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왜 실패하나?⑰] 복지에 대한 착각이 복지를 망친다
[한국은 왜 실패하나?⑰] 복지에 대한 착각이 복지를 망친다
  • 김태기 교수
  • 승인 2020.02.17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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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기의 경제클리닉 “보편적 무상복지가 고용 악순환 초래…지속가능 일자리 통한 복지가 더 중요”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복지는 끝내자(end welfare as we have come to know it).”

1992년 출마 당시 40대 무명의 미국 민주당 클린턴 대통령이 내건 공약이다. 공약은 의회와 줄다리기하면서 1996년에 복지개혁법, 즉 개인의 책무와 취업기회 조화법(The Personal Responsibility and Work Opportunity Reconciliation Act)으로 다수당인 공화당의 찬성 속에 통과됐다.

복지개혁법의 핵심은 정부의 지원에 의한 한시적 복지를 지속 가능한 일자리 복지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대공황 극복의 뉴딜 시대에 도입된 1935년 사회보장법을 50년 만에 전면 수정해 정부에 의존한 복지는 줄이고 일을 통한 복지를 강화했다. 기술혁신과 세계화에 따라 복지에 대한 개인의 책무성을 강화하도록 취업기회와 이에 필요한 기본숙련훈련(Job Opportunities and Basic Skills Training)과 긴급지원(Emergency Aid)을 새로운 복지의 핵심 축으로 삼았다.

“복지정책이 복지를 망친다.” 복지국가의 전형으로 부러움을 받는 스웨덴이 내건 복지개혁의 이유다. 스웨덴은 1992년 정부 중심 복지를 시장 중심 복지로 개혁했다. 복지서비스 제공의 국가 독점을 깨뜨리고 복지에 민간 기업이 참여해 복지의 효율성을 높이고 복지도 개인이 선택하도록 해 형평성을 높이는 것이었다. 의료와 교육에 영리 목적의 기업이 참여하고, 퇴직 연금 운영 기업도 개인의 선택에 맡겼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가운데에 있던 스웨덴이 사회주의 색채를 지우고 신자유주의적 복지 모형으로 바꾸는데 미국은 물론 유럽 전체가 놀랐다. 더구나 스웨덴의 이러한 혁명적 개혁이 정치적 갈등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더욱 주목을 받았다. 스웨덴을 오래 지배한 중도좌파 사회민주당과 중도우파 정당이 합의하고, 구체적인 개혁안은 공무원의 도움을 받아 만들었다.

스웨덴의 탈이념 복지개혁은 노동정책의 전환과 함께했다. 실업급여중심의 전통적인 정책 대신 직업교육·훈련 및 고용안정서비스 중심의 적극적 노동정책으로 나아갔다. 스웨덴은 우리나라처럼 산업화와 수출로 빈곤에서 탈출해 최선진국이 되었으나 전면적 무상복지로 성장 잠재력이 떨어졌다. 공공부문 고용 확대에도 불구하고 공식 실업률이 9%로 증가했고, 경제 침체를 막는다고 늘린 정부지출은 국민소득의 70%로 늘었고, 재정적자는 GDP의 12%가 되었다. 스웨덴은 시장 중심 복지개혁으로, 20년 지난 다음 의료서비스의 30%를 영리기업이 제공해 정부의 의료비 지원 지출은 15% 감소했다. 기업형 교육기관이 많아져 교육의 다양성과 질적 수준이 올라가 청년 실업은 줄고 숙련 인력은 늘어 과학·기술 등 두뇌 인력이 9%로 EU(유럽연합) 평균보다 두 배 많아졌다.

“현대화할 것인가 죽을 것인가?” 2003년 독일 슈뢰더 수상은 ‘어젠다 2010’ 사회개혁을 추진했다. 핵심은 복지와 노동의 패키지 개혁을 통해 일을 통한 복지(workfare)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세계화는 선택이 아니라 현실의 문제’라며 절박하게, 사회민주당이 구축했던 독일식 복지와 노동 모형을 새롭게 구축하지 못하면 140년 전통의 사회민주당도 미래가 없다고 밀어붙였다.

지난 칼럼에서 설명한 대로 슈뢰더의 개혁은 독일을 유럽의 병자에서 유럽의 슈퍼스타로 바꾸었다. 일을 통한 복지는 노동과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분배하는 보편적 복지 대신에 노동시장 참여와 복지를 연계하는 ‘전략적’ 복지로 전환을 의미한다. 여기에다 노동시장 유연화 개혁으로 일할 기회를 늘리고 동시에 노동생산성도 높여 성장 잠재력을 키우며, 이를 통해 복지 지출은 줄이고 복지를 위한 재원은 확충해 노동과 복지의 선순환구조를 만든다는 것이다.

미국, 스웨덴, 독일 등과 달리 비슷한 시기에 복지개혁을 추진한 남부 유럽은 진통이 컸고 성과는 낮았다. 남부 유럽도 복지국가를 지향했으나 북부보다 늦게 시작했고, 제도는 허술했으며, 경제사회 환경도 좋지 않았다. 남부 유럽은 유럽에서 출산율은 가장 낮고 고령화 속도는 가장 빠르다. 또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심각해 공공과 민간 그리고 조합원 여부에 따라 복지 격차도 크다. 정부의 사회 이전지출은 인사이드에 유리해 복지 지출이 늘어도 아웃사이드는 소외되었다. 따라서 복지개혁의 핵심은 기득권을 가진 인사이드의 혜택을 줄이고 아웃사이드를 배려하는 것이었다. 복지개혁을 노사정의 사회적 대화로 추진했으나 노동계와 좌파 정당의 반대로 시간이 지체되고 강도는 미미했다. 경직적인 노동시장에다 재정 악화로 결국 경제위기를 맞아 남부 유럽은 유럽연합 등의 요구에 따라 정부가 책임지고 연금과 의료보험 지출을 대폭 줄이는 복지개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남부 유럽과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외환위기와 세계금융위기를 겪으며 사회복지를 대폭 강화했으나 노동시장 이중구조문제가 악화해 복지의 필요성은 그만큼 더 커졌다. 노동계와 시민단체는 유럽식 복지국가를 요구했고 좌우 모든 정당은 이를 따랐다. 그러나 일자리를 통한 복지로 바뀐 북부 유럽의 변화와 전통적 복지에 매달린 남부 유럽의 실패를 외면했다. 유럽이 잘나가던 시절인 산업화시대의 전면적 무상복지에 매달리는 것이다. 기술혁신과 세계화로 노동시장이 바뀌고, 공공과 민간 그리고 조합원 여부에 따라 임금과 고용 보호 수준이 벌어지고, 사회복지제도의 혜택이 인사이드와 아웃사이드의 불균형에 빠진 문제는 간과한 것이다. ‘복지 따로 노동 따로’는 정년 연장처럼 오히려 ‘인사이드의 기득권 연장, 아웃사이드의 고용악화’로 악순환을 키웠다.

유럽의 과거를 따라가는 복지국가 주창자들은 우리나라 사회복지지출이 다른 나라보다 낮기에 무조건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복지서비스는 공공서비스이기에 국가가 독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회복지지출의 비중이 낮은 것은 사실이나, 복지를 무조건 늘리고 국가가 독점해야 한다는 주장은 복지정책이 복지를 망친 스웨덴의 경험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남부 유럽이 노동시장의 문제는 바로 잡지 않고 복지만 늘리다가 경제위기에 처해 결국 다른 나라의 압력으로 복지를 일시에 대거 줄인 아픈 경험도 모르는 소리다. 기술혁신과 세계화로 임금과 고용이 숙련에 좌우됨에 따라 숙련 형성 지원을 복지의 핵심 과제로 삼은 미국이나, 취업 지원을 복지로 개념을 수정한 독일의 경험도 모르는 소리다. 복지국가의 원리가 바뀌었다. 우리나라가 복지에 성공하려면 착각에서부터 깨어나야 한다.

첫째, 복지를 소득재분배문제로 생각하는 좁은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마크 롱 프랑스 대통령은 ‘부를 창출하지 않고 부를 재분배할 수 있다는 착각’, ‘기업을 키우지 않고 국민이 잘살 수 있다는 착각’에서 깨어나야 한다고 했다. 미국과 유럽처럼 정부가 돈으로 만드는 복지보다 일을 통한 복지를 우선해야 한다. 문재인 정권은 소득주도성장을 내세우면서 복지 지출 확대가 소비를 자극해 성장을 일으킨다고 했는데, 결과는 정반대고 재정만 빠르게 악화했다. 사회복지지출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중은 2010년 9%, 2013년 처음으로 10%를 넘었고, 2015년 10.4%, 2018년 11.1%로 빠르게 증가했지만, 일할 기회조차 없는 사람은 그보다 더 빠르게 증가했다.

둘째, 복지 지출 늘리기보다 더 중요한 일은 잘 쓰는 것이다. 일을 통한 복지를 확립하도록 노동시장의 경직성과 이중구조를 해소해 진입 장벽을 낮추고, 직업교육·훈련과 고용안정서비스를 강화해야 한다. 통계청의 사회조사를 보면 사회보장제도가 좋아졌다는 응답은 2009년 30.2%에서 2016년 48.5%, 2019년 60.8%로 대폭 증가했지만, 늘려야 할 복지서비스 순위는 고용지원서비스가 첫 번째(32.5%)고, 보건의료서비스(18.7%)와 소득지원서비스(16.4%)보다 훨씬 높다. 소득주도성장으로 정부가 일자리를 파괴해놓고는 일자리안정자금 등 일자리 예산을 늘려봐야 진짜 복지와는 더 멀어질 뿐이다.

셋째, 복지를 국가가 독점해야 한다는 발상을 버려야 한다. 국가 독점은 복지제도의 정치화와 관료화, 복지사업의 방만함을 키워 고비용-저효율의 문제를 일으킨다. 의료서비스는 물론 직업교육·훈련과 고용안정서비스에 대한 민간의 참여는 스웨덴의 경험을 따라 영국 등 유럽에서 보편화 되었다. 이는 고령화에 따른 의료비 지출의 증가 부담을 덜고, 청년 실업 해결과 경쟁력 회복에 필수적인 두뇌 인력양성에 도움이 되었다. 문 정권은 사회복지서비스를 위해 공공부문 채용을 늘리는데 이는 시대와 역행하는 것이다. 또 저출산, 청년고용, 자영업 문제 등을 해결한다고 선심성 사회복지 분야 국고보조금을 닥치는 대로 늘려 2018년 12.3%, 2019년 16.4%, 금년도 10.6%로 3년 동안 11% 증가해 경제성장률보다 3~4배나 많았으나, 성과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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