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현건 기자
  • 입력 2020.03.22 19:05

여야, 말과 달리 험지 위주로 보내…'청년 정치인 잔혹사' 청산 위한 육성시스템 마련 절실

장경태(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청년위원장이 16일 국회 정론관에서 문희상 국회의장아들 문석균 씨의 불출마를 요구하며 민주당 영입인재로 의정부갑에 공천된 오영환 후보에 대한 지원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전현건 기자)
장경태(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청년위원장이 지난 16일 국회 정론관에서 문희상 국회의장아들 문석균 씨의 불출마를 요구하며 민주당 영입인재로 의정부갑에 공천된 오영환 후보에 대한 지원을 촉구하고 있다.(사진=전현건 기자)

[뉴스웍스=전현건 기자] 여야는 총선을 앞두고 청년 인구에 비해 이들을 대표하는 의원이 부족하다며 청년 정치인을 발탁해 국회를 젊게 바꾸겠다고 외쳤다.

하지만 각 당의 공천작업이 마무리되는 현 단계에서 청년 후보들이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다. 가까스로 경선을 이기고 본선에 올라갔지만 당선이 힘든 '험지 공천'이 대부분이다. 청년 정치인 입장에선 기가 찰 노릇이다. 

총선 예비후보자 등록부터 청년 비중은 높지 않았다. 전체 총선 예비후보자 중 청년 비율은 5%도 되지 않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예비후보자 등록수에 따르면 3월 20일 기준으로 전체 예비후보자 2458명 가운데 20대는 23명, 30대 91명이다. 2030 세대의 비율은 4.5%다.

청년 후보자의 비율은 지난 선거에 비교해 봐도 차이가 난다. 지난 20대 총선 지역구 후보자는 총 934명으로 이 중 2030 세대는 70명으로 전체의 약 7%를 차지했다. 

이번 총선에서 예비후보자가 공천을 받고 얼마나 지역구 후보까지 올라갈지 알 수 없지만 20대 국회보다 비율이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실제 경선 과정에서 청년이 통과할 확률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20대 국회는 한마디로 '고령자 국회'였다. 평균연령이 55.5세로 19대 총선(53.9세)보다 1.6세 많았다. 역대 국회중 평균연령이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19대에서 9명이었던 30대 이하 당선인은 20대 들어 3명뿐이었다. 40대 이하 당선인이 89명에서 53명으로 급감한 반면 60대 이상은 69명에서 86명으로 늘어났다. 

21대 총선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후보자들의 평균연령을 감안한다면 20대 국회와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사진=전현건 기자)
오영환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 (사진=전현건 기자)

민주당, 청년 정치인 공천받아도 험지로

민주당 지역구 중 30대 공천을 받은 지역은 예정지를 포함해 현재까지 총 6곳이다. 장철민(37·대전 동구)·김남국(38·경기 안산단원을)·정다은(34·경북 경주) 등 3곳은 통합당 현역 의원의 지역구다. 민주당이 '청년'으로 규정한 45세까지로 범위를 넓혀도 9곳에 그친다. 이 중 5곳이 타당 의원들의 지역구, 이른바 험지 출마다. 심지어 20대는 존재 자체를 찾아볼 수도 없다.

자신이 속한 당 의원이 현역에 있는 곳이라도 험지는 마찬가지다. 특히 민주당 영입 인재인 오영환(32) 후보는 공천을 받았으나 지역조직 장악에 실패하면서 난관에 부딪히고 있다. 

오 후보는 경기 의정부갑에 공천을 받았다. 원래 이 지역은 문희상 국회의장의 아들인 문석균 예비후보가 '세습공천' 논란으로 사퇴한 뒤 전략공천지역으로 선정된 곳이다. 오 후보의 전략공천이 결정된 직후 지역위원회 400여 명은 반발 성명을 냈고 이후 지역당원들은 '오 후보가 간담회에 참석하지 않으면 해당 행위라고 협박했다'며 간담회 갑질 논란으로 연일 갈등을 빚기도 했다. 

지역위원장을 비롯한 당직자들은 지난 2일 "중앙당이 의정부갑 당원들을 배신하고 잘못된 결정을 했다"며 집단 사퇴했다.

결국 문석균 후보는 17일 무소속으로 출마를 강행해 3파전을 치러야 한다.

집권여당 후보임에도 오 후보는 지역구 텃세가 심하다며 "당 조직 없이 선거를 준비하고 있어 외롭다"고 하소연했다.

민주당이 청년전략공천지역으로 지정된 동대문구을은 장경태(37) 민주당 청년위원장과 의사 출신 김현지(33)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코로나19대책추진단 부단장이 경선을 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 지역구에서 공천 배제됐던 현역 민병두 의원이 곧바로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민 의원은 "민주당이 청년 정치인을 육성하려는 취지에는 공감한다"면서도 "하지만 연고가 전혀 없는 청년을 선거 30일 전에 내려보내는 건 청년에게도 가혹한 일"이라고 밝혔다. 이어 "제가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청년을 돕는다고 해도 기적을 구하기에는 조건이 너무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석연 공관위원장 직무대행. (사진=전현건 기자)
이석연 공관위원장 직무대행. (사진=전현건 기자)

민주당 의원 지역에 청년 집중 배치한 통합당

미래통합당의 청년 정치인 역시 어려운 길을 걷고 있다.

통합당의 '퓨처메이커(Future Maker)' 제도는 청년 후보의 반발을 부른 대표적인 사례다. 앞서 통합당 공천관리위는 수도권 표심을 공략하겠다며 경기 지역 8곳을 '청년벨트'로 선정했다.

문제는 청년벨트로 정한 이 지역구들은 경기 수원정·광명을·의왕과천·남양주을·용인을·화성을·파주갑·김포갑 등 8곳으로 지난 20대 총선에서 모두 민주당 의원들이 당선된 곳이다. 즉 통합당에게는 험지나 다름없는 곳들이다.

청년벨트로 선정된 이 지역구에 16명의 '퓨처메이커' 후보들이 경선을 진행하도록 했다. 다른 지역구 공천에서 이미 탈락한 후보들도 있어서, 사실상 지역구에 아무런 기반도 없는 상태에서 적진에 뛰어들어야 하는 상황까지 나온 것이다.

청년들을 사지로 내몰았다는 비판과 동시에 기존에 지역을 관리하던 예비후보들로부터도 거센 비판이 제기됐다.

경기 수원정 예비후보 임종훈 전 당협위원장 등 6명은 지난 3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청년벨트 지정을 즉각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기존에 당협위원장 등을 맡으며 지역구에서 기반을 닦아온 예비후보들이 공관위의 '청년벨트' 지정으로 인해 불이익을 받게 될 상황이 생기자 집단 반발하고 나섰다.

당 안팎에서 비판이 날로 거세지자 지난 3일 이석연 통합당 공관부위원장은 "청년벨트에 아무나 끌어들인 것은 아니다"며 "청년벨트가 험지는 아니다. 청년 후보들을 '사지로 몰아넣었다'고 언론에서 비판하지만 그렇지도 않다"고 해명했다.

우리도 청년 정치인 육성시스템 도입할 때

청년 정치 확대라는 외침은 역대 총선마다 되풀이돼왔다. 하지만 총선 때마다 각 정당에 어떤 청년이 영입되는지만 잠시 주목받을 뿐, 제대로 된 청년 정치인으로서 역할과 기능을 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동안 청년들은 당의 '청년 친화적' 이미지 구축에 소모했을 뿐이라는 비난이 나오는 이유다.

미국과 유럽 등 해외 선진국의 정당들은 청년 정치 리더 양성 시스템을 오랜 시간에 걸쳐 구축해 왔다. 청년들이 정당 대학생위원회와 청년위원회에 들어가 정당의 이념과 운영 방식을 배우고, 현실 정치 입문의 길도 찾는다.

미국 공화당의 경우 1892년 설립된 '대학생위원회'에서 청년들에게 정치·재무·커뮤니케이션 등 인턴십을 제공하고, 중앙당 당직자나 공화당 관련 회사 직원으로 보내고 육성한다. 이어 대학생위원회를 거치면 청년위원회에서 실무 교육을 받는다.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도 공화당 청년위에서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미국 민주당도 1932년부터 대학생위원회, 청년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워런 매그너슨 상원의원, 스테니 호이어 하원의원,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 등이 이곳에서부터 정치를 배우고 정계에 진출했다.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국가에서도 청년 정치인들이 성장해 중앙 정치 무대에서 활동한다. 프랑스의 에두아르 필리프(48) 총리는 31세에 르아브르 부시장으로 시작해 40세에 르아브르 시장직에 오른 뒤 42세에 하원의원에 당선되며 국가 지도자의 길로 나갔다.

독일 통일을 이룬 헬무트 콜 전 총리는 18세부터 '유겐트 유니온'이라는 청년 조직에서 활동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 헬무트 슈미트 전 총리도 청년 조직에서 활동하다가 기성 정치에 입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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