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고종관 기자
  • 입력 2020.03.12 19:04

질병 집중탐구⑥ '과민성장증후군'/ 강동경희대병원 한방소화기내과 박재우 교수

강동경희대병원 한방소화기내과 박재우 교수.
강동경희대병원 한방소화기내과 박재우 교수.

[뉴스웍스=고종관 기자] 위장관은 ‘마음의 거울’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을 굳이 들지 않더라도 위장관 기능과 운동에는 심리적인 기제가 담겨있다. 과민성장증후군의 ‘과민성’이란 접두어 역시 이 같은 의미를 반영한다. 그러다보니 환자들은 ‘내가 예민해서 걸린 병’이라는 억울(?)한 오해를 받는다. 사실 그렇다면 과민성장질환자는 심리적 치료를 받거나, 정신과의 세컨드오피니언이라도 받아야 할 것이다.

한의학에서의 접근방법은 다르다.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에 따라 같은 질병명을 사용하지만 환자를 분류해 치료하는 방식은 매우 독특하다. 변증(辨證)에 따른 '방제학(方劑學)'이 바로 이것이다.

변증은 마치 토양을 분류하는 것과 같다. 땅의 성질에 따라 작물의 성장이 다르고, 병이 발생한다는 개념이다. 치료의 근거를 토질 즉 개인마다 다른 체질에서 찾는 것이다.

강동경희대병원 한방소화기내과 박재우 교수는 ‘신세대 한의사’다. 전통적인 한방의서를 기본방으로 삼지만 이를 검증하는 작업에 현대의학적 연구방법론을 접목한다. 과학의 근간이 되는 ‘재현성’과 ‘표준화’를 통해 신뢰성과 대중성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SCI급 국제 저널에 발표된 50여 편의 논문, 그리고 비슷한 편수의 국내 학회지에 수록된 논문이 이를 말해준다. 그는 한방 진단도구의 하나인 복진기 공동개발 수행을 통해서도 한의학의 현대화에 기여하고 있다.

박재우 교수가 보는 위장관질환의 변증론적 해석, 그리고 위장관 중에서도 난치이면서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과민성장증후군의 한의학적 치료방법과 효과에 대해 알아본다.

Q: 국내에 과민성장증후군 환자는 얼마나 되나.

A: 보고기관마다 차이는 있지만 6~10% 정도다. 실제 치료받지 않은 사람을 포함하면 더 많을 듯하다.

Q: 어떤 사람에게 흔히 나타나는가.

A: 이곳을 찾는 환자의 30~40%가 과민성장증후군 환자다. 연령대별로는 50~60대가 가장 많고, 다음이 20~30대, 그리고 10대 순이다. 과민성 증상은 10대에 시작돼 계속 진행된다. 이는 이 질환이 스트레스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Q: 이런 분들은 어떤 증상을 호소하나.

A: 주된 증상은 설사와 변비, 복통, 가스가 차는 등 4가지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 주 증상이 다르다. 설사만 하거나,  또는 변비만 계속되는 환자, 설사와 변비를 번갈아 하는 유형의 환자도 있다. 여성은 변비형이, 남성은 설사형과 설사·변비 교대형이 많다. 물론 이런 증상이 있다고 해도 과민성장증후군으로 확진하려면 장염 등 다른 원인질환에 의한 증상을 배제해야 한다.

Q: 다른 원인질환이라면?

A: 과민성장증후군은 기능성 변비나 다른 질환에 의한 2차적 변비와 구분해야 한다. 과민성은 변을 보기 전에 배가 몹시 아프다거나 하는 불편한 증상이 있다가 화장실을 다녀온 뒤에는 사라진다. 하지만 기능성 변비는 이러한 증상이 별로 없으면서 불편함만 계속된다.

또 기능성 변비환자는 장운동이 떨어져 변을 밀어내는 힘이 약하다. 노인성 변비가 이 범주에 포함된다. 이밖에도 2차적 변비는 당뇨병이나 갑상선기능저하증 등에 의해 발생하는 것을 말한다. 이럴 때는 원인질환을 먼저 치료해야 한다.

따라서 과민성대장증후군을 진단할 때는 반복되는 복통, 배변 회수, 대변의 형태 등을 판단해 진단한다.

Q: 과민성장증후군은 양방에서도 쉽게 잡히지 않는 질환인데….

A: 그렇다. 염증이나 기능의 문제처럼 원인이 딱히 없다보니 치료방법을 제시하기 어렵다. 신경이나 장이 예민하다고 설명하는 정도다. 때문에 대증치료에 머물게 되고, 환자도 결과에 만족하지 못한다.

Q: 한의학에서의 치료 접근방법은.

A: 사람은 개인마다 체질이 다르다. 몸에 열이 많은 사람과 차가운 사람, 오장육부의 허와 실 등 모두 다르다. 이를 분류한 것이 ‘변증(辨證)’이다. 같은 과민성장질환자도 이렇게 변증이 다르기 때문에 거기에 맞게 치료해야 한다.

Q: 말하자면 맞춤치료의 개념인가.

A: 맞다. 양방도 최근 유전적 타입에 따른 맞춤치료로 가지 않나. 같은 약을 써도 환자마다 효과가 다르기 때문에 유전자 패널검사를 통해 약의 효능을 사전에 가려낸다. 물론 아직은 암환자 등 일부에서 적용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이러한 추세가 확대될 것이다.

Q: 사람마다 다른 변증은 어떻게 가려내나.

A: 한방에는 보고(望診), 듣고(聞診), 묻고(問診), 절진(切診, 촉진)하는 네 가지 진단법이 있다. 환자의 맥을 만지고, 혀의 상태, 배를 만졌을 때의 소견 등을 종합해 판단한다.

Q: 의사의 진단에 주관적 요소가 많이 작용할 것 같다.

A: 그동안 한의계는 이를 정량화하기 위한 표준화 작업과 진단장비들을 많이 개발했다. 이렇게 객관적인 방법으로 환자의 주된 증상과 부수증상, 그리고 관찰소견 등을 참고해 변증을 분류한다.

예컨대 맥의 상태를 보는 맥진기, 혀의 색깔과 설태 등을 측정하는 설진기는 이미 개발돼 있다. 복진기 역시 완성돼 임상시험 단계에 와 있다. 물론 혈액검사나 혈압처럼 100% 정확하지 않지만 정량적 진단도구로 국제적인 인정을 받고 있다.

Q: 복진기는 어떤 지표를 가지고 측정하나.

A: 복부에 압통 유무나 위치, 긴장도, 복부에서 나타나는 각종 형상 등을 측정한다. 압통의 경우 호소하는 부위마다 임상적 의미가 다르다. 복진기를 통해 부위에 따른 압통이 동일하게 재현되는지 알 수 있다. 이외에 복직근의 긴장도, 복부가 차가운 정도, 복부의 형상 등 4가지 지표에 대한 정량화를 시도해 의미있는 결과를 도출했다. 즉, 이 같은 압통, 긴장도, 한열, 형상에 대한 측정을 한의사가 아닌 종합진단장치를 통해 측정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한 임상연구가 진행 중이다. 현재 고려대 안암병원과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어 곧 정량화 및 표준화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Q: 복부 모양의 경우 객관화하기 쉽지 않을 듯하다.

A: 복부를 3차원으로 영상화해 사람에 따라 이를 구분해 주는 알고리즘을 개발 중이다. 예컨대 늑간이 넓은 사람은 소화력이 좋다. 반면 좁은 사람은 비위가 약한 것을 경험적으로 알 수 있다. 한의사의 개인 경험은 과학적 진단법이 될 수 없지만, 이런 데이터가 모여 인공지능을 통해 분류하면 이는 훌륭한 진단모델이 될 수 있다. 이렇게 진단도구를 변증에 이용하면 어떤 한의사가 진단하더라도 주관성에 의한 오차를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는 위장의 소화운동 등을 진단항목에 추가할 계획이다.

Q: 과민성장증후군의 환자는 몇가지 변증으로 나눌 수 있나

A: 간기승비(肝氣乘脾), 기체습조(氣滯濕阻), 장위열결(腸胃熱結), 비위허약(脾胃虛弱), 신양허쇠(腎陽虛衰) 등 5가지 정도로 분류할 수 있다.

예컨대 스트레스를 받으면 설사 증상이 더 심해지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이는 간기울혈(肝氣鬱結=간기승비)형일 가능성이 높다. 한의학에서 간은 뇌의 영역으로 스트레스를 풀지 못하면 간에 울혈이 오고, 그 영향이 장에 미친다. 이런 환자에겐 통사요방(痛瀉要方)을 적용한다. 중국 금나라 때 한약처방이지만 지금도 효과가 좋다.

비위허한(비위허약)형은 위나 장기능이 약해 찬 음식과 냉한 자극에 민감하다. 속이 차고, 냉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다. 서양의학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유형을 나누지는 않지만 실제로는 존재한다. 이렇게 비위허한 장질환자로 분류된 환자는 ‘삼령백출산(蔘苓白朮散)’으로 치료한다.

Q: 치료 효과가 궁금하다.

A: 기존의 임상연구방법으로 한의학적 치료법의 효과를 평가하는데 여러 가지 제약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우리나라를 비롯한 중국에서 다양한 연구방법론을 적용해 이를 객관화 또는 검증하는 임상논문을 발표하고 있다. 예를 들면 환자에게 동일한 표준 한약을 처방했을 때와 변증별로 구분해 처방했을 때 후자에서 효과가 높다는 결과가 나타났다.

강동경희대병원 한방소화기내과를 찾는 과민성대장증후군 환자는 대부분 대학병원이나 대형병원을 거쳐 오는 만성화된 환자가 많다. 다행히 한방치료는 매우 고무적이다. 지난 15년간 임상경험으로 살펴보면 설사형, 그리고 복통을 주증상으로 하는 환자들이 가장 치료가 잘 된다. 이 분들은 80~90% 호전 양상을 보인다. 그 다음으로 설사·변비 교대형이 50~70%, 변비형은 30~40%의 효과를 보이고 있다.

Q: 변비형이 특별히 낮은 이유는.

A: 변비형은 여성에게 많고, 만성화 경향을 보인다. 특히 변비약을 처방받거나 혹은 자가 구입한 변비약을 오랫동안 복용하는 사례가 흔하다. 이런 환자의 대장은 기존 변비약에 내성을 보일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이러한 난치성 변비형 IBS환자에 대한 새로운 처방과 치료방법이 개발 중에 있으며, 한의학에서도 여러 치료법들이 시도되고 있다.

Q: 한방에서 환자를 치료할 때 애로사항은 없나.

A; 건강보험수가가 적용되는 56종의 급여 한약제제로는 다양한 유형의 환자를 치료하기 힘들다. 대부분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 오신 분들이라 만성화된 점도 그렇다. 그러다보니 일부 한약재는 보험적용이 안돼 환자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하지만 많은 환자분이 대학병원을 거쳐 온 만큼 이해를 잘 해주신다. 처방을 할 때도 비급여 항목에 대해 충분히 이해를 시켜드리는 편이다.

Q: 과민성장증후군은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대표적인 질환이다. 그동안 기억나는 환자는.

A: 독일에서 성악을 전공하는 분이었다. 체격이 건장한 30대 환자였는데 무대에만 오르려고 하면 복통과 함께 설사 증상이 나타난다고 했다. 변증을 구분해 2주 단위로 4주간 치료했다. 이후 독일에 돌아간 뒤 부모들로부터 6개월 정도 예후를 들었는데 '증상이 사라졌다'며 매우 만족해했다. 이 분은 몸에 열이 많은 장위열결(腸胃熱結)형이었다. 체열이 높다보니 저수지에 가뭄이 들 듯 몸 안의 음기가 마르는 유형이다. 그래서 찬 성질의 한약재로 체내의 열을 내리고, 대장의 기능을 강화시키는 원리로 치료했다.

또 다른 분은 30대 후반의 직장인이었다. 하루에 5~10회 배가 아프면 바로 설사가 나타나 출퇴근버스 타는 것도 어렵다고 호소했다. 스트레스에 취약한 타입으로 10대부터 증상이 시작됐다고 한다. 이분에겐 통사요방에 몇 가지 약재를 가감했다. 6개월 복용하면서 약을 줄이고, 이후 설사가 멎어 치료를 중단했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너무 많다.

Q: 다른 질환에도 변증 치료가 잘 되나.

A: 이곳을 찾는 환자의 70~80%가 기능성 위장관질환으로 오는데, 이중 절반이 기능성소화불량 환자다. 위축성 위염이나 위식도역류 환자도 많이 찾는다. 이들 환자도 병증으로 분류해 치료한다.

만성위염이나 위축성 위염은 내시경 소견에서 많이 나타나지만 양방에선 대증요법 외에는 특별히 치료하지 않는다. 이 분들 중 소화불량과 속쓰림, 가스가 차고 속이 더부룩하다고 호소하는 환자가 많다. 여기에도 6가지 변증으로 분류해 한약과 뜸, 침을 적용한다. 특히 뜸은 만성화된 소화기성 질환에 탁월하다.

또 10여 년 전부터 급증하는 질환이 역류성 식도질환이다. 이들 환자에겐 주로 양성자펌프차단제라는 양약이 투여되고 있지만, 이 약을 장기간 복용하면 위산이 오랜 기간 억제돼 SIBO(Small intestinal bacterial overgrowth) 같은 부작용이 나타난다. 위산을 억제하다보니 위장관의 산도가 떨어져 세균이 번식하고, 이로 인해 복부팽만이나 설사와 같은 증상으로 고생한다. 일본에선 육군자탕이 난치성 식도역류환자에게 효과가 있다는 논문이 이미 발표된 적이 있다. 우리는 여기에다 변증 개념을 추가해 치료효과를 높인다. 하지만 괄약근이 약해져 수술할 정도라면 치료가 쉽지 않다.

Q: 마지막으로 과민성장질환자가 생활 속에 유념해야 할 내용이 있다면.

A: 과민성장질환으로 혼동할 수 있는 환자들이 있다. 유당불내증이 대표적이다. 음식 중에 유당이 들어 있으면 이를 소화하지 못해 가스가 차고, 설사를 한다. 또 밀가루의 글루텐을 먹으면 역시 속이 부글부글 끓는 글루텐불내증(셀리악병)도 있다. 이밖에도 흡수되지 않은 당류를 함유한 포드맵(FODMAP) 식품을 섭취하면 뱃속에 가스가 차면서 불편해 하는 사람도 있다. 당이 장에 흡수되지 못해 세균에 분해되고 이로 인해 가스가 차고 설사를 하는 것이다. 이 정도가 아니라면 개인 취향과 적성에 따라 매운 음식이나 기름진 음식 등을 가려 섭취하면 된다.

운동요법은 장기능 회복에 긍정적인 작용을 한다. 하루 중강도에서 고강도의 운동을 한 시간 이내로 주 3~5회 습관화할 것을 권한다.

Q: 물을 마시는 것도 도움이 되나.

A: 하루에 물을 8잔 먹으라고 권하는데 의학적 근거는 찾을 수 없다. 한방에서는 오히려 물을 갑자기 많이 마시면 소화장애를 악화시킨다고 돼 있다. 따라서 물을 마시는 양을 정하기보다 자신에게 맞는 양을 적당히 마시면 된다.

위장관질환이 있다면 카페인은 특별히 삼가야 한다. 특히 장이 예민하거나 역류성 식도질환자는 하루 1잔도 안 좋을 수 있다. 술 역시 일시적으로 장운동을 돕지만 결국은 위장기능을 떨어뜨리므로 삼가야 한다.

◇박재우 교수는:  박재우 교수는 연구하는 한의사다. 지금까지 발표된 논문수는 100여 편에 이른다. 대부분이 SCI급으로 이중 절반이 넘는 50여 편이 해외학술지에 실렸다. 동물을 이용한 기초연구도 적지 않다.

그가 이렇게 진료 틈틈이 연구에 매달리는 것은 ‘한의학이 미래 의학’이라는 신념 때문이다. 그는 현대의학적 연구방법론과, 그리고 인공지능 및 빅데이터라는 새로운 과학기술을 접목시켜 새로운 한의학의 가치를 찾아내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

박 교수는 한국한의학연구원과 함께 진행해온 ‘복진기’ 개발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 진단기기가 개발되면 복진법이 정량화되면서, 과민성 또는 기능성소화불량 진단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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