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장대청 기자
  • 입력 2020.02.17 05:55

배기량 기준 세제 '구닥다리'…환경오염 vs 재산세 개념 놓고 정부·지자체 합의 절실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 모델(왼쪽)과 현대자동차의 2019 쏘나타. (사진=메르세데스-벤츠, 현대자동차 홈페이지)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 모델(왼쪽)과 현대자동차의 쏘나타. (사진=메르세데스-벤츠, 현대자동차 홈페이지)

[뉴스웍스=장대청 기자] 고가의 차라고 꼭 자동차세를 더 많이 내는 것은 아니다. 신차 가격이 6350만원인 벤츠 E300 모델 소유자는 2390만원에 판매되는 국산 차 쏘나타의 소유자보다 자동차세를 적게 낸다. 

이유는 간단하다. 외제 차 E300의 배기량이 국산 차 쏘나타보다 작기 때문이다. E300의 배기량은 1991cc이고 쏘나타는 1999cc이다. 따라서 벤츠 E300의 자동차세는 51만7660원이지만 쏘나타의 자동차세는 51만9740원이다.

현재 국내 자동차세는 배기량을 부과기준으로 삼고 있다. 자동차세는 매년 6월과 12월 자동차관리법 규정에 의해 자동차 소유자에게 부과하는 지방세다.

비영업용을 기준으로 배기량 1000cc 이하는 cc당 80원, 1001cc 이상 1600cc 이하는 140원, 1600cc 초과 시는 200원의 세액 단가가 매겨진다. 여기에 세액 30%를 지방교육세로 합산해 납부하게 된다. 이처럼 자동차세가 배기량 위주로 세금을 매기는 반면 건강보험료는 자동차의 배기량과 차량 가격, 사용연수 등을 포함해 보험료 등급을 판단한다.

자동차세의 기준을 배기량에 둔 시기는 1967년이었다. 과세 기준을 배기량으로 하는 이 방식은 합리성을 갖췄다. 대부분 배기량이 많아지면 출력이 강해져 가격도 올라갔기 때문이다. 또 배기량이 환경오염, 도로 손상, 에너지소비량 등과 비례한다고 판단되기도 했다. 배기량 기준 자동차세에는 그간 일반적으로 재산세의 성격과 도로손상, 교통혼잡 유발, 대기오염 등 사회적 비용 발생에 따른 부담금 성격 두 가지가 모두 부여됐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할수록 수입차를 중심으로 배기량은 작아도 높은 출력을 낼 수 있는 다운사이징 엔진 장착 차량이 많아지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배기량만 같으면 비싼 외제 차나 중저가 국산 차나 세금이 같다. 형평성의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테슬라의 전기차 테슬라 모델 S. (사진=테슬라 홈페이지)
테슬라의 전기차 테슬라 모델 S. (사진=다음 자동차 홈페이지 캡처)

특히 수소차와 전기차 등 친환경 차의 보급도 논란에 불을 지폈다. 

이 친환경 차들의 자동차세는 13만원이다. 수소차와 전기차는 배기량이 없기 때문에 지방세법에서 '그 밖의 승용자동차'에 속한다. 따라서 비영업용은 10만원, 영업용은 2만원 정도가 매겨진다. 1억원 대를 호가하는 렉서스, 테슬라 등의 친환경 모델들도 자동차세는 13만원만 내면 된다.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친환경 자동차 보유량은 총 60만1048대다. 정부의 친환경 차 및 수소충전소 보급확대 정책과 미세먼지 등 대기환경 인식 변화로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다. 수소차도 아직은 상용화 단계에 접어들지는 않았지만, 그 장점을 앞세워 미래 먹거리로 부상 중이다. 수소차는 지난해 4197대가 등록돼 1년여 만에 약 6배 증가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해 12월 12일 '자동차세 과세기준 개편의 현황과 향후 과제'를 발간하면서 "현행 자동차세 과세기준은 배기량 기준에 따른 과세로 공평부담 원칙에 어긋나고 자동차세에 에너지 효율 및 친환경 기능을 부여하지 못하는 등 과세기준이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세수 감소와 기준 정하기의 어려움으로 자동차법 개정은 미뤄지고 있다. (이미지=픽사베이)
기준 정하기의 어려움 등으로 자동차법 개정은 미뤄지고 있다. (이미지=픽사베이)

개정 방안의 방향은 크게 가격 기준과 이산화탄소 배출량 기준 두 가지로 나뉜다.

미국은 자동차 가격을 중심으로 자동차세를 측정한다. 50개 주 가운데 29개 주가 미국 자동차딜러연합이 발간하는 산정 기준에 따라 0.5~5%씩 자동차세를 매긴다. 유럽 지역은 지난해 전기차 판매량이 미국보다 두 배 가량 많았던 만큼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기준으로 하는 국가들이 여럿 있다. 독일은 가솔린 엔진과 디젤 엔진으로 나누어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따라 자동차세를 내고 프랑스 역시 환경세의 개념으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따라 부과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어떤 방법이 맞는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업계 관계자는 "가격을 기준으로 하면 오히려 친환경 차에 불리하게 적용될 수 있다. 중고차의 경우 가격이 정가로 잡히지 않는 데다 개인 간 거래가 많기도 하다"고 말했다. 차량 가액 기준으로는 과세 표준이 바뀌어 세수가 줄어드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한미 FTA 위반과 통상마찰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나오는 중이다.

지난 2015년에는 국회에서 배기량 기준 자동차세를 자동차의 가액 기준으로 변경하는 내용의 지방세법 개정안을 발의됐다. 가격을 기준으로 잡아 성능이 더 좋은 고가의 자동차를 소유할수록 세금 부담이 늘어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이 법안은 통과되지 못하고 계류됐다.

또 다른 이산화탄소 배출량 기준 방안에 대해서도 "이산화탄소 배출량과 연비 등은 2008년 8월 이전 자료가 따로 없는 실정이다"라며 "몇몇 테스트 차량만 선정해 측정하는 등 국내에선 과세 기준으로 삼기에는 정비가 덜 되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친환경 차 개발과 다운사이징 엔진 발전 등 자동차 기술은 앞으로 달려가는데 관련 법안만 뒤에 머무르는 것은 여러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자동차 이용자들이 느끼는 불합리함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기획재정부, 행정안전부를 중심으로 주요 지방자치단체 세제담당자들이 핵심 기준 개선에 합의하고 이를 도입하기 위한 주요 사안들을 정비해 나가야할 필요성이 크다.  

입법조사처 보고서는 "자동차세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는지에 따라 과세기준이 변경될 수 있으므로 자동차세 과세기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충분히 필요할 것이다"라며 "환경오염을 중시하면 이산화탄소 배출량 또는 연비 기준이 적합하고 자동차세를 재산세로 보면 차량가격이 적합한 기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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