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장대청 기자
  • 입력 2020.03.21 11:25

"힘들게 모은 쌈짓돈, 코로나19 자원봉사자에게 주세요"…면마스크 만들어 취약계층에 전하는 '작은 기부'도 활발

[뉴스웍스=장대청 기자] 어느새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지 한 달 반 가량이 흘렀다. 

바이러스는 쉽게 사그라들 기미 없이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봄이 왔지만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불안감으로 어디를 다니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생활에도 경제에도 겨울보다 더 찬 바람이 분다.

이런 와중에도 따뜻함을 퍼뜨리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돕고자 나선 기초생활 보장 수급자들이 선행의 주인공들이다. 하루하루 생활도 쉽지 않은 기초생활수급자들은 주민센터와 경찰서를 찾아가 애써 모은 돈과 마스크를 선뜻 기부하고 있다.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이들의 모습이 차디찬 날 속에서 그나마 온기를 전하고 있다.

양옥모 할머니가 남긴 편지. (사진제공=마포구)
양옥모 할머니가 남긴 편지. (사진제공=마포구)

지난 12일 양옥모(78) 할머니는 서울 마포구 용강동 주민센터 동장실을 찾았다. 얼마 전 용강동으로 전입한 그는 현금 50만원과 편지가 들어 있는 봉투를 동장에게 건넸다. 양 할머니는 최근 언니가 질병으로 수발이 필요한 상황이라 자신이 직접 봉사활동에 나서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 성금을 기부한다고 밝혔다.

동장실에 남긴 편지에는 "코로나19가 다시 확산되는 어려운 시기 자원 봉사도 못 나가고 집에서 하루하루 보내는 것이 너무 힘들어 동장님을 찾았다. TV에서 앞장 선 자원봉사자들의 성실한 마음과 모습을 볼 때 매우 감동스러웠다. 오늘 50만원, 적은 돈이지만 서울시 코로나19 자원봉사자들에게 필수품을 지원하고 싶다. 이 일은 제가 할 수 없기 때문에 동장님에게 부탁드린다"고 적혀 있었다. 양옥모 할머니는 생활이 넉넉지 못한 기초생활수급자였다.  

지난 5일에는 한 주민이 마포구 망원1동 주민센터 문을 두드렸다. 그는 현금 50만원이 든 봉투를 직원에게 건넸다. 코로나19 극복에 힘을 더하고 싶다는 뜻이었다.

이 주민 역시 기초생활수급자였다. 기부자의 경제적 사정을 알고 있던 직원은 "일시적인 기분으로 기부를 하면 본인이 어려워질 수 있다"며 돈 받기를 만류했다.

그러나 이 주민의 뜻은 완강했다. 전화 상담과 가정방문 상담에서 재차 기부를 말렸으나 주민은 끝내 기부를 마쳤다. 그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것은 맞지만 더 어려움에 처한 주변 이웃을 돕고 싶다"고 밝혔다.

종로구 무악동의 기초생활수급자는 돼지 저금통 하나를 지난 12일 무악동 주민센터에 가져오기도 했다. 저금통에 담긴 동전과 지폐는 106만원 가량이었다. 

부산 지역 기초생활수급자들이 전한 편지와 돈. (사진=부산 경찰 페이스북, 부산 사상구 홈페이지 캡처)
부산 지역 기초생활수급자들이 전한 편지와 돈. (사진=부산 경찰 페이스북, 부산 사하구 페이스북 캡처)

지난 16일에는 70대 할머니가 울산 남부경찰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경비근무 중인 의경에게 KF94 마스크 40장과 현금 100만원이 든 봉투를 건네고 사라졌다. 봉투 안에 든 편지에는 "서장님! 저는 신정 3동 기초수급자 70대 노점상인이다. 대구 어려운 분에게 작은 힘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이 성금을 보낸다"라며 "어려운 분에게 쓰셨으면 고맙겠다. 대구분들 힘냈으면 한다"라고 적혀 있었다.

부산의 기초생활수급자들도 기부를 이어갔다. 지난 18일 오전 부산 사상경찰서 학장파출소를 찾은 80대 여성은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달라"라며 봉투를 건네고 파출소를 빠져나갔다. 봉투 안에는 현금 100만원이 들어있었다. 그는 집을 찾은 경찰관에게 "가족 없이 혼자 사는 기초수급대상자라 나라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돌려받기를 거부했다.

의료급여수급자 보호를 받고 있는 강 씨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부산 사하구 다대1동 주민센터를 찾았다. 그가 건넨 봉투에는 32만1870원이 들었다. 그는 "최근 뉴스를 통해 코로나19 감염병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구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그동안 기초생활수급자로 받은 혜택들을 조금이나마 나누고 싶어 왔다"고 전했다. 

서울 관악구 삼성동 주민센터를 찾은 기초생활수급자가 남긴 쪽지. (사진=관악구청 인스타그램)
서울 관악구 삼성동 주민센터를 찾은 기초생활수급자가 남긴 쪽지. (사진=관악구청 인스타그램)

관악구 삼성동 주민센터를 찾은 한 노인, 인천시 부평구의 40대 여성과 80대 할아버지, 대전 서구 월평 2동에 사는 노부부, 부산 동래구의 70대 노인과 북구의 2명 등 전국 각지의 기초생활수급자들도 힘들게 모은 돈을 내놓았다.

한편 어린 아이들도 자기 몫으로 주어진 마스크를 들고 기부에 동참했다. 지난 19일에는 초등학생과 유치원생 자매가 울산 반구파출소를 찾아 "마스크 없는 이웃들에게 나눠주세요"라고 적힌 손편지와 마스크를 전달했다. 울산 북구 농소1동 파출소에는 어린 아이 둘이 마스크 20장과 손편지를 두고 가기도 했다. 인천의 한 아동도 지구대를 찾아 어린이용 마스크 30장을 기부했다.

이들의 작은 선행은 꼭 부자들만 기부하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불러왔다. 새로운 기부 문화가 조성되면서 참여대상자도 넓어지고 있다. 서울 은평구에서는 생활고에 시달리는 할머니가 내놓은 74만원에 해당 불광2동 주민센터 직원들과 주민들이 돈을 보태기 위해 모금 중이다. 부산 성동구에 사는 한 주부도 "얼마 전 뉴스 기사를 통해 뇌병변 장애를 앓고 있는 기초 생활 수급자의 기부 소식을 접했다"는 쪽지와 함께 기부를 했다. 

직접 만든 면마스크를 취약계층에 전하는 '작은 기부'도 활발하다. 용인 자원봉사센터나 영천시 교육문화센터를 비롯한 지역 센터에서도, 화성 휴먼시아 아파트 마을공동체 등 소규모 공동체에서도 시민들이 모여 꼼꼼이 마스크를 만들고 필요한 이들에게 전했다.  

기초 생활수급자가 밤새 만든 면마스크를 전달받았다는 부산 북구 행정복지센터의 한 직원은 "그 어떤 보건용 마스크보다 방역 효과가 뛰어난듯 느껴졌다"며 "방역 활동과 자가격리자 가정방문 등으로 쌓인 피로가 씻은 듯 사라졌다"고 말했다.

이들이 전한 돈과 마스크들은 비록 큰 액수는 아니지만 무엇보다 큰 힘으로 바뀔 수 있는 감동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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