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3.21 17:44
동양에서 '영원한 스승'이라는 뜻의 만세사표(萬世師表)로 추앙받는 공자(孔子)의 상.

우리는 선생(先生)을 스승과 같은 뜻으로 쓴다. 그러나 원래 이 단어는 글자 그대로 먼저(先) 세상에 나온(生) 사람을 가리켰다. 공자의 <논어(論語)>에 그런 쓰임의 단어가 먼저 나온다. “일이 있으면 어린 사람이 나서고, 술과 음식이 있으면 어른이 (먼저) 먹는다(有事弟子服其勞, 有酒食先生饌)”는 표현이다. 여기서 제자(弟子)와 선생은 지금의 그 뜻이 아니라, 어린 사람과 어른을 지칭한다.

그러면서 결국 先生이라는 한자 단어는 나이 든 사람에 대한 존칭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나이도 많고 학문도 쌓은 사람, 더 나아가 지금의 스승이란 뜻까지 얻는다. 공자 시대에 제자들이 그를 호칭할 때 썼던 부자(夫子)라는 단어도 선생님을 의미한다.

스승을 일컫는 한자 단어는 꽤 많다. 스승을 아버지와 임금의 반열에 올려 함께 존경했던 전통 때문일 것이다. 선생님이 제자를 가르칠 때 앉는 자리를 강석(講席)이라고 하는데, 이 또한 스승을 경칭하는 단어로도 자리 잡았다. 함장(函丈)도 마찬가지다. 제자가 자리에 앉을 때 스승과의 거리를 한 장(丈) 둔다(函)는 예법에서 나왔다. 한 丈은 옛 길이 단위로 3미터 조금 넘는다.

옛 중국 예법에서는 주인이 손님을 맞이할 때 동쪽에 서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東(동)이라는 글자의 새김 중에는 ‘주인’의 뜻도 있다. 현대 중국어에서 집 주인을 房東(방동)으로 적는 이유다. 손님은 그 맞은편인 서쪽에 자리를 잡는다. 그런 경우를 뜻하는 서석(西席), 서빈(西賓) 역시 나중에 ‘자식 가르치는 선생님’의 호칭으로 발전했다.

우리에게도 제법 알려진 단어가 진탁(振鐸)이다. 방울(鐸)을 울린다(振)는 뜻인데, 이 역시 교직에 있는 사람들을 일컫는 일반 명사다. 鐸(탁)은 흔들어 소리를 내는 청동제 방울이다. 방울 안에 있는 소리 울림 장치를 나무로 만들었을 경우 목탁(木鐸), 금속으로 만들었을 때는 금탁(金鐸)이다. 일반 백성에게 행정에 관한 법령 등을 알릴 경우에는 목탁, 전쟁이 벌어졌을 때는 금탁을 울렸다고 한다. 그 목탁도 결국 스승의 동의어로 발전했다.

춘잠(春蠶)은 제법 운치까지 풍기는 단어다. 봄(春) 누에(蠶)인데, 실을 뽑기 위해 모든 힘을 다 하는 누에의 모습에서 스승의 이미지를 봤던 모양이다. 당나라 시인 이상은(李商隱)의 시에 나온 “봄누에는 죽을 때까지 힘써 실을 뽑는다(春蠶到死絲方盡)”는 구절이 이와 관련해 유명하다. 섶을 다 태워 불길을 살린다는 의미의 성어가 薪盡火傳(신진화전)이다. 앞에 쌓인 지식을 정열적으로 후대에게 전하는 선생의 이미지다. 그래서 두 글자를 뽑아 薪傳(신전)이라고 조합해 선생을 가리켰다.

춘우(春雨)는 봄비다. 메마른 대지를 촉촉이 적셔 새 생명의 움을 틔우는 고마운 비다. 본래는 봄기운을 퍼뜨리는 바람, 그리고 만물에 생기를 주는 비라는 뜻의 춘풍화우(春風化雨)의 준말이다. 역시 그런 고마운 가르침으로 어린 생명에 지식의 빛을 전하는 스승의 뜻이다. 人梯(인제)도 같다. 사람(人) 사다리(梯)다. 제 몸을 바쳐 남을 올려주는 사다리에서 스승의 그림자를 읽었다.

몽매(蒙昧)와 미혹(迷惑)에 지식의 빛을 던져 영혼을 일깨우는 이가 바로 스승이다. 요즘 교권의 침해가 심각하다. 존경을 받지 못할지언정, 제자의 욕설과 학부모의 조롱에도 시달리는 스승의 위상을 생각하면 그렇다. 곧 스승의 은혜를 기리는 날이 닥친다. 찾아가 뵙지는 못하더라도 전화기 한 번 열어 내게 빛을 던져주셨던 스승께 안부라도 여쭙자. 그리고 “선생님, 그저 감사합니다!”라고 한 마디~.

 

<한자 풀이>

振 (떨칠 진): 떨치다. 떨다. 진동하다. 구원하다. 거두다. 건지다, 구휼하다. 떨쳐 일어나다. 속력을 내다. 무리를 지어 날다. 들다, 들어 올리다. 열다.

鐸 (방울 탁): 방울. 풍경(風磬). 교령 등을 선포할 때 흔드는 큰 방울.

蠶 (누에 잠, 지렁이 천): 누에. 양잠. 누에를 치다. 잠식하다. 지렁이.

薪 (섶 신): 섶, 땔감용 나무. 잡초, 풀. 봉급. 나무를 하다.

梯 (사다리 제): 사다리. 실마리. 새싹. 기대다, 의지하다. 오르다.

 

<중국어&성어>

老师(師) lǎo shī: 현대 중국어에서 선생님, 스승을 일컬을 때 가장 흔하게 쓰는 단어.

函丈 hán zhàng: 스승과 떨어져 앉는 거리, 또 스승. <예기(禮記)>의 “席間函丈(석간함장)”에서 나왔음.

春蚕(蠶) chūn cán: 봄에 키우는 누에, 봄누에. 나중에 스승의 뜻을 얻음.

春风(風)化雨 chūn fēng huà yǔ: 봄바람, 생기를 주는 비. 그렇게 소리 없이 제자를 길러내는 스승의 은덕.

西席 xī xí: 오른쪽을 더 높이는 예법에서 비롯. 그에 따라 손님은 귀하게 오른쪽에 모시며, 방위로는 서쪽에서 동쪽을 향함. 손님과 스승을 모시는 자리, 또 ‘자식을 가르치는 스승’.

(=西賓)

师长(師長) shī zhǎng: 고대에 스승을 일컬었던 단어. 군사 용어로는 사단장을 가리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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