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동수기자
  • 입력 2016.03.23 18:21

수평적 조직관리 위한 인사혁신안...KT는 5년시행 후 다시 제자리로

재계에 직급체계 변화에 초점을 맞춘 인사혁신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조직의 직급체계를 조정, 수평적 기업문화를 정착시켜, 젊은 사원의 아이디어와 시니어 그룹의 경륜 사이의 벽을 허물어보겠다는 게 취지다.  이처럼 재계 전반에 수평적 기업 문화가 확산되는 것은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감의 방증인 것으로 업계에서는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수십년간 이어져 온 상명하복 문화를 직급 변경만으로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삼성전자, 직급체계 5단계→4단계

23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차세대 인사제도 도입 태스크포스(TF)’에서 마련한 직급체계를 사용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의 5단계 직급체계를 '사원-선임-책임-수석'의 4단계로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차장과 부장은 ‘수석’으로 합치고, 과장은 ‘책임’, 대리는 ‘선임’으로 호칭 변경이 주요 골자다.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구글의 경우 엔지니어-책임임원(주로 상무)-대표(CEO)로 이어지는 의사결정 과정이 3단계로 구성돼있다”며 “그러나 삼성전자의 경우 부장까지 단계만 5계단에 달해 임원이나 대표의 결정이 있어야 할 경우 의사결정 과정이 구글의 세배에 달하는 게 현실이다”고 말했다. 급변하는 산업 환경 속에서 의사결정 구조를 최소화하면서 업무의 효율성을 극대화 하려는 전략인 셈이다.

그동안 ‘관리의 삼성’이라는 수식어가 있을 정도로 치밀한 계산과 검증이 삼성의 자랑이었다면 이제는 시대 환경에 맞게 변화해야 할 때라는 게 TF의 주문이었다고 전해진다.
이와 함께 TF에서는 인사평가제도를 기존의 연공서열에서 벗어나 철저하게 능력과 효율성 위주로 변경하는 방안을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이러한 직급 체계 변경은 삼성그룹 계열사 중 삼성전자가 처음은 아니다. 삼성화재는 지난 2013년부터 '사원-선임-책임-수석'의 4단계 직급체계를 적용하고 있다. 삼성생명도 오는 3월말부터 같은 직급체계를 적용할 예정이다.
삼성화재의 한 관계자는 "직급 단순화를 통해 인사적체가 상당부분 해소됐다"며 "완전하진 않지만 수평적 의사소통이라든지 능력이 있는 사람은 연공서열에서 밀려도 중요한 역할을 맡기는 풍토가 안착된 편“이라고 말했다.

LG전자, 직급보다는 직무 우선
LG전자도 내년부터 기존의 직급 호칭은 유지하되 직급을 단일화시키고, 인사평가는 부분적으로나마 절대평가제를 실시하기로 했다.
LG전자는 지난 주 이같은 내용의 공지를 전 직원에게 통보완료했다.
현재까지 LG전자는 영업, 마케팅 쪽 인력들은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 등 5개 직급체제와 호칭을, 연구소 인력들은 연구원-주임-선임-책임-수석 등 5개 직급체제와 호칭을 사용해왔다. 기존의 직급호칭이 내년부터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대로 유지되지만 직급이 주는 무게감을 줄인다는 게 LG전자의 혁신안이다.

기존의 직급은 진급시험대신 연차만 채우면 자동으로 승진되는 구조로 바꿨다. 군대와 비교하면 소위가 1년이 지나면 중위로 중위에서 2년이 지나면 자동으로 대위가 되는식이다. 이에 따라 대리진급 시험과 같은 인사 관련 시험도 사라진다.

이는 직급보다는 직무에 비중을 더 두고 수평적 기업문화를 정착시키겠다는 복안인 것으로 풀이된다.
LG전자는 대신 직급과 상관없이 프로젝트에 따라 ‘팀장-파트장-프로젝트리더’는 운용한다. 따라서 새로운 프로젝트가 만들어지면 완료시까지 한시적으로 프로젝트리더가 임명되고 파트장과 팀장으로 인력구성이 이뤄진다. 이 때 프로젝트리더는 직급에 상관없이 프로젝트를 가장 잘 완수할 수있는 전문가로 임명한다는 계획이다. 직무에 따라 대리가 프로젝트리더가 될 수 도 있다는 얘기다.
LG전자의 한 관계자는"내년부터 시행예정인 이번 인사제도 개편은 팀장, 파트장, 프로젝트 리더 등 역할 중심 체계를 강화시켜서 업무 전문성을 높인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재계 인사혁신 확산 그러나.. KT는 다시 예전으로
이외에도 신세계, 롯데그룹 등 유통업계와 SK텔레콤은 호칭·서열파괴 등을 적용했다. 

SK하이닉스는 지난 2011년 직급을 축소하고 연 단위로 누적된 인사마일리지(성과점수)가 기준에 도달하면 자동 승진하는 인사제도를 운영 중이다. SK텔레콤은 2006년부터 직원들의 호칭을 매니저로 통일했고, 포스코 한화 등도 이와 비슷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앞서 인사혁신제도를 사용한 기업 중 실패를 인정하고 예전으로 되돌아 간 기업도 있다.
KT는 2009년부터 5년동안 시행해 온 직급대신 ‘매니저’라는 호칭을 붙인 일명 ‘매니저 제도’를 포기하고 지난 2014년 기존 직급체계로 돌아갔다. 한 관계자는 “호칭이 달라진다고 연공서열이 무시되진 않는다”며 “급격한 변화가 오히려 내부 혼란과 구조조정이라는 후폭풍으로 돌아왔다”고 꼬집었다.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거시정책연구실장은 "무한경쟁 시대에서 기업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조직 규모보다는 회사의 사업 특성과 조직구조를 고려해야 한다"며 "전사 일괄적인 직급체계보다는 직군별 업무 특성에 따라 차별화되고 다양한 직급 설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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