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손진석 기자
  • 입력 2020.04.13 18:20

[뉴스웍스=손진석 기자]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이후 약 3개월이 넘어가면서 각국마다 방역을 이유로 외국인 입국을 막고 있다. 내국인 이동도 차단되면서 사실상 비행기를 운항할 곳이 없는 처지다.

이로인해 한국 항공산업을 비롯해 글로벌 항공업계는 사상 초유의 위기에 처한 상태다. 세계 최대 항공컨설팅 전문업체인 CAPA(아시아태평양항공센터)는 “코로나19 확산으로 하늘길이 막혀 특단의 조치가 없으면 5월까지 대부분의 항공사가 파산할 것”이라고 경고할 정도다.

지난달부터 국내 항공사들은 경영악화를 해결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직원들에 대해 유‧무급 휴직을 시행하고 있다.

제주항공은 희망자 유급휴직, 진에어는 1개월 순환 휴직과 최대 12개월 희망 무급휴직 병행 실시, 티웨이항공은 근무일 단축 및 무급휴직, 에어부산은 40일 유급휴직, 에어서울은 유급휴직, 이스타항공 은 350명 규모 정리해고를 실시한다. 각 업체별로 에어서울 95%, 에어부산 70%, 티웨이항공 65%, 제주항공‧진에어 50% 수준의 휴직률을 보이고 있다.

대형 항공사인 아시아나항공은 전 직원을 대상으로 지난달 10일, 이번 달에는 15일의 무급휴직을 실행 중이다. 대한항공도 마지막까지 버티다가 지난 10일 이달 16일부터 10월 15일까지 전 직원을 대상으로 순환 유급 휴직을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이에따라 국내 모든 항공사가 인력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더욱이 1300여명이 근무하던 대한항공 기내식 제조사에서 1000여명이 휴직‧퇴사했다. 항공산업을 묵묵히 지탱해주던 지상조업사와 협력사들도 생사의 기로에 놓여 있다.

국적 항공사들은 상반기에만 6조3000억원 규모의 매출 손실이 예상된다. 비행기는 주기장에 멈춰있는데 리스료‧인건비 등 고정비용 부담은 매월 9000억원의 고정비가 발생하고 있다. 각 항공사의 휴업, 급여 반납 등 자구책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지출 규모다. 

국내 항공사가 연내 갚아야 할 부채는 5조3000여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마른수건을 너무 짜서 이젠 찢어질 지경이다. 한국은 코로나19 신규 환자 발생이 최근들어 30명 안팎으로 줄었지만 세계 각국은 언제 확산세가 멈출지 가늠할수 없다. 더구나 언제쯤 주요 국가들이 코로나19사태 종식을 선언할 수 있을지 누구도 예상하기 힘든 실정이다.   

이번처럼 항공업계가 벼랑에 내몰린 적은 없었다. 지난해 일본제품 불매 운동으로 벌어진 어려움에도 우리 항공사는 의연하게 대처했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19 사태처럼 전 세계 하늘길이 90% 이상 막혀 갈 곳이 없는 수요 절벽기에 속수무책이다.

끝내 국내 항공산업이 붕괴된다면 16만개에 달하는 일자리와 GDP(국내총생산)에서 11조원 가까이 되는 금액이 사라지게 될 것으로 우려된다.

문제는 이런 최악의 시나리오 발생을 막기위한 정부의 대응이 너무 허술하고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부는 낭떠러지에 몰린 항공업계를 살리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고 있는 듯 보인다. 항공산업을 살리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시행하는 외국과는 달리 소극적이다. 구색 맞추기 지원책만 내놓고 있다.

미국은 미국항공운송협회의 보조금과 긴급융자‧대출‧세금 감면 지원 요청을 받아들여 이달 초 항공산업 위기 대응을 위한 500억달러(한화 약 60조원)의 자금 지원을 승인했다. 중국도 항공사 노선별로 좌석당 비행거리에 따라 0.05258위안(한화 약 9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광저우에서 미국까지 운항 가능한 361석 규모 항공기의 경우 약 49만위안(한화 약 8400만원)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수준이다.

독일은 국적 항공사인 루프트한자에 무한대 금융지원을 약속하는 등 유럽 국가들은 사실상 무제한 금융 지원을 약속한 상태다. 싱가포르는 대규모 자금 지원과 조업사 지원 및 각종 공항 사용료를 감면하고, 말레이시아는 항공사에 전기료 15% 감면 정책을 내놓는 등 각국은 항공산업 보호를 위해 발 빠른 조치에 나서고 있다.

이러한 각국의 항공산업 돕기는 자국산업 보호 차원을 넘어 시장 폭증기에 대비한 경쟁력 확보를 위한 지원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것이다.

반면 우리 정부는 외국의 항공산업 보호를 위한 조치와 달리 항공사의 자구책이 우선되어야 금융지원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대안 마련을 하겠다는 원론만 되풀이 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항공업계가 처해 있는 위기 상황에서 LCC와 대형 항공사 모두 지원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라며 “하지만 대형 항공사는 지원에 앞서 우선 시장에서 자금 조달과 기존 금융사 여신 한도를 최대한 이용하고 부족한 자금에 대해 정책금융기관이 지원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항공업계는 이러한 입장에 대해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며 성토 중이다. “항공산업이 붕괴한 뒤에 소생술을 할 것이냐”며 볼멘소리도 내고 있다. 구체적으로 무담보 저리 대출 확대와 채권 발행 시 정부 지급보증 등 대규모 정책자금 지원 확대가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항공산업은 해외여행, 비즈니스, 무역, 외교 등에 필수불가결하다. 국익 차원의 다양한 공익적 역할이 포함된 업무를 수행하는 산업이기도 하다. 더구나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무역을 통해 많은 수익을 벌어들이고 있다. 국가기간산업으로 보호해야할 이유가 너무 많다.
 
코로나19사태가 종식된뒤 항공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비하기위해 지금부터 준비해야한다. 항공산업은 한 번 체계를 구축하면 지속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다. 하지만 붕괴되면 재건하는데 오랜 기간과 자금이 필요하다.

만약 국내 항공사들이 줄줄이 파산한다면 하늘길의 주권을 뺏기게 된다. 이리되며 외국 항공사가 주인 노릇을 하게 될 것이다. 중국과 중동 및 미국 항공사들은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찾아온 수요 절벽기를 정부 지원으로 이겨낸 이후 찾아올 수요 폭증기에 가격 공세에 나설 확률이 높다. 기력이 모두 빠진 채 가까스로 살아남은 우리 항공사 자리를 넘보게 될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국내 항공사들의 경영난은 갑작스런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다. 경영 실수와 투자 실패 등이 원인은 아니다. 항공사 한곳의 문제가 아닌 전체 국내 항공사의 하늘길이 막혀 발생한 일시적인 유동성 문제다.

정부가 이리 나오니 금융업계도 팔장만 낀 채 눈치만 보는 처지다. 4월 아니면 5월이면 문을 닫아야하는 항공사가 나올 수 있는 상황에서 실질적 지원을 해야 할 금융업계는 항공사를 실패한 기업으로 취급하고 있는 듯 보인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발생한 항공업계의 총체적 난국은 국가 전체의 위기와 다름없다.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는 시간만 끌다가 항공산업이 붕괴된뒤에야 의미 없는 지원에 나설 것인가.

지금이라도 선제적이고 과감한 지원책을 내놓아야한다. 'K-방역'이 미래성장동력으로 새로 자리매김하는 것처럼 우리 항공산업도 코로나19사태를 전화위복 삼아 '글로벌 플레이어'로 도약할 수 있도록 튼튼한 발판을 서둘러 놓아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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