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윤현성 기자
  • 입력 2020.04.08 14:05
덕수궁 대한문. (사진 제공=문화재청)
덕수궁 대한문. (사진 제공=문화재청)

[뉴스웍스=윤현성 기자] 대한제국 황궁의 정문이었던 '덕수궁 대한문'이 본래 모습을 되찾는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덕수궁관리소는 8일 대한제국 황궁 정문인 대한문의 면모를 되찾고자 일제강점기에 소실된 덕수궁 대한문의 월대(月臺)를 재현하는 설계를 이달 시작한다고 밝혔다.

월대는 궁궐의 정전(正殿), 묘단(廟壇), 향교(鄕校) 등 주요 건물 앞에 설치하는 넓은 기단 형식의 대(臺)다. 월대는 대한문을 비롯해 경복궁 광화문, 창덕궁 돈화문 등 궁궐의 정문과 덕수궁 중화전, 경복궁 근정전 등 주요 정전에 설치돼 건물의 위엄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궁궐 정문 구성의 필수 요건이라고 할 수 있다.

덕수궁관리소는 대한문의 원위치를 찾아 옮기는 것이 어렵고, 인근에 있는 태평로와 시민들의 보행로 활용 등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할 때 월대를 원래 있던 장소에 원형대로 복원하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에 원위치와 형태, 크기에 대한 철저한 원형 고증을 바탕으로 현실적인 재현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1902~1903년경 촬영된 덕수궁 대안문(大安門, 왼쪽)과 1910년대로 추정되는 덕수궁 대한문 월대 사진 엽서(오른쪽). (사진 제공=문화재청)
1902~1903년경 촬영된 덕수궁 대안문(大安門, 왼쪽)과 1910년대로 추정되는 덕수궁 대한문 월대 사진엽서(오른쪽). (사진 제공=문화재청)

덕수궁 대한문의 원래 이름은 '대안문'(大安門)이다. '황성신문'과 '독립신문' 기록에 따르면 1896년경부터 건설된 것으로 추정된다. 1904년 덕수궁 대화재 때 대안문은 불타지 않았지만, 보수하는 과정에서 1906년 문 이름을 '대한문'(大漢門)으로 바꿨다.

대한문의 월대는 일제강점기 당시 일제에 의해 훼손·철거됐으며 현재는 월대 끝 부분에 있었던 석수(石獸, 짐승의 형상을 돌로 새겨 만든 것만 남아 있다. 

월대는 고종이 환구단이나 왕릉으로 행차할 때 사용했고 1910년 경술국치까지 격동했던 우리 근대사의 한가운데를 묵묵히 지키고 있었다. 그런 만큼 월대의 재현은 일제에 의해 훼손되고 지워진 우리 역사를 되찾고, 오늘날 우리들의 품에 되살리는 의미를 가질 것으로 보인다.

관계부처는 이달부터 7월까지 설계를 마치고 나면 관련 전문가의 자문을 거쳐 내년까지 대한문 월대를 재현할 예정이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