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 13개월 '한국형 레몬법' 교환‧환불 '0'건…'유명무실'
시행 13개월 '한국형 레몬법' 교환‧환불 '0'건…'유명무실'
  • 손진석 기자
  • 승인 2020.02.18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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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제작사가 결함 없음 입증 vs 韓, 소비자가 중재과정 진행
마세라티, 지프, 크라이슬러, 닷지 등 4개 수입차 브랜드 '도입 거부'
한국형 레몬법을 적용하지 않은 자동차 제작사는 닷지, 크라이슬러, 지프, 마세라티 4개사다.
한국형 레몬법을 적용하지 않은 자동차 제작사는 닷지, 크라이슬러, 지프, 마세라티 4개사다.

[뉴스웍스=손진석 기자] 김포에 거주하는 김 모 씨는 지난해 7월 신차를 넘겨받은 뒤 일주일도 안 돼 ‘주행 중 차량의 엔진 꺼짐’ 현상이 발생했다. 차량 제작사의 A/S 센터를 방문해 정비를 받았다. 하지만 시동 꺼짐 증상이 계속 나타났다. 김 모 씨는 2번이나 A/S 센터를 방문했지만 별다른 조치를 받을 수 없었다. 그는 운전 도중 언제 시동이 꺼질지 불안해 차를 몰고 도로로 나갈 수 없었다. 김 모 씨는 “제작사에 환불‧교환 요청을 했다”며 “회사 측은 차량의 고장이 한 번 더 발생하면 교환‧환불 요청이 가능하다. 지금은 해줄 만한 조치가 없다는 말뿐이었다”고 하소연했다.

지난해 12월 전북에서 1억원을 호가하는 외국산 차량이 인수 당일부터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들어오는 결함이 발생했지만, 업체 측은 '단순 고장'이라며 수리를 해주었다. 하지만 3일 뒤에 다시 경고등이 들어와 차량의 교환을 요구했지만 거부당했다. 역시 대리점 측은 앞으로 경고등이 두 번 더 들어오면 교환을 검토 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답변했다. 차주는 또 다른 고장이 발생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이유로 자동차 교환·환불 제도인 한국형 레몬법 시행 이후 1년 동안 교환‧환불된 차량이 ‘0대’로 나타나 소비자의 피해를 구제할 수 없는 ‘유명무실(有名無實)’한 법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레몬법 시행 이후 신차에서 다양한 하자가 발생했지만, 여전히 소비자들은 보상받지 못하고 있다. 특히 엔진 꺼짐과 같은 하자는 중대결함에 해당하는 사항으로 운전 중 갑작스럽게 엔진이 꺼지면 교통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 이러한 하자도 동일 증상이 발생할 때까지 소비자는 위험을 무릅쓰고 차량을 운행해야 한다.

시동 꺼짐과 같은 중대결함은 리콜에 해당 될 수 있다. 리콜은 안전 운행에 지장을 주는 동일 증상이 해당 차량과 같은 기간 제작 차량 전반에서 발견돼야 하는 등의 조건이 있다. 반면 레몬법은 교환·환불 차량으로 선정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리콜은 전체 차량에 대한 수리를 책임져야하고, 레몬법은 개별 차량 단위로 결함이 인정된다.

제작사들은 시동 꺼짐과 같은 결함을 사실대로 인정하면 리콜로 번질 우려가 있어 쉽사리 결함을 인정하려 하지 않은다. 신차에서 하자가 발생하면 대부분의 제작사는 시간 끌기와 결함 은폐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고 일각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자동차 교환·환불 제도 일명 한국형 레몬법이 시행 1년 동안 교환‧환불이 단 한건도 없어 수정‧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사진출처=픽사베이)
자동차 교환·환불 제도 일명 한국형 레몬법이 시행 1년 동안 교환‧환불이 단 한건도 없어 수정‧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사진출처=픽사베이)

자동차 관련 소비자 단체들은 “한 번 더 고장이 발생해야 겨우 교환‧환불 절차를 진행 할 수 있다는 제작사의 태도는 차량의 품질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행위”라며 “현재의 레몬법은 리콜에 해당할 정도의 안전 우려와 사용할 수 없을 정도의 수준이 돼야 교환·환불이 가능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형 레몬법이 발효되기 이전까지는 자동차의 고장과 환불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차에 문제가 발생하면 소비자 과실이 먼저이고, 설혹 차량에 문제가 발생해도 시간을 끌거나 외면해 소비자들은 보상받을 방법이 없었다.

소비자들이 하소연 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는 한국소비자원뿐이었다. 소비자원에서 차량의 제조과정의 문제가 확인되어도 강제성 없는 권고 조치에 불과했다. 자동차에 대한 전문성이 생산회사보다 떨어진다는 한계점도 지적받았다.

2018년 BMW 화재 사태를 기점으로 레몬법의 필요성이 부각되어 우리 실정에 맞는 한국형 레몬법이 만들어졌다. 정부는 지난해 1월부터 신차로 구매한 차량에 중대한 하자는 2회, 일반 하자는 3회를 수리하고도 같은 증상이 반복되거나, 고장으로 인해 차량을 이용하지 못한 기간이 30일이 넘을 경우 등 교환이나 환불을 요구할 수 있는 ‘한국형 레몬법’을 시행했다.

당시 레몬법을 통해 소비자의 권리를 제대로 보호받을 수 있을 것으로 많은 기대를 했었다. 하지만, 지난달 17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국토부의 자료를 바탕으로 발표한 한국형 레몬법 시행 1년 동안 레몬법 절차를 통해 실제로 교환이나 환불 판정을 받은 사례가 단 한 건도 없었다.

경실련 자료에 따르면 교환·환불 신청 81건 중 최종 판정까지 간 사례는 6건에 불과했고, 4건은 ‘각하’, 2건은 ‘화해’ 판정뿐이었다. 접수된 81건 중 종료 25건, 진행 19건이었으며, 나머지 32건은 접수·대기에 머물러 있다.

자동차 교환·환불 현황에서 나타난 특이사항으로 교환·환불 신청을 ‘취하’한 이후 교환·환불을 받은 5건의 사례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일각에서는 레몬법 때문에 소비자가 보상받은 경우라고 하지만 레몬법의 정상적인 절차를 따르지 않고 편법으로 제작사가 보상한 사례이다.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운영위원장으로서 상담 및 피해구제, 소비자교육, 캠페인, 연구조사, 정보제공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는 오길영 신경대 교수는 “레몬법의 정상적인 절차가 아닌 편법으로 교환·환불을 진행하는 제작사는 이목 집중 및 차량의 결함을 감추려고 하는 꼼수”라며 “이러한 제작사들의 행동은 하자의 해결보다 보상만 바라는 골칫거리 블랙컨슈머를 직접 만드는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오 교수는 레몬법의 실효성 논란에 대해 “레몬법 수용 여부를 자동차 업체의 판단에 맡겨 강행성이 없고, 업체들의 전략적 결함 은폐가 여전히 가능하다”며 “더욱이 지난 1월 온라인 사이트 개설로 다소 개선됐지만, 여전히 까다로운 절차와 교환‧환불에 대해 심사하는 국토부 ‘자동차안전‧하자심의위원회’의 투명하지 못한 운영으로 인해 레몬법의 보완과 개선이 필요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레몬법 도입 이후 현대, 기아, 르노삼성, 쌍용, 한국GM, 볼보, 닛산, 토요타, BMW, 재규어랜드로버, 벤츠, 포드, 혼다, 캐딜락, 포르쉐, 푸조, 테슬라, 아우디폭스바겐 등 18개 제작사가 신차 교환·환불제도에 참여 중이다. 하지만 이달 15일 기준 닷지, 마세라티, 지프, 크라이슬러 등 4개 수입차 브랜드는 여전히 레몬법을 수용하지 않고 있다.

자동차 리콜센터 홈페이지내 개설된 신차 교환 환불 e만족 시스템 (이미지=신차교환환불 e만족시스템 캡처)
자동차 리콜센터 홈페이지내 개설된 신차 교환 환불 e만족 시스템 (이미지=신차교환환불 e만족시스템 캡처)

레몬법은 정부에서 시행하는 법인데도 아직도 참여하지 않는 업체가 있다는 것은 이 법에 강제성이 없고, 제작사의 판단에 맡겨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더욱이 한국형 레몬법은 신차 계약 시 계약서에 교환‧환불 보장 내용이 포함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계약서에 관련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으면 하자 발생 시 교환‧환불을 받을 수 없다. 교환‧환불 내용을 계약서에 포함하는 것이 우리 레몬법에는 강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계약서에 이러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지 소비자가 확인해야만 한다. 레몬법에 참여하는 업체 중에 일부 업체는 계약서에 교환‧환불 내용을 포함하지 않는 경우와 고객들에게 공지하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현재의 레몬법으로는 제작사 또는 판매사에서 내용을 포함하지 않더라도 권고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 이러한 이유로 강행규정을 명시하는 방향으로 법을 보완해야한다고 소비자 단체들은 지적하고 있다.

우리의 레몬법은 미국의 레몬법을 벤치마킹했다. 미국에서는 자동차 제작사가 자진해서 교환과 환불을 진행할 수밖에 없는 다양한 법률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한국형 레몬법은 외형만 흉내를 내고 있어서 실질적으로 제작사가 거부해도 벌칙 조항이 거의 없다.

미국 자동차 제작사들은 레몬법과 관련해 적극적으로 교환‧환불해 주는 이유 중 가장 큰 원인은 미국의 NHTSA(도로교통안전청)에 동일 차량에 두 건 이상의 복수 하자가 발생하면 이 기관이 조사를 시작한다. 제작사는 문제가 커지기 전에 신차 하자에 대해 교환‧환불을 해 주는 편이 이익이 된다.

두 번째는 한국에서 신차의 하자가 발생하면 자동차의 결함을 소비자가 제작사에 해당 내용을 명시한 ‘하자재발통보서’를 발송해야 중재 과정을 진행해야 한다. 만약 이 과정에서 소비자가 놓치거나 서류를 발송하지 않았다면 교환‧환불의 ‘보상 조건’에 해당하지 않게 된다. 비전문가인 소비자가 모든 과정을 진행해 중재위원회에 신청해야 한다. 반면, 미국은 자사 차량에 결함이 없다는 것을 제작사가 자체 입증을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미국의 레몬법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있어 신차에 하자가 발생한 것이 규명되면 천문학적인 벌금을 물린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일례로 미국 토요타의 경우 지난 2016년에 급발진사고를 은폐해 1조3000억가량의 징벌적 벌금을 물은 경험이 있다.

한국형 레몬법은 미국의 경우처럼 관련된 법안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정부는 제작사의 사정을 들어 강행성과 징벌적 보상제도를 최대한 낮추거나 유예하고 있다.

경실련은 “무늬만 레몬법이지 허점이 너무 많다”며 “자동차는 국민의 안전과 생명에 직결된다. 따라서 정부와 국회는 국민의 건강권과 생명권을 보호하기 위해 제대로 된 레몬법을 만들어야 할 의무와 책무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레몬법의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서는 가장 먼저 법률의 개정을 통해 레몬법의 적용이 강제되어야 한다”며 “자동차안전·하자심의위원회의 공정하고 투명한 운영이 선결되어야 하고, 나아가 자동차 교환·환불의 신청이 어렵지 않고, 그 심의과정에도 직접 참여해 확인할 수 있는 소비자 친화적인 방식으로 개선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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