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3.23 15:11
고요와 침묵 속에서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곳이 가톨릭 성당이다. 그곳의 고위 성직자 '추기경(樞機卿)'의 직함에 담긴 의미도 우리사회 소란스러움의 생산자, 정치인들이 한 번쯤은 새겨야 좋겠다.

예전에 지면을 통해 소개했던 글이다. 가톨릭의 고위 성직인 추기경(樞機卿)의 직함을 생각해 보면서 쓴 내용이다. 가톨릭의 추기경은 교황을 선출하는 권한을 지닌 중요한 직위다. 교황을 선출하는 일 외에 교황청 내의 성성(聖省)과 관청의 장관직을 맡는다.

교황이 가톨릭의 상징이라면 추기경은 그 아래에서 각종 행정과 사무를 집행하는 사람이다. 그만큼 가톨릭의 실제적인 운용에 있어서 핵심을 이루는 자리다. 그 추기경은 영어로 카디널(cardinal)이다. 어원은 나중에 원로원의 지칭으로 발전한 라틴어 카르데(carde)다.

그러나 성직과 원로원의 지칭에 앞서 먼저 얻은 뜻은 사람이 드나드는 문(門)과 관련이 있다. 이 단어가 직접 가리키는 대상은 ‘경첩’이다. 출입이 이뤄지는 문짝 가운데서도 문지도리, 돌쩌귀 등과 함께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장치다. 가톨릭 내에서 추기경이란 자리가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을 함축적으로 표현한다.

그 ‘cardinal’을 한자로 옮긴 맥락도 같다. 추(樞)는 역시 문지도리를 뜻하는 글자다. 문의 축을 움직이는 장치나 그 아래에 파인 홈을 뜻한다. 따라서 ‘추기경’이라고 할 필요도 없다. 문지도리를 가리키는 樞(추)에 벼슬자리를 의미하는 卿(경)만을 붙여도 가톨릭의 고위 성직자인 ‘cardinal’의 의미는 충분히 살릴 수 있다.

하지만 기(機)라는 글자가 하나 덧붙었다. 機(기)는 활 보다 더 화살을 멀리 날릴 수 있는 쇠뇌(弩)의 발사 장치를 뜻한다. 문이 돌아가는 아귀의 축을 형성하는 樞(추)와 화살을 날려 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機(기)라는 글자가 합쳐져 만들어진 ‘추기’라는 말은 곧 사물의 핵심을 일컫는다.

추기경이라는 번역어에 앞서 樞機(추기)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하는 곳은 <역(易)>의 ‘계사(繫辭)’편이다. “언행은 군자의 추기(言行, 君子之樞機)”라고 나와 있다. 다음 구절은 “추기라는 핵심 기능이 발동하는 것에 영예와 치욕이 달려 있다”는 부연이다.

사람의 언행이 곧 추기란다. 이를테면 말과 행동이라는 것은 사람의 운명을 결정할 만큼 중요하고 핵심적인 영역이라는 뜻이다. 이를 잘못 이어갈 경우 명예는 고사하고 치욕을 얻는다는 가르침이다. 지식이 있는 사람으로서 남에게 내비치는 말과 행동을 신중하게, 그리고 떳떳하게 갖추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일 게다.

요즘 우리 정치권이 정말 난맥(亂脈)이다. 총선을 앞두고 벌이는 행태가 점입가경이다. 총선을 앞두고 제 욕심만 채우려는 사람이나 제 식구 공천에 집어넣기 위한 이들의 몸부림이 요란(擾亂)함을 넘어 소란(騷亂), 더 나아가 분란(紛亂)에 자중지란(自中之亂)의 지경에까지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남, 즉 이기(異己)에 대한 관용과 포용이 전혀 없어서 그렇다. 여당도 그렇고, 야당 또한 마찬가지다. 그런 몸짓(行)에 그악한 말(言)이 가세하니 상황은 아주 어지럽다.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목불인견(目不忍見)의 상황이다.

이런 정치인들에게 나라의 운영을 또 맡겨야 하는 일이 벌써부터 걱정이다. 가톨릭을 신봉하는 정치인, 그렇지 않더라도 조금이나마 마음을 다잡으려는 정치인 있으면 인근의 성당에 가 볼 일이다. 왜 이 사회에 화해와 용서, 관용과 포용이 중요한지를 ‘추기(樞機)’의 의미가 담겨 있는 성당에서 한 번이라도 깊이 성찰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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