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현건 기자
  • 입력 2020.03.02 11:30

“대출금, 사용처 확인 곤란해 병역 면탈에 악용 우려"

<사진=서울고법 홈페이지>
(사진출처=서울고법 홈페이지)

[뉴스웍스=전현건 기자] 법원은 "생계가 곤란하다는 이유로 입대를 면제해줄지 판단하는 과정에서 재산을 산정할 때 부채 액수를 반영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행정8부는 A(27)씨가 서울지방병무청을 상대로 "생계 곤란에 따라 병역을 감면해달라"고 낸 소송의 항소심에서 지난달 1심과 같이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A 씨는 2018년 "내가 아니면 가족의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며 병역감면 신청을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소송을 냈다.

병역법 시행령은 현역병 입영 대상자 중에서 가족의 부양 능력과 재산 등을 따져 병무청장이 전시근로역에 편입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A씨가 소송을 낸 2018년의 병무청 처리기준에 따르면, 입영 대상자를 제외하면 가족을 부양할 사람이 없는 경우 가족 재산이 9690만 원 이하일 때 병역을 감면받을 수 있다. 당시 A 씨 가족의 재산은 이 기준을 초과했다.

그러나 A 씨는 2억 원대 주택을 사들이는 과정에서 "1억4000여만 원의 주택담보대출을 받았다"며 "가족 재산에서 이 부채가 제외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병무청과 1·2심 법원은 이런 주장을 모두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실무적으로 대출금은 사용처 확인이 곤란해 병역 면탈 수단으로 악용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부채를 재산에서 공제하지 않고 있다"며 "행정력의 한계나 제도 악용 우려 등을 고려해 재산산정방식을 정한 것이 재량권 일탈이나 남용이라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병역법 시행령은 재산 기준을 충족하지 않더라도 '사실상 생계가 곤란한 사람'이라면 지방병무청장의 재량에 따라 병역을 감면해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그러나 A 씨의 경우 여기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신용카드 사용 내용 등으로 미뤄 평소 가족의 씀씀이가 작지 않았고, 수천만 원짜리 아우디 승용차를 타는 등 정황이 근거가 됐다.

재판부는 현역병 입영 대상자로 편입된 이후 6년간 자기계발 등을 이유로 연기하다가 상근예비역 소집 대상자가 되자 비로소 감면을 신청한 점도 지적했다.

재판부는 "입영을 연기해 병역을 유예받는 동안 경력을 쌓고 경제활동을 할 수 있었다"면서 "그 과정에서 입영 후 가족의 생활 대책을 마련할 기회를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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