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6.03.24 10:53
최종부 경제진화연구회 부회장

강인한 카리스마로 ‘현대’라는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을 만들어낸 정주영 회장. 그가 서거한지도 벌써 15주기가 되었다. 대단했던 그의 업적은 대한민국 산업화의 기둥이 되었고 그가 일궈놓은 ‘현대’라는 기업은 아직도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큰 힘이 되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갈수록 ‘정주영’이라는 이름이 흐려지고만 있는 듯하다. 아니 정주영을 포함한 1세대 기업가의 발자취가 잊혀져가고 있다. 

필자의 경험에서 하나의 예를 들어보겠다. 작년의 이야기이다. 대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창업대회 중에 가장 큰 권위를 가진 대회는 바로 ‘정주영 창업경진대회’이다. 엄청난 상금과 여러 기업의 실질적 후원을 받을 수 있는 대회이기 때문에 대학생들의 참여 열기는 뜨겁다. 이 대회에 지원했던 학생 중 몇 명이 필자에게 도움을 요청했었고 대회준비에 필요한 몇 가지 이야기들을 하다가 정주영 회장에 대한 대화를 나눠볼 기회가 있었다. 

결과는 꽤나 충격적이었는데 학생 중 몇 명이 정주영을 잘 모르거나 정약용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된다 싶어서 어떻게 모를 수가 있는지 반문을 하니 “배운 적이 없다.”, “관심이 없었다.” 혹은 “돌아가신 현대회장까지 알아야 하느냐” 등등의 대답이 돌아왔다. 정주영 회장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이 체감됐다. 

여론조사 전문업체인 한국갤럽에서 조사한 한국인이 존경하는 인물(2014) 통계를 보면 이 문제는 더 명백해진다. 총 순위에서 정주영 회장은 6위에 올라있다. 그러나 연령별 조사를 보면 13세 ~ 18세에서는 0%이고 19세 ~ 29세에서도 상대적으로 적은 3%만이 정주영 회장을 존경한다고 응답한 것을 알 수 있다. 같은 통계에서 성과 연령별로 한국인이 존경하는 인물을 설문한 자료를 봐도 결과는 비슷하다. 심지어 통계 전체에서 정주영과 이건희 회장을 빼놓고는 기업인 자체가 명단에 오르지도 못했다. 

당연히 우리가 정주영 회장을 맹목적으로 존경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그가 무조건적으로 존경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기업가에 대한 무지가 위와 같은 결과를 초래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필자는 이 문제의 원인을 정주영과 기업가를 가르치지 않는 교과서에서부터 있다고 판단했다.

8종의 한국사 교과서에 기술되어 있는 것을 조사해본 결과 8종 교과서 모두에 노동운동가였던 전태일이 기술되어 있는 반면 한국의 대표적 기업가인 이병철 회장과 구인회 회장은 전혀 등장하지 않았다. 정주영 회장은 5종의 교과서에 쓰여는 있지만 모두 경제와 기업에 관련해서가 아닌 남북관계를 다룬 부분에서 소떼를 북한에 보내준 사람으로만 나온다.  

기업가에 대한 공과를 구분지어서 설명하고 그에 대한 이해를 돕지는 못할망정 기술조차 해놓지 않는 것은 학생들에게 기업에 대한 무지와 대한민국 발전사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지게 한다. 이와 같은 교과서 기술이라면 정주영 회장이 10대와 20대에서 존경받는 사람으로 되어있지 않은 게 너무도 당연한 결과처럼 보인다. 

조선소를 만들었던 우직함,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할 때의 감동, 아산만을 개발했던 기발함과 같은 정주영 회장의 기업가 정신이 담긴 여러 이야기들은 그저 학교선생님들이 가끔 학생들에게 전해주는 야사 정도로 치부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업인이 한국 경제 발전에 기여한 부분이 교과서에 균형 있게 쓰여야 한다. 전태일 분신사건이 경제 발전 과정에서 있었던 중요한 사건이라면 한국의 기업가들이 철강, 조선, 자동차 등의 새로운 산업을 일으킨 것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건이지 않겠는가. 학생들이 근로자의 어려운 처지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기업가 정신을 배우는 것은 더 중요할 것이다. 기업의 역사를 모르고 발전의 역사를 모른 채 민주화만을 배우는 교육이라면 가르침의 균형이 너무도 깨져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경영인들의 모임 사이트에서 역대 우리나라 기업인들의 최고 어록이 무엇인지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정주영 회장의 “이봐, 해봤어?”가 선정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젊은이들이 진의를 파악하지 못한 채 “이봐, 해봤어?” 라는 말을 ‘노오오오력’을 하라는 ‘꼰대’들의 전유물로 치부해버리는 사회라면 그 어떤 발전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기업가정신을 영어로 ‘entrepreneurship’라 한다. 이 단어의 근본적인 어원은 15세기 중세 프랑스어의 ‘enterprise’이다. 사업과 기업을 뜻하기도 하는 이 단어의 다른 뜻에는 ‘진취적 기상’이라는 표현도 포함된다. 학생들 모두가 기업가 정신을 함양해서 기업가가 되라는 말이 아니다. 각자의 삶을 영위함에 있어서 개개인이 ‘진취적 기상’을 품는다면 요즘과 같은 흙수저계급론이 창궐하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개인의 노력과 발전에 대한 무기력함이 팽배해져 있는 지금이 정주영 회장을 포함한 1세대 기업가를 다시. 제대로 배워야 하는 골든타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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