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장대청 기자
  • 입력 2020.02.18 15:30

15년 만에 게임법 개정 추진…법명부터 '진흥'에서 '사업'으로
게임산업협회 "게임 산업을 규제‧관리 대상으로 보려는 것"

[뉴스웍스=장대청 기자] 게임 법이 15년 만에 크게 바뀐다. 큰 폭으로 성장한 게임 산업에 맞춰 관련 법도 새로 정비한다는 취지다.

문화체육관광부는 18일 넥슨 아레나에서 '게임 산업 재도약을 위한 대토론회'를 열고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의 개정안을 공개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현행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의 명칭을 '게임사업법'으로 바꾼다. 사행성과 중독 같은 부정적 단어를 삭제하는 등 표현을 재정비하고 확률형 아이템 관련 정의와 의무 고지 등 이용자 보호 규제를 명시했다. 문체부는 이번 법안 개정을 통해 게임문화와 게임산업 기반 조성, 게임 이용자 보호, 규제 완화 등을 이뤄 게임 산업 재도약을 이끈다는 구상이다. 

김상태 순천향대 교수가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의 개정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장대청 기자)
김상태 순천향대 교수가 18일 넥슨 아레나에서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의 개정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장대청 기자)

김상태 순천향대 교수가 가장 먼저 단상에 올라 개정안의 기본 방향과 주요 내용을 밝혔다. 김 교수는 문체부로부터 게임법 개정안 연구용역을 맡아 다른 연구진 4명과 함께 8개월간 개정안 조문을 만들었다. 

김 교수는 "현행 게임법은 바다 이야기 사건, 셧다운제, 질병 코드 도입 등 그때그때 이슈에 맞춰 새로운 법안이 들어간 누더기 법이다"라며 "이름은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인데 진흥뿐 아니라 규제도 많다. 진흥만 들어가면 좋겠지만 그럴 수는 없으니 게임사업법으로 이름을 변경했다"라고 이유를 밝혔다.

그는 "게임산업 진흥은 보장하되 이용자 보호 측면에서만 규제하고 이 역시 게임산업에 저해되는 방향이 아닌 발전시킬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보호하는 방향으로 접근하겠다"라며 "중독, 사행성, 건전한 등 부정적인 시각을 초래할 수 있는 단어를 삭제, 수정하며 게임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도록 긍정적 표현을 사용했다"고 강조했다.

이번 개정안이 통과되면 기존의 '게임물'이라는 용어는 '게임'으로 변경된다. PC온라인게임과 모바일게임은 '온라인게임제공사업'으로 통합됐다. 게임문화의 날 지정, 문화진흥을 위한 재정지원의 근거를 마련하고 실태조사, 지식재산권 보호 등 시장을 보호하는 바탕이 될 문구 역시 들어갔다. 

또 게임 이용자 보호 및 의무 규정도 신설됐다. 확률형 아이템을 새로 정의하고 확률 표시를 의무화했으며 게임의 사행적 이용 금지 규정이 추가됐다.

따라서 이제 게임으로는 환전이나 고액경품을 제공할 수 없다. VR 시뮬레이터 등 새로운 유형의 게임기기 안전성 확보를 의무로 만들었고 국내 사업자를 보호하기 위한 해외 업체의 국내 대리인 지정 규정도 마련됐다. 게임물관리위원회를 게임위원회로 개편하는 한편 사후관리감독 기관으로 범위를 확장했다.

업계의 자율 규제는 기본적으로 장려한다는 입장이다. 위원회는 개정안에 시행은 되고 있지만 근거 조항이 없던 자율 규제에 대한 항목을 새로 만들었다.

김 교수는 "타법이 게임 산업에 자꾸 관여하지 못하게 다른 법들보다 이 법이 게임에 관한 가장 우선적인 법률임을 선언하는 조항도 추가했다"고 덧붙였다. 

문체부는 관계부처 협의를 통해 추가로 개정안을 수정해 발의할 예정이다. 이어 올해 상반기 중 21대 국회에 법안을 상정한다는 방침이다.

반면 업계는 문체부가 제시한 개정안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자율 규제해왔던 확률형 아이템을 놓고 정부가 관리하면 당장 업계 수익이 크게 줄 뿐더러 추후 정부 규제들이 이어질 근거가 된다는 의견이다. 선정적인 광고로 논란이 된 중국 게임들에 대한 규제가 따로 포함되지 않은 점 역시 문제점으로 꼽았다. 

한국게임산업협회는 각계 합의에 기반한 중장기 계획을 바탕으로 이를 실행에 반영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게임법 개정안 관련 의견서를 문체부에 전달했다고 18일 밝혔다. 문체부 개정안에 대한 즉각적 반발이다.

협회는 '게임사업법'으로의 법명 변경도 문제 삼았다. 현행 사업법은 철도, 항공, 항만 등을 대상으로 규제사항을 다루고 있다며 민간이 주체가 되는 산업을 지정한 사례는 없다는 지적이다. 협회 관계자는 "유독 게임산업에 대해서만 기존 진흥법에서 사업법으로 이름을 변경한다는 것은 문체부가 게임산업을 진흥의 대상이 아닌 규제‧관리의 대상으로 보려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세부적으로 게임사업자의 책무, 사행성 확인, 결격사유, 게임사업자 준수사항, 게임 과몰입 예방조치를 담은 조항들도 신규 규제 도입의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고 불안감을 표했다. 영화, 비디오 등 타 콘텐츠 산업이 현재 만 18세 미만으로 청소년을 정의하는 데 비해 청소년 연령을 19세 미만으로 정의하는 것 역시 문제라는 관점이다.

협회는 "급격하게 바뀐 게임 생태계 환경을 반영해 현실에 부합하고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며 "이에 앞서 게임 관련 전문가 등 의견 청취를 통해 게임산업 진흥과 발전을 위한 중장기 계획 수립을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상태 순천향대 교수가 18일 넥슨 아레나에서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의 개정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장대청 기자)
이정운 구글코리아 사내변호사가 18일 넥슨 아레나에서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의 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말하고 있다. (사진=장대청 기자)

이날 토론회에서는 개정안 세부 내용에 대한 전문가들의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우선 개정안에서 삭제된 '사행성 게임물'과 관계된 항목은 찬성이라는 의견이다. 정정원 한양대 법학연구소 연구원은 "일종의 '돈 내고 돈 먹는' 사행 행위, 재산상 득실이 들어가는 사행성 개념은 그 자체로 경찰과 검찰의 영역이고 문화 산업인 게임물의 영역이 아닌 만큼 삭제는 맞는 조치다"라며 "개정안을 통해서는 사행 행위의 모사 정도나 요행을 바라는 사행심의 유발 정도를 다루는 게임물 관리 위원회의 등급 분류 기준을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

개정안이 다룬 셧다운 문제에 대한 의견도 나왔다. 새 조항에 따르면 여성가족부 장관이 청소년 보호법에 따라 심야 대의 제한대상 게임의 범위가 적절한지를 평가할 때 문체부 장관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서종희 건국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셧다운 법은 오로지 청소년 보호라는 목적성에 치우친 인지 편향 상태에서 생긴 법이었다"며 "개정된 게임사업 법상에서 문체부 측이 일정한 기준을 권고하는 측면을 입법 과정에 넣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반면 게임업계의 자율규제를 명문화한 개정안에 대해서는 문제점 지적이 이어졌다. 

서 교수는 이를 두고 "자율규제 조항을 신설하는 것이 자율규제를 지향하도록 유도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율규제를 명문화해 활성화하는 것처럼 보이는 연막탄일 수도 있다"며 "명문 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율규제에 따르지 않는 게임사업자에게 페널티를 주는 등 실질적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정운 구글 코리아 사내변호사는 "자율규제는 많은 장점을 가진 제도지만 법적으로 일정한 효과나 인센티브가 담보되지 않는다면 실제 의미를 갖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라며 "예를 들어, 확률형 아이템을 비롯한 게임 정보의 표시 의무를 정하고 있는 개정안 조항과 관련해 사업자단체의 자율규약을 허용하고 문체부가 이를 심사 및 승인하도록 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제안했다.

확률형 아이템에 관한 정의 신설과 표시 의무에 관한 의견도 나왔다. 개정안은 확률형 아이템을 게임 이용자가 유료로 구매하는 게임아이템 중 구체적 종류, 효과 및 성능 등이 우연적 요소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정의하며 게임사업자에게 이를 표시할 의무를 더했다. 이병찬 법무법인 온새미로 변호사는 이에 대해 "강화와 합성 등 우연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부분은 규제 범위에서 제외됐다"며 "확률형 아이템의 상위개념인 게임아이템의 범위도 지나치게 좁아 치장 아이템 등의 확률 표시 의무를 부담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행사는 오후에도 이어진다. 이날 오후에는 게임생태계 현황을 진단하고 중소 게임업체 및 콘솔게임 등 비주류 게임의 활성화를 비롯한 게임산업 발전 방안이 논의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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