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0.04.25 08:15

[뉴스웍스=남빛하늘 기자] “이 법으로 아이를 잃는 부모보다 부모를 잃는 아이들이 많아질 것 같습니다.”

한 달전 게재된 한 유튜브 채널 영상에서 5500여 명의 ‘좋아요‘를 받은 댓글이다.

댓글에서 ‘이 법’은 지난 3월 25일부터 시행된 ‘민식이법’을 말한다. 민식이법은 2019년 9월 충남 아산의 한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김민식 군 사고 이후 발의됐다.

최근 지인들과의 SNS 단체 대화방에서도 민식이법에 대한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 주제다. 자가용을 이용해 출‧퇴근하는 지인들의 대부분은 “민식이법의 애매모호한 기준으로 인해 억울한 피해자가 나올 것 같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우선 민식이법은 ‘도로교통법 개정안’과 ‘특정범죄 가중 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 개정안’으로 나뉜다. 도로교통법 개정안은 스쿨존 내에 신호등과 과속단속카메라 설치 의무화를, 특가법 개정안은 스쿨존에서 어린이 사망·상해사고를 낸 운전자를 가중 처벌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 중 후자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특가법 개정안에 따르면 운전자가 스쿨존에서 규정 속도(시속 30㎞)를 초과하거나 ‘안전운전의무’를 위반해 만 13세 미만 어린이를 사망케 한 경우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을 받게 된다. 상해를 입혔다면 1년 이상~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3000만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여기서 운전자들이 문제로 꼽는 것은 안전운전의무다. 민식이법은 스쿨존 내 규정 속도와 안전운전의무를 위반한 ‘과실 운전자’만을 처벌 대상으로 두는데 이는 운전자가 규정 속도를 지켰는지, 전방을 주시하며 안전 운전했는지 등을 따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스쿨존에서 안전운전의무를 지켰는데도 교통사고가 발생하면 모든 책임은 운전자가 지게 된다. 원칙상 운전자 과실이 0%라면 민식이법에 적용받지 않겠지만, 2018년 보험개발원 자료에 따르면 운전자 과실이 20% 미만으로 인정받는 교통사고는 전체의 0.5%에 불과하다.

게다가 스쿨존에서 어린이 사망사고를 낸 운전자가 받을 형량은 ‘윤창호법’의 음주운전 사망 가해자의 형량과 같다. 음주운전 사망사고의 경우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행위로 간주되는데, 중대고의성 범죄와 순수과실 범죄가 같은 선상에서 처벌을 받는 것은 이치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게 운전자들의 입장이다. 또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교통사고로 인한 과실치사상의 경우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데, 이와 비교해도 민식이법의 처벌 기준은 상당히 강력하다.

지난달 2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민식이법 개정을 청원합니다’라는 글은 35만4000여 명의 동의를 받았다. 운전자들 사이에서는 ‘스쿨존에 진입하면 자동차에서 내려 뒤에서 밀고 가자’는 ‘웃픈’ 이야기도 오간다. 이렇듯 민식이법이 형평성과 부작용을 고려하지 않은 채 감정에 치우쳐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만들어졌다는 의견이 다분하다.

물론 민식이법 중에서도 스쿨존 내 과속단속카메라‧횡단보도 신호기 설치, 불법주차 금지 의무화 등의 내용은 마땅히 이뤄져야 할 조치다. 또 운전자가 스쿨존에서 규정 속도를 지키고 전방을 주시하며 안전 운전해야 하는 것도 당연한 의무다. 다만 스쿨존에서 모든 안전운전의무를 지키며 주행했는데도 불구하고 갑자기 튀어나온 어린이를 발견하지 못해 사망케 한 경우에도 운전자를 ‘죄인’으로 간주하는 것이 적합한 조치인지 의구심이 든다.

민식이법이 시행된 지 한 달. 또 다른 피해자 발생을 막으려면 운전자, 보행자, 보호자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운전자는 스쿨존에서 과속단속카메라가 없어도 항상 서행하는 등 안전운전‧방어운전하는 습관을, 어린이는 무단횡단 하지 않는 습관을 익혀야 한다. 보호자도 자녀에게 교통안전의 중요성을 정확하게 숙지시켜야 한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회의 결단이다. 민식이법으로 부모를 잃는 어린이가, 평생 죄인이라 낙인찍힐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기 전에 조속한 법 개정 조치가 필요한 때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 생긴다면 민식이법이 만들어지게 된 취지는 잊혀질 수 밖에 없다.

서울 강북구에 있는 한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의 모습. (사진=남빛하늘 기자)
서울 강북구에 있는 한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의 모습. (사진=남빛하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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