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최만수 기자
  • 입력 2020.03.17 09:10

[뉴스웍스=최만수 기자] 4·15총선을 한 달 앞두고 각 정당의 공천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내홍도 깊어지고 있다. 특히 미래통합당 공천작업을 진두지휘한 김형오 공천관리위원장이 지난 13일 전격사퇴하면서 거대 양당이 공천 파동으로 휘청거리고 있다.

통합당은 대권을 놓고 경쟁한 친이(친이명박), 친박(친박근혜)으로 갈라진 18대 총선 이후 4년마다 공천 진통이 반복되고 있다. 이번엔 계파색이 비교적 옅은 김형오 위원장에게 '원포인트 칼잡이'를 맡겼지만 미완에 그쳤다. "눈 가리고 칼을 든다"는 일성으로 의욕을 보인 김 위원장은 '물갈이를 넘어 판갈이'를 과감하게 밀어붙였지만 '텃밭'인 PK(부산·경남), TK(대구·경북) 공천 발표 후 거센 후폭풍에 휩싸이며 '사천(私薦)' 논란 속에 중도하차하고 말았다.

PK(부산 영도)출신의 5선으로 국회의장을 지낸 김 위원장은 황교안 대표의 재의 요청에다 김종인 선대위원장 영입 움직임 등 '전권 행사'가 어려워지자 미련없이 짐을 쌌다. 그는 “나눠 먹기 없고, 계파 없고, 밀실 없는, 공정하고 청정한 공천이었다"고 강변했지만 떠나는 그를 붙잡는 이는 많지 않았다. 김형오 공관위를 놓고 '비우기는 성공했지만 채우기가 미흡하다'는 총평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도 컷오프에 반발해 불출마 선언하는 의원이 속속 발생하고 있다.

공천 파열음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양당의 공통적인 현상이다. 자리는 하나인데 경쟁자가 많으니 당연히 공천 결정에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 모두가 승복하는 공정하고 청정한 공천은 선언적 의미에 그친다.

어떤 정교한 잣대를 갖다대 현미경 공천을 한다고 해도 모든 후보자들을 만족시키는 공천은 불가능하다. 지금처럼 공관위가 전권을 휘두르는 상황에선 더욱 그러하다. 사심(私心)이 끼어들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공관위가 아무리 '공정'을 강조해도, 많은 예비후보자들이 '구두선(口頭禪)' 으로 받아들이면 일이 꼬인다.

4년 주기로 지긋지긋하게 되풀이되는 통합당의 공천 불복 현상을 설명하기는 어렵지 않다. 칼을 쥔 쪽이나 칼날을 받는 쪽 모두 판단기준이 다르고, 명확하게 재단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쾌도난마(快刀亂麻)가 되면 좋겠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선당후사(先黨後私)의 희생정신을 강요하려면 '나를 믿고 따르라'는 강력한 리더십이 필수인데, 지금의 통합당 사정은 '아니올시다'이다. 절대적 리더십이 실종된 상황에서 정치인의 각자도생(各自圖生)을 뭐라 하기 힘들다. '나부터 살고보자'란 소아(小我)를 누가 탓할 수 있을까.

당을 떠나 주민들의 심판을 받겠다는 명분도 큰 틀에선 맞는 소리다. 무소속으로 당선돼 당으로 복귀한 이른바 '생환' 의원들은 여의도에서 전투력과 자생력을 공인받게 된다. 그러나 대개 탈당 전력은 4년 후 부메랑이 돼 공천 흠결로 돌아온다. 

통합당 공천에서 컷오프된 현역 의원들의 무소속 출마 러시는 이번 총선의 최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 후보등록 시한(3월 26~27일)이 가까워지면 통합당 성향의 무소속연대가 현실화될 가능성도 있다. 만약 4·15총선에서 통합당 탈당 도미노에 이은 무소속의 선전 현상이 나타난다면 현행 공천시스템에 대한 대수술 요구가 비등할 것으로 전망된다.

경남 양산을에서 경선 배제된 홍준표 전 대표가 17일 대구 수성을에 무소속 출마를 선언할 예정이다. 홍 전 대표는 “정치를 시작한 후 세 번의 황당한 꼴을 당했는데, 이번에 황(교안)과 김(형오)이 합작한 협잡공천이 가장 황당하다"며 “살아서 돌아가 혼을 내겠다”고 특유의 강한 톤으로 공관위를 비난했다.

대구에선 지난 13일 곽대훈(달서갑) 의원은 "김형오 공관위는 지난 (20대 총선의) 이한구 공관위보다 더 못한, 참 나쁜 결정을 했다"면서 지역에서 처음으로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곽대훈, 홍준표 후보를 신호탄으로 정태옥(북구갑) 의원, 주성영(북구을) 전 의원, 이진훈(수성갑) 전 수성구청장 등의 무소속 출마로 가닥을 잡았다. 경북에선 박승호(포항남·울릉) 전 포항시장, 김석기(경주) 의원, 백승주(구미갑) 의원 등이 무소속 출마 채비에 들어갔다. TK의 무소속 돌풍이 예견되는 대목이다.

PK에선 김태호 전 경남지사도 당의 수도권 험지 출마 요청을 거부하고 자신의 뜻대로 고향에서 무소속으로 표밭을 누비고 있다. 김 전 지사는 페이스북에서 "큰 정치인은 고향발전을 위해서 일할 수 없다는 건 무슨 해괴망측한 논리냐"며 "(공관위가) 오만한 결정을 내렸다. 당을 잠시 떠난다. 꼭 살아서 돌아오겠다"고 밝혔다.

TK와 PK는 통합당의 텃밭이어서 공천 잡음도 거세다. 경선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한 다수의 예비후보자들이 무소속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전화여론조사 경선에 들어간 일부 지역에선 '마타도어' 악령도 재현되고 있다. '공천=당선'이란 기류가 강한 '보수 본산' 경북은 경선부터 과열 양상이다. 시대착오적인 '흑색선전'은 달콤한 독이다. 뿌리는 사람이나 먹는 사람 모두 상하기 마련이다. 시민들이 깨어있어야 하는 이유다.

'정치인의 수준은 유권자들의 수준'이란 통설이 있다. 정당은 소비자(유권자)들이 좋은 재료(후보자)를 고를 수 있도록 적극 도와야 할 책무가 있다. 공관위는 1차적으로 범법자, 부적격자 등을 거른 뒤 후보군을 진열대에 올려놓는 역할에 그쳐야 한다. 정치신인이나 여성(단 현역은 제외) 등에겐 지금보다 훨씬 높은 가점을 부여해 현역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을 손보면 된다.

4년 전 기억이 새롭다. 당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상향식 공천'을 부르짖었지만 친박 세력에 밀려 '옥새파동'이란 희화화된 장면을 연출했다. '한국형 오픈 프라이머리'를 경선에서 부분적으로 시행한 김형오 위원장의 '낙마'도 신종 계파 갈등의 희생양으로 읽혀진다.

우리 정치권은 언제까지 이런 정치·사회적 스트레스를 계속 양산할 것인가. 다음 총선부터 '계파 나눠먹기·밀실·낙하산 공천'이란 말이 나오지 못하도록 21대 국회에서 여야가 '완전 국민경선제' 도입을 논의했으면 한다. 역선택 등 우려도 있지만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주는 것이 국회 개혁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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