로 하는 '국민과 함께 하는 2020 희망공약개발단'은 지난 6일 국회정론관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안전 공약'을 발표했다. (사진=원성훈 기자)

[뉴스웍스=전현건 기자] 21대 총선을 앞두고 각 정당은 경쟁적으로 공약을 쏟아내며 '공약 전쟁'에 한창이다. 겉만 번지르르한 발표와는 달리 유권자의 표심만 쫒는 나머지 현실성이 떨어지는데다 대규모 예산이 소요되는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더불어 과거에 나온 공약들과 별반 다를 게 없는 내용을 우려먹는 '재탕·삼탕'이라는 비판마저 받고 있다. 

아울러 각 정당은 이번 총선에서도 유권자의 관심을 받기 위한 '지르기' 식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는 비난도 받고 있다.

실제로 대통령 선거와 달리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공약 추진 계획을 따로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  

공직선거법 66조는 선거공약서에 선거공약 및 이에 대한 추진계획으로 각 사업의 목표·우선순위·이행절차·이행기한·재원조달방안을 게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대상을 대통령 선거와 지자체장 선거로만 제한하고 있다. 공약의 구체적인 추진 계획을 마련, 발표하지 않아도 되다보니 정당마다 유권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벤트성 정책을 마구 남발하는 실정이다.

재탕 공약부터 선심성 공약까지 

더불어민주당의 총선공약은 실행 시기와 재원 마련 방안이 모호하고 민생과 동떨어진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1호 공약은 올해부터 전국 모든 시내버스에 5100개, 초·중·고교에 5300개의 공공 와이파이 단말기를 설치하겠다는 것이다. 터미널과 복지시설, 문화시설에도 확대 설치해 2022년까지 공공와이파이 단말기를 5만3300개로 늘리겠다고 한다. 

문제는 마을버스, 박물관 등에 공공와이파이가 설치된다고 해서 과연 얼마나 쓸 지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이용률 예상조차 없이 막연히 통신비 절감이란 미명아래 혈세를 3년간 5780억원에 투입하는 것이 합리적인 결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국민을 위한 정책인양 포장해서 선전하고 있지만 결국 실효성이 낮은 포퓰리즘 정책"이라며 "시내버스나 터미널 등에서. 와이파이 수요가 그렇게 많을지 의문이고 책정한 예산도 턱없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더구나 정부가 소요하는 예산 집행을 위해 60조 원 가량의 적자 국채까지 발행하는 상황에서 여당은 지속적인 재정 부담을 주는 정책을 공약으로 내놓는 것도 문제이다.

아울러 이 공약은 지난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에서 공약으로 내세운 '와이파이프리 대한민국'과 다를 게 없는 '복사판'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심지어 공공 와이파이 구축은 2012년부터 진행돼온 정책 사업이다. 

민주당의 2호 공약도 허술하기는 마찬가지다. 우량 벤처기업을 연간 200개씩 선발해 집중 육성하는 '벤처강국 패스트트랙'은 이명박 정부에서 내세웠던 '한국형 히든 챔피언 육성' 방안과 유사하다.

매년 1조 원 이상 예산을 투입해 모태펀드 조성으로 벤처투자에 힘을 싣는다는 방침도 지난해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의 발표와 비슷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코스닥·코넥스 전용 소득공제 장기투자펀드 신설 계획도 문재인 정부 초반에 발표한 코스닥 벤처펀드와 차이점이 없다.

벤처업계 관계자는 "유니콘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을 특정 시점(2022년)까지 30개 육성하겠다는 목표를 선거 공약으로 발표한 것 자체가 난센스"라고 비난했다.

한국당, 정부 정책 실패에만 기댄 공약

한국당은 총선 공약을 정책 집행의 실현 가능성보다 '반(反)문재인' 구도로 초점을 맞췄지만 구체적인 대안 없이 정부 정책 실패에만 기댄 공약 발표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당의 1호 공약은 '탈원전 정책 폐기를 통한 전기요금 인하'였다. 한국당은 전기요금 인하를 위한 세부공약으로 에너지 관련법 개정,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월성 1호기 재가동, 원전산업 지원법 제정 등을 내걸었다. 정작 한국당은 국가 전반적인 재무건전성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중요한 탈원전 정책과 관련, 재원 조달·조정 방법은 물론 어떻게 실행할지에 대한 기준과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당의 2호 공약은 검찰총장 임기를 현행 2년에서 6년으로 연장하고 공수처를 폐지하는 검찰개혁이다. 국민의 삶이나 정책 집행의 실현 가능성보다 정부 여당의 정책을 비판하는 공약을 카드로 꺼내 든 것이다.

즉 한국당의 이같은 총선 공약 발표는 현 집권세력의 핵심 정책 실패를 부각하는 동시에 그만큼 대립각을 키워 보수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정권 심판론'의 성격을 띄고 있다.  

일각에서는 한국당이 정부가 펼치고 있는 정책에 반대하는 공약만 내세우며 자체적으로 정책을 생산해내지 못한 데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심지어 한국당 내에서도 "야당이 새로운 미래를 보여주기보다 정부가 하는 것에 반대만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정의당은 총선 1호 공약으로 자산 불평등 해소를 위한 청년기초자산제를 내세웠다. 정의당은 만20세 청년 전원에게 자립할 수 있도록 3000만 원의 지급 계획을 밝혔다.

문제는 재원조달 방안에 무리가 뒤따르는 숫자를 제시해 청년표를 얻기 위한 인기영합주의라는 것이다. 설령 청년 전원에게 지급한다해도 3000만 원으로 자립이 가능한지 의문이고 엄청난 현금이 갑작스럽게 시장에 유통되면서 초래될 부작용도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윤관석 정책위수석부의장이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2020총선 공약발표'에서 3호 총선 공약으로 '청년·신혼 맞춤형 도시 조성 등을 통한 주택 10만호 공급'을 제시하고 있다.(사진=더불어민주당 홈페이지 캡처)
더불어민주당 윤관석 정책위수석부의장이 29일 국회에서 3호 총선 공약으로 '청년·신혼 맞춤형 도시 조성 등을 통한 주택 10만호 공급'을 제시하고 있다.(사진=더불어민주당 홈페이지 캡처)

주거공약 정책 역시 삼탕…포퓰리즘 지적

각 정당이 공통적으로 내놓은 부동산 공약 역시 20대 총선 공약과 비교했을 때 미흡할 뿐만 아니라, 재탕·삼탕에 그친다는 비판이 나왔다.

참여연대가 지난 4일 주거권네트워크 주최로 열린 '21대 총선 주거 공약 평가 좌담회'에서 발제자들은 민주당과 한국당 정책에 대해 "정책 방향성과 표를 의식한 계획안"이라고 비판했다. 또 민주평화당과 정의당에 대해선 '현실성' 문제가 지적됐다.

이번 평가는 주거권네트워크가 여야 4당의 21대 총선 주거 공약을 20대 총선과 비교한 것이다.

우선 민주당이 총선 3호 공약으로 내세운 '청년·신혼부부 맞춤형 주택 10만 가구 공급'에 대해 정책 대상의 요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용찬 민달팽이유니온 기획국장은 "이번에 나온 총선 공약은 정책대상을 청년·신혼부부로만 한정하고, 주택공급을 우선하면서 취약계층 주거지원정책과 주거복지를 제외했다"며 "실상은 경기부양을 위한 도시개발정책을 '청년팔이'를 통해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특히 민간임대차 시장에서 세입자 권리의 개선과 청년을 비롯한 주거 취약계층의 주거문제 해소가 중요한 과제이기 때문에 집권여당으로 주택 임대차보호법 개정에 대해 책임 있는 태도를 보여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당 총선 공약에 대해 일관성이 없고 과거 재탕 정책이란 비판이 있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서민과 중산층의 주거 문제 해결과 모든 사람의 주거권 실현이라는 국가 의무를 내버려둔 채, 이명박 정부의 '종합부동산세 무력화'와 '뉴타운' 정책, 박근혜 정부의 '빚내서 집 사라',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폐지' 정책을 재탕, 삼탕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한국당의 부동산 정책은 진영 논리가 반복되고 있다"며 고가주택 보유자와 서울·1기 신도시라는 특정 계층·지역 맞춤형 대책에서 벗어나 전반적인 정책 보완 및 개선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현재 정당들은 국토교통부보다 못한 정책을 내고 있다"며 "공약이란 미래설계인데 이를 위해 정치권은 무엇을 고민하는지 묻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의당 공약은 상대적으로 지지를 받았으나, 구체적인 계획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김대진 변호사는 "무주택 세입자 주거권 보장을 위한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 상한제 도입을 주거 공약의 상위에 내세운 점은 긍정적"이라면서도 "20대 공약에 있던 깡통주택 피해를 막기 위한 공정임대료 도입, 전세보증보험 의무화 등의 세입자 보호 대책이 이번 공약에 빠져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상속과 부모 부양 등으로 부득이하게 2주택을 보유하게 되는 경우가 있고 주거·부동산 정책 담당자에 대한 이해충돌에 대한 고려도 함께 이뤄져야 하는 만큼 구체적 범위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 변호사는 민평당의 '10년간 1억 원 주택 100만 가구 공급' 공약에 대해 "현실성에 대한 구체적인 검토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100만 가구 공급을 위한 주요 재원으로 도시재생 뉴딜 사업 전면 중단, 저출산 대책 예산 활용을 들고 있다"며 "도시재생사업 또한 전면 철거 방식의 재개발·재건축 사업의 대안으로서 신규주택 공급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출산대책 에산 역시 이미 다른 사업에 배정됐거나 배정될 예산인만큼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부연했다.

신율 정치평론가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정치권이 선거 때마다 재탕·삼탕 공약과 이벤트성 공약을 내놓은 가장 큰 이유에 대해 "공약을 국민에게 지키지 않고 선거를 이기기 위한 도구로만 쓰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실제 총선에서 공약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한뒤 "이론적으로 공약이 참 중요하지만 유권자들이 공약을 보고 사람을 뽑지 않는다. 선거홍보물을 보고 뽑는 사람이 대부분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면서 "공약 자체가 일반 시민들이 분석하기 어렵다"며 "유권자들이 나중에 따지지 않기 때문에 정당 차원에서 공약 이행률에 대한 부담이 없다"고 지적했다. 공약에 드는 예산이나 입법 계획 등을 유권자가 쉽게 파악할 수 없는 상황을 정치권이 악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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