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원성훈 기자
  • 입력 2020.03.02 17:00
원성훈 기자.
원성훈 기자.

[뉴스웍스=원성훈 기자] 자신의 눈 앞에서 공들여 쌓았던 탑이 외풍으로 갑자기 무너진다면 얼마나 참담할까. 4·15총선을 40여일 앞둔 가운데 곳곳에서 들려오는 전략공천과 관련된 반발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각 당의 공천 작업이 윤곽을 드러낸 가운데, 일부 지역에서는 공천을 둘러싼 내분이 커지고 있다. 지역에 깊게 뿌리 박고 짧게는 몇년에서 길게는 수십년 동안 지역 발전을 위해 헌신해 온 예비후보들이 이른바 '낙하산 공천자'들에 의해 최종경선에서 패배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 주된 이유다. 해당 지역에서 공천을 받지 못한 예비후보들은 자신의 소속된 당에 재심을 요청했다. 하지만 그 간의 전례를 볼 때 이런 요구가 받아들여질 공산은 낮다. 정치판의 냉엄한 현실이다.

물론 당에서도 할 말은 있다. '전략공천'이 필요한 자리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하루아침에 굴러 들어온 돌로 인해 졸지에 그 자리에서 빠지게 된 박힌 돌들은 분통을 떠뜨리고 있다. 무소속으로라도 이번 4·15총선에 출마해 유권자의 심판을 받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공천의 최종 결정과정에서 탈락한 예비후보들이 당의 결정에 불복하는 이유는 대체적으로 두 가지다. 하나는 전략공천을 받은 후보자가 자격 부족이라는 주장이다. 또 하나는 전략공천된 후보자에 대해 해당 지역 주민들이 공천을 반대하고 있다는 것을 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종 공천과정에서 탈락한 예비후보들 중에는 이런 이유들 외에도 전략공천 과정에서 '논리적으로도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우선 떠오르는 곳은 서울 구로을 지역이다.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로 지역을 누비던 조규영 예비후보는 최근 지역내에 천막을 치고 농성에 돌입했다. 조 예비후보가 천막농성을 시작한 이유는 윤건영 전 청와대 상황실장 때문이다. 윤 전 실장이 지난 1월 30일 이 지역에 예비후보로 등록한 상태에서 미래통합당에서는 윤 전 실장의 대항마라며 김용태 의원을 지난 23일 전략공천을 했다. 이날까지도 공식적으로 윤건영 전 실장은 이 지역에 공천이 확정된 후보가 아닌 예비후보에 불과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미래통합당이 김용태 의원을 이 지역에 전략공천한 것이다.

이에 따라, 조규영 예비후보는 당장 지역내에 천막을 치고 지난 27일부터 공정경선을 요구하는 노숙단식농성에 들어갔고 미래통합당 강요식 예비후보는 이곳을 찾아 조 예비후보에게 위로와 격려를 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강요식 예비후보는 "민주당 후보로 윤건영 씨가 확정되지도 않았는데 자객이라는 이름으로 미래통합당에서 김용태 의원을 사전에 전략공천한 것은 넌센스"라며 "만일 윤건영 예비후보가 조규영 예비후보의 요청대로 경선을 해서 낙선한다면 김용태 의원의 전략공천은 취소돼야 마땅하다"고 일갈했다.

원내인사의 전략공천에 따른 공천탈락 사례도 있다. 인천 미추홀을 선거구에서 4선을 노리는 윤상현 미래통합당 의원의 경우다. 그는 2일 한 언론과의 통화에서 "이번 주에 탈당해 21대 총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의원은 앞서 지난달 21일 미래통합당 공천관리위원회가 자신의 지역구인 인천 미추홀을에 안상수 의원을 전략공천하자 같은 달 2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통합당은 미래도 없고 통합도 없는 선택을 했다"고 반발한 바있다.

인천 지역 정치계에 정통한 것으로 알려진 야권의 한 핵심인사는 이날 기자와의 통화에서 "윤 의원을 공천에서 배제한 것은 아무래도 당에서 친박 색채를 빼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 같다"며 "윤상현 의원은 무소속으로 나오더라도 평소에 지역을 너무나 잘 일궈왔기 때문에 당선 가능성이 충분한데, 어차피 이럴거면 이 지역에 전략공천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고 일갈했다. 실제로, 적잖은 인사들은 윤 의원이 미추홀을 지역에서 상당한 경쟁력을 갖고있다고 입을 모으는 상태다.

전략공천이 이뤄진 더불어민주당 평택시을 선거구는 그동안 표밭을 다져온 예비후보들이 모두 강력 반발하면서 지난 1일 성명서를 통해 "전략공천이 철회되지 않으면 집단 탈당도 불사하겠다"고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은 "더불어민주당은 평택을 지역 1만 당원 모두의 염원과 투지를 모아 전략공천 지정을 철회하고 공정한 경선 시행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수차례 전략공천 철회 요청에도 불구하고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중앙당의 행태에 분노를 금할 길이 없다"며 "당을 믿고 눈보라 속 겨울 한풍을 거스르며 이 지역에 민주당의 깃발을 꽂기 위해 불철주야 땀흘려온 이들을 외면하고 왜 전략지역으로 결정했는지 명백히 밝혀야 한다"고 일갈했다.

평택시 을선거구에서는 민주당 예비후보로 김기성 전 평택시의회 부의장, 오세호 전 경기도의원, 오중근 전 평택을지역위원장, 유병만 전 문재인대통령후보 정책본부 정책자문위원, 이인숙 전 19대 국회의원선거 후보 등 5명이 경선에 대비하는 등 표심을 공략해왔다. 하지만 김현정 전 전국사무금융 서비스노조 위원장을 전략공천하자 일제히 반발했다. 

이 같은 사태는 몇가지 측면에서 시사점을 던져준다. 각 당의 공천관리 기관들이 과연 시스템에 의한 공정한 공천관리를 하고 있느냐라는 점과 지역과 무관한 인사들이 당내의 인적 네트워크가 좋거나 인지도가 앞선다는 이유만으로 전략공천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공천에서 배제된 예비후보들은 물론이고, 제3자적 입장에서 이런 사태를 바라보는 사람들조차도 상식적으로나 논리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총선 공천과정은 철저히 시스템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이 정당성을 갖고 있다면, 공천관리위원회는 계량화된 객관적 수치외에는 그 어떤 인간적 관계나 그밖의 요소들은 일체 배제해야만 할 것이다.

만의 하나라도 공천과정이 깔끔하고 투명하지 못하다면, 당의 소중한 자산들이 기껏 해당 지역을 짧게는 몇년에서부터 길게는 수십년 간 일궈왔음에도 불구하고 당에서 등떠밀림 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상태에 이를 것이다. 이리 된다면, 당에서 전략공천한 사람도 낙선하고 원래부터 해당 지역을 일궈왔던 그 예비후보도 실패해, 어부지리로 엉뚱한 사람이 당선되는 최악의 결과를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양패구상(兩敗俱傷)이 되는 셈이다.

그것이 어떤 지역이건 간에 해당 지역을 잘 알고 선거에서 경쟁력 있는 후보는 특별한 하자가 없는 한, 최대한 살려주는 선에서 공천이 이뤄지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공든 탑이 무너져서 그 억울함에 못먹는 감 찔러나 보는' 억하심정이 생겨서 선거를 망치는 그런 일이 발생하기 십상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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