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현건 기자
  • 입력 2020.03.27 20:00

민심·여심 노리고 법률 개정안 봇물…남은 국회 임기 동안 처리될지 미지수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의 '텔레그램 N번방 성폭력 처벌 강화 긴급 간담회'에서 이인영 원내대표(왼쪽 여섯 번째부터), 진선미 의원, 박주민 최고위원, 서지현 검사 등 참석자들이 처벌 강화 촉구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전현건 기자)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의 '텔레그램 N번방 성폭력 처벌 강화 긴급 간담회'에서 이인영 원내대표(왼쪽 여섯 번째부터), 진선미 의원, 박주민 최고위원, 서지현 검사 등 참석자들이 처벌 강화 촉구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전현건 기자)

[뉴스웍스=전현건 기자] '텔레그램 n번방 사건'으로 불리는 성착취 범죄에 대한 국민적인 분노가 폭발하자 정치권은 재발방지를 위한 대응책 마련에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터진 성 이슈 관련 사건에 어떻게 대응하냐에 따라 '민심'과 더불어 '여심'까지 크게 이탈할 수 있어 각 정당은 물론 선거 후보자 개인까지 나서서 각종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최근 선거를 살펴봐도 2018년 지방선거(남 59.9%, 여 61.2%)와 2017년 대선(남 76.2%, 여 77.3%)에서 여성 투표율이 남성 투표율보다 높았던 것을 생각하면 각 정당은 이번 사태를 더욱 집중적으로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앞서 'n번방 사건'에 대한 국회 논의가 이미 있었지만 소극적이었다는 비난의 여론도 있어 정치권은 이 사건에 대해 더욱 예의주시하고 있는 모양새다.   

여야 의원들 n번방 졸속 심사 논란에 해명 급급

지난 1월 15일 'n번방 사건'은 국회 국민청원 1호로 국회 상임위원회에 회부된 바 있다. 이후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 제1소위원회에서 지난 3월 3일 해당 청원과 관련한 논의가 진행됐고,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조항 중 연예인 등의 사진을 합성해 불법 영상물을 만드는 '딥페이크' 처벌 규정을 두도록 하는 등 일부만을 수정·추가했다.

특히 당시 여야 의원들은 n번방 사건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고 일부 의원들은 '놀이문화'로 언급하며 개인의 자유를 법적으로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의록에 따르면 송기헌 민주당 의원은 "나 혼자 스스로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하는 것까지 처벌할 수는 없다"며 "내 일기장에 내 스스로 그림을 그린단 말"이라고 주장했다.

김도읍 통합당 의원은 "기존 법으로도 처벌이 가능하지 않냐. 청원한다고 법 다 만드나"라고 말했다.

같은 당 정점식 의원도 "내가 자기만족을 위해서 이런 영상을 가지고 나 혼자 즐기는 이것까지 (처벌이) 갈 거냐"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송 의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국회가 (n번방 관련) 청원 내용을 축소해 졸속 처리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며 "발언 일부 내용만 발췌해 마치 n번방 사건 청원을 인지하지 못했고, 청원 자체를 무시한 것처럼 보도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범죄 실행의 착수, 즉 유포 행위를 실행하지 않은 사람에게 딥페이크 영상물을 소유하고 있는 것만으로 처벌 조항을 두는 것이 필요한지에 대해 논의하던 중에 나온 발언이었다"며 "영상물을 제작·소지한 것만으로 처벌하는 내용의 법조항을 만드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고 해명했다.

김 의원도 지난 24일 입장문을 내고 "현행법으로 처벌 가능한지 따져 보고 효과적인 방안으로 처리하자는 차원의 의미였다"며 "다른 청원 요구사항은 해당 상임위에 회부됐다"고 해명했다.

여야 의원들은 법 조항 신설·추가 등 과정에 신중함을 기해야 한다는 취지였다고 해명했지만, 정의당 성평등선거대책본부는 문제적 발언을 한 의원들에 대한 사퇴·공천 취소 등을 촉구했고, 손솔 민중당 청년 비례대표는 이날 서울남부지방검찰청에 법제사법위원회 위원 5명을 직무유기 혐의, 피해자에 대한 명예훼손 등 혐의로 고발하기도 했다.

심상정(오른쪽 네 번째) 정의당 대표는 26일 국회에서 열린 정의당 선대위원회의에서 'N번방 방지법 처리를 위한 원포인트 임시국회 개최'를 촉구했다. (사진=정의당 제공)
심상정(오른쪽 네 번째) 정의당 대표는 26일 국회에서 열린 정의당 선대위원회의에서 'N번방 방지법 처리를 위한 원포인트 임시국회 개최'를 촉구했다. (사진=정의당 제공)

각 정당 앞다퉈 대책 내세워…민주당·정의당 20대 국회에서 처리해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27일 국회에서 텔레그램 n번방 사건에 대해 "민주당은 이번 일을 계기로 디지털 성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 당은) 오늘 선거대책위원회 산하에 디지털성범죄 근절 태스크포스(TF)를 설치해 범인의 형량을 최대한 높여서 다시는 이러한 범죄를 저지를 수 없도록 하고 공범을 샅샅이 찾아내 죗값을 물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인영 원내대표도 지난 23일 당 회의에서 "n번방 사건의 범죄자들에게 국민의 심판 철퇴를 내려야 한다"며 "범죄에 가담한 모든 사람의 신원공개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20대 국회 만료 전 'n번방 방지법'이 처리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민주당은 지난 23일 성적 촬영물을 이용해 협박하는 행위를 형법상 특수협박죄로 처벌, 불법 촬영물·복제물을 스마트폰 등 휴대용 단말기 또는 컴퓨터에 다운로드받는 행위 자체를 처벌, 불법 촬영물에 대해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를 처벌 등의 내용을 담은 'n번방 사건 재발방지 3법' 처리를 약속했다.

야당도 적극 대응에 나섰다. 황교안 통합당 대표는 지난 24일 페이스북에 "n번방은 단순한 일탈공간이 아니라, 반사회적인 집단이 모여있는 범죄소굴"이라며 "이 엽기적인 사건에 돈을 주고 참여한 회원들도 철저히 수사해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여성과 아동의 안전만큼은 제대로 지켜주자"며 "디지털 성범죄집단을 확실히 소탕하자"고 강조했다.

홍철호 통합당 의원은 '아동청소년 음란물' 등을 제작 또는 유포하는 피의자에 대해 국회 의결을 거쳐 얼굴, 이름, 나이 등 신상을 공개할 수 있도록 하는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을 발의할 계획이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같은당 박대출 의원도 '형법' 및 '성폭력범죄 처벌 특례법',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 개정안을 별도로 대표발의했다.

'n번방 방지 3법'으로 명명된 해당 법안들은 불법 성착취 동영상을 제공하는 텔레그램 대화방의 가입자에 대해 형사처벌 규정을 신설해 법적 책임을 묻는다.

또한 피해자가 아동·청소년일 경우 형법에 성범죄단체 조직죄를 신설해 운영자는 물론 가입자도 공범으로 범죄단체조직죄를 적용하게 했다. 이 경우 운영자는 무기 징역 또는 5년 이상 징역형, 가입자는 5년 이상 징역형까지 각각 처벌할 수 있게 된다.

이외에도 가입자가 협박 등에 의해 촬영된 불법 영상물임을 알고도 시청할 경우 7년 이하 징역에 처하도록 할 계획이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지난 26일 'N번방 방지법 처리를 위한 원포인트 임시국회 개최'를 촉구했다. 심 대표는 "정의당은 선거운동을 하루 중단하더라도 원포인트 임시국회를 열어 'N번방 방지법'을 총선 전에 처리할 것을 민주당과 통합당에 강력히 촉구한다"며 "잔인하고 흉악한 디지털성범죄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여성분들이 문제를 제기 했을 때, 즉각 정치인들이 해결방안을 낼 수 있었다면 더 많은 피해를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현행법으로 처리할 수 없는 문제가 생겼을 때 국민의당 문을 직접 두드려달라"고 요청했다. 

쏟아지는 공약 점검해보니…뒷북 정책에 국회 계류중 

주요 정당들은 공통적으로 '성폭력처벌에 관한 특례법'(이하 성폭력특별법)이 디지털 성폭력을 근절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파악해 해당 법안 개정을 공약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디지털성범죄 근절을 위한 각 정당의 공약이 실제 이뤄질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표하고 있다. 관련 공약들을 담은 일부 법안은 처리되지 못하고 국회에 계류 중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018년 발의한 성폭력특별법 개정안은 국민의당 공약처럼 촬영물이 유포되는 플랫폼에 형사 책임을 묻고 있다. 이 법안에는 불법 촬영물 유통사이트 운영자가 그 전송을 방지하고, 촬영물 당사자로부터 삭제 요청을 받을 시에는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는 내용이 이미 담겨져 있는 것이다.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지난해 10월 촬영물을 실제 유포하지 않더라도 유포 협박하거나 강요한 경우 성범죄로 처벌한다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그러나 이 법안은 2018년 11월 27일 법안소위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영상물을 이용한 협박 행위 처벌을 강조한 진선미 의원의 법안은 민주당·통합당 공약과 다르지 않다.

사건이 이슈화되자 급하게 꺼내 든 법안인 탓에 처벌 강화 외에 뾰족한 방지책은 담지 못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또 남은 임기 동안 충분한 논의를 거쳐 입법이 이뤄질지도 미지수다.

총선이 19일밖에 남지 않은 데다 임기 마지막인 5월 임시국회를 연다고 해도 낙선자들의 불참으로 본회의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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