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6.03.23 10:53
대만에서 태어나 엘리트로 성장한 뒤 최전선에 섰다가 바다를 건너 중국으로 귀순한 현재 중국 최고 경제 브레인 린이푸(林毅夫 임의부)의 대만 군인 시절(우)과 현재 북경대학 교수로서의 모습(좌).

임정의 상위는 중화인민공화국 도착 후 이름을 임의부(林毅夫 린이푸)로 개명한다. 여러 지역을 거쳐 그는 북경에 도착해 계속 학업을 이어가려 인민대학(人民大學)에 진학코자 하였으나 학교 측에서는 그의 배경이 불투명하다는 이유를 들어 입학을 거절했다. 결국 그는 북경대학에 입학 신청을 해 결국 뜻을 이뤘다.

븍경대학 경제학과 석사과정에 입학한 그는 때마침 1979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시어도어 W. 슐츠 시카고 대학교 명예교수가 이듬해 북경대학을 방문하자 학교 측에서는 임의부에게 슐츠의 통역 업무를 시켰다. 이 인연으로 그는 결국 슐츠의 도움을 받는다.

1982년 임의부는 북경대학 경제학과 정치경제학 석사를 받았고, 곧바로 슐츠의 주선으로 장학금을 받아 등소평(鄧小平)의 개혁개방 후 최초의 미국 유학생이 된다. 시카고 대학교 경제학과 박사학위에 도전한 것이다. 지도교수는 바로 시어도어 W. 슐츠였다. 임의부는 5년 만에 시카고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는다.

그 뒤 임의부는 객원교수 신분으로 예일 대학교에서 포스트 닥터과정을 밟는다. 대만에 있던 그의 아내는 그 때서야 남편의 소식을 듣는다. 예일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중국의 임의부가 대만을 탈출했던 자신의 남편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던 것이다.

결국 아내는 1983년부터 3년 동안 준비한 끝에 미국으로 건너와 1986년 7년 만에 남편과 해후한다. 임의부는 1987년 예일 대학의 객원과정을 마치고 북경대학교 경제학과 부교수 겸 국무원 산하 농촌경제연구중심 발전연구소의 부주임으로 발령받는다.

미국 유학 동안 30여 상자의 박스 안에 서방경제 학술 자료를 가득 챙긴 임의부는 중국의 서방경제학 연구에 기초를 다진 인물이라고 한다. 1993년 정교수에 오른 지 1년 만인 1994년 임의부는 易綱(역강 이강, 현 중국 인민은행 부행장 겸 중국 공산당 중앙재정경제 영도소조 판공실 부주임), 海聞(해한 하이셴),張維迎(장유영 장웨이잉),張帆(장범 장판),餘明德(여명덕 위밍더) 등 6명의 학자와 함께 중국경제연구중심(China Center for Economic Research: CCER이라고 약칭)을 만든다. 임의부가 주임을 맡았다.

이들 6인 학자들의 주장은 곧바로 당시 경제 부총리를 맡고 있던 朱鎔基(주용기 주룽지)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당시 임의부는 1997년 국영기업 개혁 부진 및 중국 재정수입의 비율이 너무 낮은 점과 부정부퍠를 척결해야 한다는 ‘關鍵在於戰略目標的轉移(관건은 전략목표를 바꾸는 데 있다)’를 발표했다.

그의 주장은 이후 주용기의 정책 흐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1997년 마르크스 정치경제학 위주로 강의해 온 당시의 분위기 아래서 임의부는 최초로 거시경제학과 미시경제학, 그리고 계량경제학, 발전경제학, 국제경제학 등 과정을 이 CCER에 처음 도입한다. 중국 경제학 교육의 혁신 센터이자, 개혁개방의 정책 연구 중심이며, 중국의 국제 학술 교류 센터로 연구소 위상을 높였던 것이다.

임의부는 중국이 비교우위 발전 전략을 실시해 저(低)자본으로 선진기술을 도입하고 조속히 자본을 축적한 후 산업 업그레이드에 매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0년 이래 지금까지 이뤄지고 앞으로도 진행 중에 있는 바로 3.15 및 2025의 현실이다. 국영기업개혁만이 민간기업으로 하여금 공정한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하는 방도라고 본 것이다. 아울러 지속적인 개혁을 펼쳐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2008년 2월 4일 Robert Bruce Zoellick 세계은행 총재는 당 은행의 수석 경제연구원이자 발전경제학을 주관하는 부행장으로 임의부를 지명한다. 임의부는 개발도상국 중에서 이런 직무에 임명된 최초의 부행장이라고 한다. 임의부는 셰계은행 부행장을 맡으면서 아시아 경제에 대한 서방국가들의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아시아 경제의 중요성을 재인식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늘 얘기했다. 10년 전 얘기다. 그런 노력으로 인해 중국 경제에 대한 그릇된 인식은 많이 고쳐졌다.

임의부는 2012년 4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다시 북경대학으로 돌아와 2016년 현재 북경대학교 국가 발전 연구원 명예원장과 중국 정치협상회의 상무위원, 그리고 경제 위원회 부주임을 맡고 있다. 이른바 최고 경제 사령탑의 브레인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앞으로 펼쳐질 중국의 3.15계획 및 2025의 배경에는 바로 숨겨진 객가 대만 출신의 하이구이(海龜) 엘리트가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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