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3.18 17:35
수원 화성의 옛 장안문 모습이다. 조선 정조와 그의 생부인 사도세자의 이야기가 얽혀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수원을 예전 조선에서는 달리 화성(華城)이라고도 불렀다. 정조(正祖) 대왕 때 자신의 부친인 사도세자, 즉 장헌세자(莊獻世子)의 묘역인 원(園)을 수원의 화산(華山)으로 옮기면서 아울러 수원에 궁성을 지을 때 붙인 이름이다. 그 성의 서쪽 문이 바로 화서문(華西門)이고, 인근에 지하철이 들어서면서 역 이름도 그렇게 지었다.

중국에도 그 華山(화산)이란 데가 있다. 지금 중국 서북의 산시(陝西) 도회지인 시안(西安)의 동쪽에 있는 산이다. 해발 2000m가 넘으며, 산 전체가 화강암으로 이뤄져 있어 경관(景觀)으로도 그 일대의 으뜸을 이루는 산이다. 도교(道敎)의 성지로 유명하며, 수(隋)와 당(唐)나라 때의 도읍지인 장안(長安)과 가까웠던 곳이어서 무수한 일화도 품고 있는 산이다. 아울러 중국의 대표적 산악으로도 이름이 높다.

그 명칭의 앞을 이루고 있는 華(화)는 예나 지금이나 중국을 일컫는 대표적인 글자다.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의 정식 국가 명칭에도 올라 있고, 흔히 중국의 문명을 중화(中華)라고 적을 때도 등장한다. 어쩌면 중국을 상징하는 글자 그 자체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 글자는 원래 광채(光彩)를 뜻했다. 특히 우리가 해나 달을 바라볼 때 중간에 구름 등이 끼어들면서 해와 달의 외곽에 밝게 눈부심이 생기도록 만드는 그런 광채다. 그런 광채를 일컫다가 ‘아름다운 것’ ‘눈부신 것’ ‘뛰어난 것’ 등의 뜻을 얻었고, 마침내 식물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인 ‘꽃’의 의미까지 획득했다.

이 글자에다 ‘곱다’라는 뜻을 얹어 만든 단어가 화려(華麗), 뛰어나다는 의미의 글자를 앞에 붙여 정화(精華), 곱고 멋져 보인다는 뜻의 화사(華奢), 너무 그런 데만 치중해 들떠 있는 경우의 부화(浮華) 등의 단어를 만들었다. 지나치게 화려한 일은 우리는 또 호화(豪華)라고 적으며, 번성해서 화려함에 이르는 일을 번화(繁華)라고 적는다. “호화롭다” “번화한 거리” 등의 표현으로 우리가 자주 쓰는 단어들이다.

그래도 이 글자의 대표적 쓰임은 중국과 관련 있다. 중국은 아주 오래전부터 자신의 문명 권역 안에 사는 사람을 이 글자로 표현하고, 그렇지 않은 주변의 사람들에게는 오랑캐라는 뜻의 이(夷)라는 글자를 붙였다. 이른바 화이(華夷)의 세계관이다. 자신은 화려한 문명의 주인공, 주변은 모두 오랑캐라는 식의 관점이다.

그 오랑캐도 방위에 따라 구별하는데, 동쪽의 오랑캐가 이(夷), 서쪽의 오랑캐가 융(戎), 남쪽이 만(蠻), 북쪽이 적(狄)이라 했다. 그래서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이라는 명칭도 나왔다. 중국이 제 스스로를 높인 우월적이며 차별적인 시선이다. 그러니 우리가 그를 따를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그런 경우가 있었다는 점만은 알아두자.

중국은 자신의 영토, 자신의 문물 등에 모두 이런 華(화)를 갖다 붙인다. 중국인을 화인(華人)이라거나, 중국의 복식을 화복(華服), 중국인으로 해외에 거주하는 사람을 화교(華僑) 등으로 적는 게 대표적이다. 영토의 구획을 이야기할 때도 화북(華北), 화동(華東), 화남(華南), 화중(華中) 등으로 적는다. 중국 상인은 화상(華商)이고, 중국어는 화어(華語)라는 식이다. 중화요리(中華料理)는 먹는 게 부족했던 시절, 그 특유의 기름기로 한반도 사람들 입맛을 다시게끔 했던 음식 아닌가.

중국은 큰 땅에 많은 인구가 사는 곳이다. 그렇다보니 역사적으로 그곳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경험의 폭은 매우 컸다. 한반도에 사는 우리들이 겪는 ‘경우의 수’는 그에 비하면 아주 빈약하다. 한반도 면적의 40여 배에 달하는 중국은 사람들이 겪는 ‘경우의 수’에 있어서도 그 면적의 크기만큼 대단했을 것이다. 그래서 문물이 흥하고, 사람의 경험이 풍부하다. 그러니 한반도에 사는 우리들은 그들의 문물과 문화적 정수를 수입해 가져다 쓰면서 한편으로는 그들의 많고 복잡한 경험을 열심히 곁눈질했을 것이다.

그래도 조선의 500년은 그 정도가 아주 심했으니, 결국 성리학(性理學)을 향한 지나친 편향(偏向)으로 결국 제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는 경우까지 치닫고 말았다. 그러니 한 음식만 골라 먹는 편식(偏食)은 우리 문화 바탕의 구축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세계 곳곳의 다양한 인류의 경험과 지식을 골고루 들여와 우리를 균형감 있게, 그리고 조화롭게 살찌우는 일이 그래서 중요하다.

華西(화서)의 뒤 글자는 달리 설명이 필요 없겠다. 동서남북(東西南北)의 서녘을 가리키는 글자이니 말이다. 단지 궁문(宮門)과 관련해서는 조금 덧붙일 내용이 있다. 동서남북의 각 방위는 과거의 동양에서 나름대로 색깔과 의미를 매겼던 영역이다. 東(동)은 색깔로는 푸른색의 청(靑)을 가리켰고, 계절로는 봄 춘(春), 동물로는 용(龍), 오행(五行)의 기운으로는 나무인 목(木)을 상징한다.

서녘은 색깔로 흰색의 백(白), 계절로는 가을 추(秋), 동물로는 호랑이 호(虎), 오행의 컨셉트로는 쇠 금(金)이다. 남녘은 붉은색의 주(朱), 계절은 여름의 하(夏), 동물로는 공작의 작(雀), 오행은 불 화(火)다. 북녘은 각기 검은색 흑(黑), 겨울인 동(冬), 동물은 거북과 뱀을 합쳐놓은 신화 속의 현무(玄武), 오행의 요소로는 물 수(水)다.

어쨌든 그런 상징은 현실 속에서도 자리를 틀었다. 그래서 궁궐의 서문(西門)은 대개 가을과 오행의 쇠 기운인 금기(金氣)와 관련이 깊었다. 그 金氣(금기)는 나뭇잎이 가을에 떨어지듯이 생물에 대한 숙살(肅殺)의 기운으로, 행정적으로는 형벌(刑罰)의 집행과 관련이 있단다. 그래서 범죄인에 대한 처형은 보통 궁궐 서문 밖에서 이뤄졌다고 한다.

우리의 의젓한 도시 수원, 그 다른 이름인 華城(화성)이 비록 한자를 달고 있기는 하더라도 중국의 그런 예제 등을 그대로 옮겨왔다고는 보지 않는다. 우리 나름대로, 한반도 문화적 토대에 맞는 변형과 그 뒤의 수용(受容)이 있었을지니, 우리는 그 점을 잘 살펴 우리만의 문화적 독자성을 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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