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0.02.15 18:05

2030세대 인식 변화…대학가 일대 골목엔 반지하 점포 즐비

영화 속 주인공 기택(송강호 분)이 반지하 주택 안에서 바깥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영화 '기생충' 속 주인공 기택(송강호 분)이 반지하 주택 안에서 바깥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제공=네이버 영화)

[뉴스웍스=남빛하늘 기자]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The Oscars 2020)' 4관왕의 기염을 토하면서 영화의 배경이 된 '반지하(Ⓑanjiha)'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기생충 속 기택(송강호 분) 가족은 장마철엔 물에 잠겨버리고 평소 햇볕이 잘 들어오지 않아 눅눅함이 사라지지 않는 반지하에 산다. 반지하는 열악한 서민 주거지의 대표격으로 영화에서는 계층의 격차와 넘어서기 힘든 경계를 상징한다.

◆반지하 시초는 '방공호'…새 주택엔 더 이상 없어

반지하의 시초는 6‧25전쟁을 거친 뒤다. 혹시 모를 북한의 공습에 대비해 주택 지하에 방공호를 설치하라는 법이 지정됐기 때문이다. 이때 만들어진 반지하는 거주가 아닌 창고 목적으로 사용됐다.

반지하를 주거 공간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부터다. 이 공간은 당시 저소득층에게 주택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이 됐다. 집주인들은 창고로 사용하던 공간에 주방과 화장실을 설치해 월세 수익을 올릴 수 있었고, 세입자들은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서울 하늘 아래 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후 반지하 주택은 옥탑방, 고시원과 함께 '지‧옥‧고'로 불리며 서민 주거지의 상징이 됐지만, 최근 반지하에 거주하는 가구는 줄어들고 있다. 통계청 2010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반지하에 사는 가구는 전국 기준 3.0%였지만 2015년 1.9%로 줄었다. 같은 기간 서울은 8.8%에서 6.0%로 떨어졌다.

일단 공급이 줄었다. 요즘 새로 짓는 다세대‧다가구 주택에는 반지하를 만드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이 공간은 태풍이나 장마로 인한 침수 피해, 곰팡이 등 거주 환경이 열악해 최근에는 1층을 비워두는 필로티 구조나 1층에 주차장을 넣는 방식으로 이를 대신한다.

수요도 가뭄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반지하에 거주하려는 수요가 많이 줄었다"며 "반지하에 살면 사생활 노출 위험도 높고 곰팡이나 냄새 때문에 위생적이지도 못해서 요즘 젊은이들은 반지하 대신 옥탑방이나 고시원, 더 나아가 셰어하우스를 선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 마포구 상수동 일대에 있는 한 반지하 상가. (사진=남빛하늘 기자)
서울 마포구 상수동 일대에 있는 한 반지하 상가. (사진=남빛하늘 기자)

◆상업시설로 부활하는 반지하

이처럼 주거 공간으로 죽어가고 있는 반지하가 최근 상업시설로 부활했다. 20~30대 젊은층이 반지하 공간을 '힙(hip)하다'고 인식해 카페나 소품샵, 옷 가게, 펍(pub) 등으로 꾸미는 사업자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 실제로 젊은층이 많이 찾는 대학가 일대 골목에는 다양한 반지하 점포가 즐비하다.

성북구 성신여자대학교 부근 반지하 식당에서 만난 대학생 임모씨(24)는 "반지하여도 감성만 있으면 된다"며 "식당이 지하에 있든 1층에 있든 역세권에 있든 아무 상관이 없다. 사진 찍었을 때 예쁘고 감성이 얼마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마포구 홍익대학교 근처 A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요즘엔 식당이나 카페가 반지하에 있어도 거리낌 없이 찾아가는 경향이 있고 이를 오히려 멋진 것이라 생각한다"며 "이같은 현상 덕분에 상수, 합정, 홍대 인근 반지하는 공실도 잘 나지 않고 장사가 잘 되는 편"이라고 말했다.

마포구 합정동 소재 B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 역시 "평수에 따라 월세가 천차만별이지만 최소 200만원에서 300만원이 넘는 부담을 감수하면서도 반지하에서 장사를 이어간다는 것은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본다"고 귀띔했다. 이어 "권리금도 많이 올랐다"고 덧붙였다.

한편 반지하 상가는 지상 1층이나 상층부 점포에 비해 진입할 수 있는 업종도 제한적이고 외부에 노출이 쉽지 않다는 약점이 있다. 또 내부 설비 시공시 드는 비용도 꽤 부담스럽다.

이에 대해 권강수 상가의신 대표는 "지하층은 지상 1층보다 임대료 부담이 적어 매출부담도 줄고 여기에 상대적으로 넓은 점포 운영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면서도 "지하층에 관심이 있는 창업자라면 해당 지하층 입지를 면밀하게 먼저 따져본 후 장점과 단점을 철저하게 분석해 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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