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벼리기자
  • 입력 2016.03.23 18:30
지난 21일 한국영화제작자협회, 영화감독조합 등 9개 영화단체로 구성된 '부산국제영화제 지키기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가 “부산시가 영화제의 자율성을 계속 부정한다면 부산국제영화제를 보이콧하겠다”고 선언했다.

부산국제영화제를 둘러싼 부산시와 영화인들 사이의 의견차가 좀처럼 좁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비록 최근 다시 불거진 측면이 있지만, 양측의 갈등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 부산국제영화제를 둘러싼 영화계와 부산시의 해묵은 갈등
지금으로부터 1년 반 전, 2014년에 열린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어긋남의 시작이었다.

당시 영화제의 프로그램에 ‘세월호 사건’을 다룬 영화 <다이빙벨> 포함되자, 서병수 부산시장 겸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은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한다”는 이유로 <다이빙벨>을 상영작에서 제외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이용관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영화제 상영작 선정은 프로그래머들의 고유한 권한”이라고 주장하며 상영일정을 바꾸지 않고 영화제를 진행했다.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다이빙벨> 논란이 불거진 이후 부산시와 영화제 측의 갈등이 2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영화제가 끝나자 부산시와 감사원은 대대적으로 부산국제영화제 회계감사에 들어갔고, 그 뒤로 이 전 집행위원장에게 사퇴를 지속적으로 압박해왔다.

다행이 작년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앞두고 배우 강수연 씨가 공동집행위원장에 위촉되면서 양측의 갈등은 잠시 화해 분위기에 들어섰고, 영화진흥위원회가 부산국제영화제 지원금을 반 토막 낸 상황에서도 영화제는 성황리에 끝마쳤다.

하지만 일시적으로 봉합된 갈등은 영화제가 끝나자 다시 폭발했다. 작년 12월 11일 부산시는 “협찬금 중개수수료 관련 증빙서류 미제출 및 협찬활동 하지 않은 업체에 수수료 지급” 등을 이유로 이 전 집행위원장 등 사무국장 3명을 고발했다.

이후 2개월여의 진통 끝에 지난달 26일에 이 전 집행위원장이 임기 만료로 결국 해촉됐다. 이어 지난 14일 부산시가 영화제 측이 정관 개정을 위해 위촉한 자문위원 68명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자, 지난 21일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가 보이콧을 선언하기에 이른 것이다.

지난 2015년 열린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전야제에서 서병수 부산 시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

◆ 4년의 개인적 직위가 21년의 수많은 헌신보다 무거울까?
“시정 첫 해라 시장님이 영화제 운영에 대해 잘 몰라서 벌어진 실수라고 본다.”

<다이빙벨> 논란 관련 질문에 봉준호 감독은 위와 같이 답했다. 기자는 봉 감독의 저 짧은 한 마디에 부산국제영화제를 둘러싼 문제의 핵심이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1년과 19년.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서 시장은 조직위원장을 맡은 지 채 1년이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반면, 이 전 집행위원장뿐만 아니라 수많은 부산국제영화제 관련 영화인들은 19년이라는 시간 동안 피땀 흘려 부산국제영화제를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서 시장은 18년 차이보다 조직위원장이라는 자리를 더 의미 있게 여기는 것 같다. 이런 태도는 비유컨대 남이 정성껏 차려놓은 밥상을 앞에 두고 “입맛과 다르다”며 몇몇 반찬을 버리려는 행태와 비슷하다.

여기서 문제는 수많은 사람들이 노력해 성취한 결과가 단지 개인의 입맛 하나에 좌우되며, 정작 본인은 그 책임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데 있다.

지금처럼 부산국제영화제를 둘러싼 잡음이 계속된다면, 20년 넘게 쌓아온 영화제의 명성이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영화 외적인 문제에 독립성·자율성이 휘둘리는 영화제를 흔쾌히 찾으려는 영화인은 없을 테니 말이다.

한국독립영화협회 고영재 대표의 말을 빌리면, 영화제 관련 네트워크는 생각보다 협소하다. 때문에 약간의 문제라도 생기면 순식간에 몰락할 수 있는 것이 영화제다. 동경영화제가 그랬듯이 말이다.

만약 이런 식으로 갈등이 지속되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중단되는 사태가 생긴다고 할지라도, 그에 대한 감당은 상당 부분 영화인들의 몫이 될 것이다. 서 시장에게는 과거의 오명 정도로 남을 뿐이지만, 오랜 시간 부산국제영화제를 위해 헌신해온 이들에게는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고통으로 남아 있을 테니 말이다.

서 시장 취임 3년차인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21회를 앞두고 있다. 2년도 채 안 남은 감투보다 21년의 노고가 결코 가벼울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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