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태기 교수
  • 입력 2020.02.11 00:10

김태기의 경제클리닉 “시대착오적 노동운동과 정책이 한국 망쳐…노조 특권 줄이고 기술혁신 수용해야”

김태기 단국대 교수
김태기 단국대 교수

“누가 영국을 지배하는가?”

영국병을 치유했다고 평가받는 대처 수상의 선거 출사표다. 노동조합과 이를 등에 업은 노동당의 친노조 정책은 영국을 병자로 만들었다. 노동조합은 툭하면 파업을 일으켰고 정부는 노동조합의 요구대로 규제를 강화했다. 인건비 상승으로 물가가 올랐고, 기업의 투자와 일자리가 줄어 실업률이 올라가고 성장률은 추락했다. 우수한 사람들은 해외로 떠나고 재정적자는 눈덩이처럼 커지면서 경쟁력은 떨어졌다. 대처는 보수당의 강령부터 뜯어고쳐 1호 강령에 노동조합의 권리와 책임의 균형을 달성한다고 못박았다. 대처는 포크랜드를 놓고 아르헨티나와 전쟁을 벌일 때도 영국의 번영과 영국민의 자유는 아르헨티나가 아니라 영국 노동조합 때문에 위협받는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내막을 보면 더 심각하다. 대기업은 물론 언론방송도 장악한 민주노총이 문재인 대통령을 만들었다. 문 정권은 민주노총 요구대로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으로 노동시장을 통제했다. 민주노총이 불법 파업을 벌이고 경찰은 폭행당해도, 건설현장에서 채용과 구매에 부당하게 개입해도 정부는 눈감았다. 이러면서 일자리가 사라지고 성장률은 거의 반 토막 났고, 그 실패를 세금으로 메우면서 재정이 적자로 바뀌었다. 또 동일노동 동일임금, 노사공동결정제도, 공무원의 단체행동 허용 등 민주노총의 요구는 문 대통령의 헌법개정안에 담겼다.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통해 자본의 탄압을 분쇄하도록 정치경제투쟁 한다는 민주노총의 강령은 실현되고 있다.

민주노총과 문 정권의 시대착오적인 노동운동과 노동정책이 한국을 망치고 있다. 노동운동이 정치 노선을 밟고 좌파 사회민주주의가 득세하는 유럽도 한국과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유럽노동조합연구소(ETUI)는 ‘디지털시대의 노동기본권’을 위해 노동조합이 기술혁신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고 했다. 기업과의 관계가 경쟁적인 미국의 노총(AFL-CIO)도 ‘디지털시대의 노동조합’에서 노동조합이 과거에 매달리면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능력을 스스로 약화한다고 했다. 유럽의 사회민주당들은 노동조합과의 밀월관계를 끝내고 경제사회정책을 노동조합 중심에서 일반 근로자 중심으로 전환하고, 이에 맞는 새로운 노동시장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노동 개혁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독일이 슈뢰더 수상의 노동 개혁으로 실업률을 줄이자 노동시장에 대한 통제가 심한 프랑스 등 남부 유럽은 ‘혁명적인’ 노동 개혁으로 침몰하는 경제를 살리고 있다. 마크 롱 프랑스 대통령은 ‘해고는 쉽게 고용은 더 쉽게’로 노동 개혁을 밀어붙인다. 개혁에 반대하는 세력에 대해 ‘노동법이 청년 일자리를 막고 정규직의 배만 불린다면서 기업을 키우지 않고 근로자를 보호할 수 있다는 착각, 부를 창출하지 않고 부를 재분배할 수 있다는 착각’에서 깨어나라고 요구했다. 이탈리아의 렌치 총리는 정규직 채용 후 3년간 해고 금지 조항의 적용을 배제하도록, 스페인의 라호이 총리는 매출이 감소하는 기업은 노동조합과 합의가 없어도 근로조건을 변경할 수 있도록 노동법을 개정했다.

우리나라 노동시장은 유럽보다 더 심각하다. 중소기업·비정규직의 고용 비중은 높으나 대기업·정규직과의 임금·근로조건 격차가 크고,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이동은 보기 어렵다. 이러한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의 핵심 원인은 노동조합의 과도한 이익 추구에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의 최근 보고서(2020)를 보면 대기업·정규직·조합원의 근속연수는 13.7년으로 중소기업·비정규직·비조합원(2.3년)에 비해 약 6배가 길다. 월평균 임금은 대기업·정규직·조합원은 424만원으로 중소기업·비정규직·비조합원(152만원)보다 2.8배 높다.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는 호봉제와 평생직장 고용 관행이 대기업·정규직과 중소기업·비정규직 임금 격차 확대의 주요 원인이다.

호봉제운영은 100인 미만 기업이 15.8%지만, 300인 이상 대기업은 60.9%로 4배 많다. 근속기간이 1년 미만 근로자 대비 1~5년의 임금은 한국이 1.59배, 덴마크가 1.18배다. 그러나 근속 1년 미만과 근속 30년 이상 근로자의 임금 격차는 한국이 4.39배, 덴마크가 1.44배로 크게 난다. 단체교섭을 통해 결정되는 성과급제도는 임금 격차를 더 벌린다. 한국은행의 연구(2018년)를 보면 기업 규모에 의한 임금 프리미엄은 호봉에 따라 결정되는 고정적인 임금 기준으로 29.35%, 성과급까지 고려하면 44.03%로 더 벌어진다. 유럽의 경우 기업 규모에 의한 임금 프리미엄이 덴마크는 0.6%로 거의 없고, 유럽에서도 가장 높은 스페인도 4%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노동조합이 공공부문과 대기업에 심하게 편중되어 있다. 노동조합 조직률이 공공부문(70% 근접)은 민간부문(10% 근접)보다 7배 정도 높다. 미국(5배), 프랑스(3배), 노르웨이(2배)보다 훨씬 크다. 민간은 기업 규모에 따라 격차가 크다. 조직률이 1,000인 이상이면 70% 넘고, 100-299인 기업은 15%, 30인 미만은 0.2%로 사실상 제로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의 조합원 규모별 분포는 대기업의 비중이 평균 60%로 한국(90%)보다 훨씬 낮다. 그러나 한국은 고용 비중이 대기업이 9.7%에 지나지 않고 30인 미만 기업은 67%나 된다. 우리나라 노동조합이 정부의 인·허가와 시장지배 등 독점적 지대에 기대기 때문에 노동시장 이중구조문제가 악화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노동운동과 노동정책이 바뀌어야 노동시장 이중구조도 해결할 수 있다. 대기업·공공부문 노동시장을 유연화하도록 노동조합의 특권은 줄이고 노사관계가 힘의 균형을 찾도록 만들어야 한다. 또 중소기업·비정규직 근로자의 임금·생산성이 올라가도록 고용의 안정성을 높이고 숙련을 키울 수 있도록 직업훈련을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다음과 같이 노동 개혁에 나서야 한다.

첫째, 노동조합도 헌법을 준수해야 한다. 헌법이 노동기본권을 부여하기에 노동조합은 헌법 전문대로 기회균등과 능력 발휘 노동시장을 존중하고, 헌법 119조1항 대로 자유와 창의를 경제 질서의 기본원리로 받아들이며, 독점적 지위에 있는 대기업·공공부문 노동조합은 119조2항의 경제민주화 규정대로 경제적 약자를 배려해야 한다. 민주노총은 헌법에 맞게 강령을 수정하고 사회주의로 체제 전환이 목표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미국의 1947년 노사관계법 개정(타프트-하틀리법), 영국 대처 수상의 노동법 개정이 그랬다.

둘째, 노동조합이 본연의 역할과 사회적 책임에 충실해야 한다. 근로자의 자주적 결사체인 만큼 노동조합의 선거와 회계를 투명하게 만들어 조합원은 물론 이해관계자의 신뢰를 높여야 한다. 기업에 재정적으로 의존하지 않도록 만들어 노동조합이 대기업·공공부문에 집중되고 지급능력이 떨어지는 중소기업의 근로자는 노동조합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모순을 해소해야 한다. 또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처럼 노동조합의 부당노동행위를 도입하고 노사의 투명성을 높이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것은 미국의 1947년 법 개정과 1959년 노사의 보고 및 공개법 제정(랜드럼-그리핀법), 영국 대처 수상의 노동법 개정 핵심이다.

셋째, 기술혁신을 수용하고 이에 따른 고용불안에 대응하도록 노동시장의 유연·안정성을 높여야 한다. 이를 위해 임금 결정이 개별 기업의 성과와 생산성을 반영하도록 호봉제를 폐지하고 단체교섭 관행도 개선해야 한다. 또 직업교육·훈련과 고용안정서비스가 중심이 된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강화하고, 고용과 복지의 연계를 강화해 취약 계층 근로자의 노동시장 상향이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이러한 개혁은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각국이 추진하는 노동 개혁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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