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현건 기자
  • 입력 2020.02.15 07:55

'엉터리 자신감'이 설화(舌禍) 초래…일본 자민당 '막말 방지 매뉴얼' 참고할만

지난 25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해찬 대표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 원성훈 기자)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 원성훈 기자)

[뉴스웍스=전현건 기자] 4·15 총선이 60일 앞으로 다가왔다. 정치인이 부주의하게 내뱉은 '말실수'는 여태까지 공들인 좋은 이미지도 단 한 번에 비호감으로 만들면서 대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시기다.

역대 선거를 살펴보더라도 '막말' 하나로 선거판 전체가 흔들린 적이 있을 만큼 정치인들의 말 한마디는 주목도가 높고 그 여파도 크다.

민주당 당대표, 장애인 비하 발언… "공천 총괄하는 당 대표가 막말하는 코미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15일 당 유튜브 방송에서 "선천적인 장애인은 의지가 좀 약하다"고 말했다.

장애인을 비하한 이 발언으로 논란이 일자 민주당은 영상을 내렸고, 그 다음 날 이 대표는 공식으로 사과했다.

문제는 이 대표가 이런 발언을 한 것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2018년에도 장애인 비하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던 이 대표는 "그런 말을 여러 번 자주한 건 아니고 지난번에도 무의식적으로 했다고 말씀드렸다"고 전했다.

이 대표는 평소 이동 중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주고받는 '백브리핑'을 잘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말실수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과거 '실언'으로 선거를 앞두고 스스로 위기를 자초한 민주당은 막말에 대해 늘 긴장하는 모습이다.

당내에선 이 대표의 실언이 2004년 총선 당시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의 노인 폄하 발언처럼 총선 판도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하는 분위기까지 감지되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과거 경험을 교훈 삼자며 총선기획단 출범부터 공천 시 혐오 발언 이력을 검증하겠다고 해놓고 정작 공천을 총괄하는 당 대표가 막말하는 게 코미디"라고 비판했다.

실제 민주당은 지난해부터 막말과 같은 말실수와 선거법 위반 등 돌발변수를 막기 위해 예비후보자 대상 사전교육을 의무화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예비후보자들이 아닌 제어할 수 없는 높은 위치에서 나온 막말이 논란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최근 사회의 가장 민감한 이슈 중 하나인 부동산과 사법부에 관련해서도 논란은 비껴가지 않고 있다.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은 지난달 15일 부동산 매매 허가제를 언급하며 큰 논란을 일으켰다. 주택거래 허가제는 이미 참여정부에서 도입을 검토하다 위헌 소지 문제로 무산된 제도였지만 청와대 참모진이 이를 다시 꺼내 들었다.

정부가 "검토한 바가 전혀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제대로 논의된 적 없는 사안을 담당 업무도 아닌 정무수석이 언급한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시각이 대부분이다. 

심지어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강 수석이 사고 쳤다"며 논란을 진화했다.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달 12일 자신의 옛 지역구인 경기 고양시 주민들을 향해 "동네 물이 나빠졌다"고 말했다. 이 영상이 확산하면서 논란이 일자 김 장관은 지난달 20일 지역구 주민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 "저의 수양이 충분하지 못해 생긴 일"이라며 "앞으로 좀 더 성찰하고 정진하겠다"고 말했다. 본인은 안 나오지만 향후 일산에서 나오는 민주당 후보들은 다른 사람의 막말로 인해 총선 패배자가 될 수 있는 처지가 된만큼 후유증이 예상된다.

최근 검찰개혁 관련 추미애 법무부 장관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자 여당 내부에서도 발언에 대해 신중해 달라는 말이 나왔다.

민주당 김해영 의원은 지난 14일 추 장관을 향해 "국민의 오해를 사지 않도록 발언 하나하나에 신중을 기해주시길 당부드린다"고 강조했다. 김 의원은 "장관께서 추진하는 개혁 방안을 국민으로 하여금 정치적 사건과 관련 있는 것처럼 비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를 당부드린다"고 덧붙였다.

추 장관은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관련 공소장을 비공개 한 데 이어 윤석열 검찰총장과 협의 없이 검찰의 '수사·기소 판단주체 분리' 검토를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야권뿐 아니라 진보 성향의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등까지 최근 추 장관 언행을 공개 비판했다. 민변은 추 장관의 공소장 비공개 결정에 대해 "총선을 앞두고 정부가 사안의 공개를 원치 않는다는 의심을 키웠다"고 전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당대표(사진=전현건 기자)
황교안 자유한국당 당대표(사진=전현건 기자)

한국당 당 대표, '사태' 발언 구설…민경욱 의원 욕설게시물까지

제1야당인 한국당 역시 막말 파문에선 자유롭지 못하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지난 9일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무슨 사태'라고 지칭해 구설에 올랐다.

5·18은 당시 신군부가 '광주에서 일어난 소요사태'로 규정하면서 한때 '광주사태'로 불렸지만, 민주화 이후 '광주 민주화운동'이 공식 명칭으로 자리 잡았다.

황 대표는 5·18 민주화운동을 부적절하게 표현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광주 5월 단체와 지역 정치권도 황 대표의 발언에 비판하고 나섰다.

한국당은 "황 대표의 발언은 5·18민주화운동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며 "이 발언을 왜곡해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것엔 강력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한국당이 강력히 진화에 나선 이유는 이 발언이 가진 폭발성 때문으로 분석된다.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시각과 맞물린 이슈는 정치권 최대 이슈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당에서 제명 결정으로 인해 미래한국당으로 당을 옮긴 이종명 의원은 지난해 2월 "5·18 폭동이 일어나고 난 다음에 지금 40년이 됐다. 북한군이 개입한 폭동이었다는 것을 밝혀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 의원의 발언에 진보진영의 공세를 받은 한국당은 큰 어려움을 겪었다. 여론이 들끓자 한국당 윤리위원회는 곧바로 이종명 의원 제명을 결정했다.

올해 총선을 앞두고 이런 일이 반복된다는 것은 한국당으로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에서 긴급히 무마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이다.

황 대표는 구설에 오른 발언뿐 아니라 불교계에 육포를 보낸 행동에서도 소동을 일으켰다.

황 대표는 지난해 5월 열린 '부처님오신날' 법요식에서 다른 정치인들과 달리 불교식 예법인 '합장'을 하지 않아 '종교 편향' 논란을 불렀다. 이에 "제가 미숙하고 잘 몰라서 다른 종교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면 불교계에 사과드린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은 본인의 페이스북에 여권 인사들을 비판한 '욕설' 게시물을 올려 곤욕을 치르고 있다. 지난 13일 민 의원은 본인의 페이스북에 "이 씨XX 잡것들아"라고 시작하는 욕설 게시물을 올렸다. 문재인 대통령, 전직 대통령,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을 원색적으로 비판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이를 놓고 민 의원의 지역구인 인천 연수을에 출마를 선언한 이정미 정의당 의원은 입장문을 통해 "더 이상 막말과 욕설이 송도와 연수를 대표해서는 안 된다"며 "주민에게 자부심을 드리는 정치로 주민의 상처 입은 자존심을 회복하겠다"고 밝혔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민 의원의 글에 대해 "욕설은 집권 여당에 아무 타격도 주지 못한다"며 "외려 자기 진영에 치명적 타격을 줄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정치인은 국민의 분노를 정제된 언어로 분절화하여 표현해야 한다"며 "그런 능력이 없으면 정치하면 안 된다"고 꼬집었다.  

민 의원은 13일 후보자 면접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견제 세력은 '막말 프레임'을 이야기 하는데 당장 여쭤보면 제가 무슨 막말을 했는지 모른다"며 "(공관위원들에게) 기자 출신이라 직설적으로 얘기하고, 강한 메시지로 메신저를 공격한 것이라고 설명해 드렸다"고 전했다.

한국당은 이미 지난해 12월 11일 막말 파문 등으로 물의를 일으킨 경우 공천을 원칙적으로 배제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국민 정서, 보편적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 사회적 물의를 빚거나 혐오감 유발,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불합리한 언행 등과 관련된 경우 예외 없이 공천을 배제하기로 했다.

한국당 공천관리위원회도 공천 배제 기준마련에 착수했다. 막말 등으로 국민적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소됐거나 지난해 화두로 떠오른 공정 이슈와 관련해 '조국형 비리'에 연루됐을 경우에도 컷오프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김형오 공천관리위원장은 "'공정'이란 미명하에 공정성이 무너지고 있다"며 "위선적·작위적·가식적이고 뻔뻔스러운 사람들이 서민을 울리면서 서민을 위하는 척하는 일을 이번에는 없애는 모범을 보이려 한다"고 강조했다.

자민당 막말 방지 매뉴얼 내놓아…"유권자들이 막말 냉엄히 꾸짖는 자세 필요"

전문가들은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이 실언과 막말이 나오는 배경에 대해 "정치인은 주로 관심, 매력, 지지 등 3단계로 정치력을 실현시키는 데 그 첫 단계인 관심을 받기 위해 막말 유혹에 빠질 수 있다"며 "관심을 받는 가장 쉬운 길이 자극적 언어 사용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세간의 주목을 받고 싶은 정치인이 자신에게 충성도가 높은 극단 세력의 말을 더 듣다 보면 주변 사람들이 모두 같은 생각인 것 같은 환상에 빠지게 된다. 이런 '엉터리 자신감'이 설화(舌禍)를 초래한다.

이런 측면에서 지난해 5월 일본의 집권 여당인 자민당이 '입조심'을 위해 내놓은 '막말 방지 매뉴얼'은 우리 정치인들도 참고할만 하다.

매뉴얼의 첫머리에는 "발언은 편집돼 사용된다는 점을 의식하라"고 돼 있다. 본인의 발언 의도뿐만 아니라 언론에 의해 잘못 전달될 수 있음을 항상 기억하라는 뜻이다. 즉 오해의 소지가 있는 발언은 아예 하지를 말라는 것이다. 전 세계 모든 정치인이 귀담아들을 만한 말이다.

5개 항에 걸친 '입조심 패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첫 번째 '역사 인식, 정치 신조에 대한 개인 의견'을 개진하는 것을 조심해야 하고, 둘째 '성별·성소수자에 대한 견해'를 피력하는 것을 피해야 하며 세 번째 '사고·재해에 배려가 부족한 발언'은 절대 해서는 안 되고 넷째 '병이나 노인에 대한 발언'을 할 때는 극도로 조심해야 하며 다섯째 '친한 사람과 잡담할 때 사용하는 표현'도 되도록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율 정치평론가는 "과거에 막말을 했다 해도 지금 잘 나가는 정치인이 한둘이 아니다"며 "이런 차원에서 보면 유권자들도 반성할 측면은 있다. 막말을 정치판에서 몰아내기 위해서는 유권자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유권자들이 막말을 냉엄히 꾸짖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정치인이 비난받아 마땅할 일을 자주 하고 국민은 비판하지만, 때로는 우리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금이 그런 때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고 강조했다.

후보들의 정책 공약과 이행도 중요하지만 유권자들의 마음에 와 닿는 품격있는 말 한마디가 표심을 좌우한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는 것이 정치전문가들의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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