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장대청 기자
  • 입력 2020.02.28 23:15

악의적인 슈퍼전파자 나온 와우 '오염된 피'…가짜뉴스 도입한 '전염병 주식회사'
중국 정부는 병균 쉽게 베는 게임 허가…"현실 속 혼란은 리셋할 수 없어"

게임 '전염병 주식회사'의 모바일 버전 플레이 화면. '현실이었다면' 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사진=전염병 주식회사 게임화면 캡처)
게임 '전염병 주식회사'의 모바일 버전 플레이 화면. '현실이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해보세요' 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사진=전염병 주식회사 게임화면 캡처)

[뉴스웍스=장대청 기자] 게임은 현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게임 역시 사람이 만든 것이기에 어떨 때는 게임 속 현상들을 현실에 비추어 볼 수도 있다.

지금 한국은 코로나 19 바이러스와 전쟁 중이다. 소강상태에 들었던 전염병이 한 종교 단체를 중심으로 확산세를 키워감에 따라 정부와 기업, 개인들이 비상 대책을 마련하고 대처하고 있다. 

이 싸움에 모두가 동참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에서는 순전히 재미로, 혹은 의도적으로 사람들을 혼란에 빠트리는 가짜뉴스가 등장했다. 많은 이에게 감염을 옮기는 슈퍼전파자의 존재도 의심된다. 

게임 세계에도 이와 비슷한 예가 있다. 악의적인 슈퍼전파자들이 활동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오염된 피' 사건과 전염병을 소재로 만든 게임 '전염병 주식회사'의 가짜 뉴스 시나리오의 예다.

◆ '전파자'와 '구호반' 사이…CDC도 주목한 '오염된 피' 사건

지난 2005년 북미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W, 와우)에서는 '오염된 피' 사건이 벌어졌다. 버그성 디버프가 퍼지며 수많은 캐릭터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건이다.

'오염된 피'는 와우의 보스 캐릭터 '학카르'의 스킬이다. 이 스킬은 높아야 5000이던 당시 캐릭터들의 피를 초당 200~300씩 갉아먹은 강력한 기술이었다. 원래 스킬은 해당 보스가 존재하는 던전 '줄그룹' 내에서만 통했으나 버그가 발생해 캐릭터의 펫 하나가 스킬에 걸린 채로 게임 내 도시로 나오고 말았다. 이 펫이 오염된 피를 게임 내 NPC에 옮겼다. NPC들이 숙주가 돼 결국 도시 내 대부분 이용자들이 이 스킬에 당하고 말았다. 이 디버프를 풀 수 있는 것은 보스 학카르 뿐이어서 이용자들은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지난 2005년 북미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서 일어난 '오염된 피' 사건. 미국 CDC는 블리자드에 관련 자료를 요청하기도 했다. (사진=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지난 2005년 북미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서 일어난 '오염된 피' 사건. 미국 CDC는 블리자드에 관련 자료를 요청하기도 했다. (사진=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이 버그 사건에 대처한 이용자들의 행태다. 어떤 이용자들은 혼자만 있는 곳으로 가 조용히 죽었고 어떤 힐러 캐릭터들은 마나를 희생해 끊임없이 주변 캐릭터들의 피를 채웠다. 무리 지어 오염된 피가 퍼진 도시 '아이언포지'로 가는 길목을 차단하고 구호반 역할을 자처한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슈퍼전파자'를 자처한 이용자도 나왔다. 이들은 전염병이 걸린 후 의도적으로 다른 도시로 떠나거나 상황을 모르는 캐릭터와 접촉에 나섰다. 이 집단은 "혼자만 당할 수 없다", "재밌다"는 이유를 들며 디버프 확산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효능이 없는 물약을 마치 백신인 양 속여 판매해 돈을 버는 이들도 나타났다. 이 캐릭터들은 거액의 게임 재화를 받고 아무런 기능이 없는 아이템을 팔아 이득을 챙겼다.

블리자드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서버 전체를 리셋했다. 캐릭터들이 죽었다 다시 살아난다 해도 원활한 게임 플레이에 큰 지장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단순한 해프닝에서 멈추지 않고 학자들의 연구 재료로 사용됐다. 학자들은 '역학', '사이언스' 등 다양한 저널을 통해 이 사건의 행태와 사스(SARS), 조류 독감의 유사성을 비교한 논문들을 발표했다. 전염성 전파 모델링을 위해 롤플레잉 게임에서의 게임 전염병 플랫폼을 제안한 이도 있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전염병 발생 시 사람들의 행태 연구의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블리자드에 해당 서버 자료 제공을 요구하기도 했다. 블리자드는 단순한 버그 현상이었다며 이를 거부했다. 

현재 신천지의 대구교회에서 예배를 본 1848명 중 833명이 양성 판정을 받았다고 신천지 대구교회 측은 전했다. 이 중 832명은 아직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결과가 나온 사람 중 82%가량이 확진 판정을 받은 꼴이다. 아직 정체가 확실히 밝혀지지 않은 '슈퍼전파자'가 내부에 있었을 확률이 높다. 슈퍼전파자란 바이러스나 세균에 감염된 일반 감염자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2차 감염을 일으키는 전파자를 말한다. 

이 종교 단체 종사자들은 다른 교회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 퍼져 있는 것으로 알려져 국내 확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런데도 지자체 조사를 가로막고 동선을 숨기거나 거짓 진술을 하는 한편 해당 교주는 병을 '악마의 소행'이라 치부하는 성명을 내는 등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오염된 피를 뿌리고 다녔던 일부 와우의 슈퍼전파자들처럼 대형 전파로 이어지게 할 수도 있는 위험한 행태들이다.

◆'전염병 주식회사'의 가짜뉴스 콘텐츠

이번 코로나 19가 확산하면서 주목 받은 또 다른 게임이 있다. 전염병을 다룬 게임 '전염병 주식회사'다.

전염병 주식회사는 지난달 29일 기준으로 애플 앱스토어의 유료 게임 순위에서 국내, 미국, 일본, 중국 등 세계 각지 1위를 차지했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관심이 게임으로 옮겨간 결과다. 

지난 2012년 엔데믹 크리에이션이 출시한 전염병 주식회사는 전염병을 개발하고 퍼뜨리는 게임이다. 게임의 최종 목표는 전 세계에 바이러스를 퍼뜨려 인류를 멸망시키는 것이다. 출시 이후 2012년 다운로드 수 5000만 건을 넘어서는 등 꾸준한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CDC와 연계한 업데이트를 진행하는 등 현실적인 요소들도 많이 추가한 덕이다.

게임에는 사람들 누구도 손을 씻지 않고 의료 연구진의 근무가 태만한 쉬움 모드부터 의사들이 식음을 전폐하고 연구에 몰두하며 유전자 변이가 진화에 영향을 주는 매우 어려움 모드까지 총 4가지 모드가 있다.

전염병을 퍼뜨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게임 '전염병 주식회사'의 가짜 뉴스 시나리오 업데이트. (사진=엔데믹 크리에이션 홈페이지)
전염병을 퍼뜨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게임 '전염병 주식회사'의 가짜 뉴스 시나리오 업데이트. (사진=엔데믹 크리에이션 홈페이지)

주목할 만한 것은 코로나19 이슈가 터지기 얼마 전인 지난해 12월 5일 진행한 '가짜뉴스' 시나리오 업데이트다.

이 시나리오를 진행하는 이용자들은 의도적으로 바이러스에 대처하는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기 위해 가짜뉴스를 생산한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공포를 확산시키거나 전문가를 매수해 잘못된 정보를 지지하게 할 수도 있다. 진실을 퍼뜨리는 사람에게 해를 입힐 목적으로 언론 기사를 작성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사실관계 확인을 늦춰 전염병 확산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엔데믹 크리에이션은 영국의 사실 확인 단체 '풀 팩트'와 함께 시나리오 개발 연구를 진행했다. 전염병 주식회사의 개발자인 제임스 본은 업데이트를 진행하며 "치명적인 전염병처럼 잘못된 정보의 확산은 우리 사회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며 "(게임을 업데이트하며) 많은 감염 알고리즘이 허위 사실, 가짜 뉴스 및 나쁜 정보로 완전히 바뀐 것이 무서웠다"고 말했다.

코로나 19가 확산 중인 한국에서도 가짜뉴스가 나오고 있다.

지난 24일경에는 춘해보건대학교 총장의 실명을 언급하며 "코로나바이러스는 30도만 돼도 활동이 약해지거나 죽는다"며 "헤어드라이어를 사용하세요"라고 적힌 안내문이 인터넷을 돌았다. 하지만 이는 가짜뉴스다. 춘해보건대학교 측은 "총장이나 대학 측은 해당 글을 작성한 사실이 없다"며 "총장이 가정의학과 전문의라는 사실관계부터 틀렸다. 총장은 소아과를 전공했다"고 밝혔다. 

SNS를 떠돈 대한의사협회의 권고 사항도 가짜뉴스다. '콧물이나 가래가 있는 감기와 폐렴은 코로나바이러스가 아니다', '뜨거운 물을 자주 마시고 해를 쬐면 예방이 된다' 등의 내용이 사람들 사이를 떠돌았다. 대한의사협회는 곧바로 가짜뉴스에 대응하며 "국민의 불안이 커지는 시점에서 정확하지 않은 내용이 전문가 단체의 공식 권고인 양 알려지면 국민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며 주의를 줬다. 

또 다른 종교 단체는 서울시의 집회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지난 주말 집회를 강행했다. 이 집회를 주도한 전광훈 목사는 "전염병은 야외에서는 감염되는 사실이 전혀 없다"라며 "예배에 참여하면 오히려 성령의 불이 떨어지기 때문에 걸렸던 병도 낫는다"라고 주장했다. 이 역시 가짜 뉴스다.

가짜뉴스는 사회에 혼란을 키우고 옳은 방향의 조치를 방해할 확률을 만들어낸다. 게임 속 콘텐츠로 나타났을 때는 그럴듯한 요소라며 웃어넘길 수 있다 해도 현실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병균 베는 '병원균과의 싸움' 허가한 중국 정부

중국 사우스차이나 모닝 포스트 지에 따르면 지난 17일 중국 틱톡의 게임 스튜디오 오하유는 게임 '병원균과의 싸움'을 공개했다. 인기를 끈 모바일 게임 '닌자 후르츠'와 비슷한 형식으로 병균이 나타나면 칼로 쪼개는 게임이다. 신종 코로나를 비롯해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등 다양한 바이러스를 물리쳐야 한다. 

중국에서는 정부가 발행하는 판호를 발급받아야 게임을 출시할 수 있다. 게임이 한창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는 시기에 등장함에 따라 중국 정부의 바이러스 타파 의지를 엿볼 수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반면 해당 바이러스가 처음 나온 나라에서 감염증을 희화화하려 한다는 비판적 시각도 있다. 

중국 정부가 허가를 내준 오하유의 게임 '병원균과의 싸움'. (사진=오하유 홈페이지)
중국 정부가 허가를 내준 오하유의 게임 '병원균과의 싸움'. (사진=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한편 지난 27일 중국 애플 앱 스토어를 통한 '전염병 주식회사'의 판매는 막혔다. 엔데믹 크리에이션스는 이에 대해 "완전히 우리의 통제를 벗어난 조치"라고 밝혔다.

게임을 어떤 의도로 다루던 간에 게임과 현실은 명확히 다르다. 게임 속 현상은 현실에서 비슷하게 나타난다 하더라도 완전히 같아지지 않는다. 

'오염된 피' 사건은 블리자드의 서버 리셋으로 종결 났다. 전염병 주식회사의 '가짜 뉴스' 시나리오는 게임을 닫거나 새 게임을 시작하면 그만이다. '병원균과의 싸움' 게임에서도 병균을 쉽게 쪼갰지만 현실은 마땅치 않아 보인다. 

28일 9시 기준 국내 코로나 19 확진자는 2022명으로 하룻밤 사이에 256명이 늘어났다. 사망자는 13명에 달한다. 현실의 혼란과 고통은 게임처럼 되돌릴 수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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