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고종관 기자
  • 입력 2020.04.08 12:07

공여자의 심장을 길병원까지 골든타임 안에 무사히 수송 한 생명 구해

심장이식을 받은 허씨를 돌보고 있는 의료진.(사진제공=길병원)
심장이식을 받은 허씨를 돌보고 있는 의료진.(사진제공=길병원)

[뉴스웍스=고종관 기자] ‘2분’이 한 생명을 구했다. 의료진은 이를 ‘2분의 기적’이라고 표현했다. 사건의 시작은 4일에 발생했다.

가천대 길병원 심장이식센터 이순미 실장은 한가한 주말 저녁에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전라남도 광주에서 심장이식 기증자가 나타났다는 다급한 소식이었다. 이 실장은 곧 길병원에서 기계장치에 의지해 간신히 생명을 유지하는 허모(41, 남성)씨의 얼굴을 떠올렸다.

허씨는 8년전 확장성심근증으로 심장근육이 얇아지고 확장되면서 심장박동 기능을 상실했다. 그동안 약물치료를 받다가 지난해 5월엔 좌심실보조장치로 생명을 연장해야 했다. 심장이식 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공여자가 나타났다는 소식은 주치의인 심장내과 정욱진 교수에게 전달됐다. 그리고 병원은 119헬기를 띄우자는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날라왔다. 갑작스런 돌풍으로 헬기가 뜰 수 없다는 것이었다.

골든타임은 4시간. 심장이 적출된 뒤 환자에게 이식될 때까지의 마지노선이다. ‘허혈시간’ 4시간이 지나면 수술 결과는 극도로 나빠진다. 수술이 실패하면 허모씨의 생명도 위험해지고, 기증자의 고귀한 희생은 사라진다.

앰뷸런스로 달려도 전라남도 광주에서 인천까지 4시간 이내 도착은 불가능해 보였다.

이제 수송수단으로 남는 것은 KTX 뿐이었다. 지체할 겨를이 없었다. 의료진은 한국철도(코레일)에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광주송정역에서 가장 빠르게 탑승할 수 있는 기차가 있었다. 저녁 9시발 KTX548 열차였다. 이 기차를 놓치면 다음 KTX 배차는 1시간30분 뒤에야 있다.

순간 이순미 실장의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졌다. 기증자의 심장적출은 저녁 8시반에야 이뤄졌다. 그렇다면 병원 수속 등 절차를 밟아 신속하게 움직여도 9시전에 송정역 도착은 어렵다는 결론이었다.

이제는 기차 출발을 지연시키는 방법 밖에는 없었다. 이 실장은 코레일에 이런 사연을 전했고, 이때부터 코레일 측이 신속하게 움직였다. 전화를 받은 광주송정역 강정석 역무원은 역에 이 사실을 공지했고, 한영희 역무팀장은 의료진이 가장 빠르게 열차에 탈 수 있도록 조치에 들어갔다. 구급차가 바로 역까지 진입할 수 있도록 하는가 하면 역광장부터 에스컬레이터, 승강장까지 역무원을 곳곳에 배치해 이들의 이동을 신속하게 도왔다.

기증자의 심장이 송정역 KTX에 도착한 시간은 9시2분. 역무원들은 출발지연에 대한 안내방송으로 승객의 양해를 구하고 초조하게 새생명이 도착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같은 긴밀한 협조 덕분에 KTX548열차는 예정 시간보다 다소 늦은 9시2분 34초에 출발했다. 그리고 광명역에서 미리 대기해 있던 앰뷸런스를 타고 무사히 길병원에 도착했다. 수송시간이 예상보다 훨씬 빠른 2시간40분 만에 이뤄진 것이다.

수술은 흉부외과 박철현 교수의 집도로 이뤄졌다. 의료진은 허씨의 심장을 드러내고, 동시에 새로운 심장을 이식하는 고난도 이식수술을 시행했다.

박철현 교수는 “수술이 잘돼 환자는 지금 안정을 취하고 있다”며 “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 빠른 판단과 협조를 해준 코레일과 광주송정역 관계자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자신과는 일면식도 없는 환자를 위해 귀한 생명을 기증한 공여자, 그리고 많은 승객이 열린 마음으로 열차 지연을 이해해 준 것"에 대해서도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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