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현건 기자
  • 입력 2020.04.20 18:35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 야당몫 2명 놓고 양당 눈치싸움…소속 위성정당 '교섭단체화' 논의

국회의사당. (사진=전현건 기자)
국회의사당. (사진=전현건 기자)

[뉴스웍스=전현건 기자] 제 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이라는 거대 양당으로 표가 몰리면서 군소정당들의 몰락이 현실화 됐다. 준연동형 비례제도 도입으로 그 어느 때보다 군소정당들의 국회 진출이 기대됐지만 거대 양당이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이란 꼼수를 부리는 바람에 군소 정당의 꿈은 수포로 돌아갔다.

특히 민생당은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치명타를 입었다. 앞서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대안신당, 정의당은 지난해 더불어민주당과함께 '4+1 협의체'를 만들어 준 연동형 비례제를 통과시켰다.

20대 국회에서 4+1 협의체 참여 정당들 가운데 바른미래당 일부와 민주평화당·대안신당이 합쳐서 만든 민생당은 원내교섭단체까지 올랐지만 이번 총선에서 지역구와 비례의석에서도 단 한 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하지 못해 원외정당으로 전락했다. 극적인 반전이 없는한 사실상 소멸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전망이 나올 정도다.

군소정당, 궤멸 수준…합쳐도 10석 못넘어

민생당은 이번 총선 불출마한 주승용 의원을 제외하고 호남 지역에 출마한 현역 11명이 모두 낙선했다. 특히 천정배(광주 서구을), 박지원(전남 목포), 정동영(전북 전주병), 유성엽(전북 정읍·고창) 등 중량감있는 다선급 의원들이 전멸했다. 

김정화 민생당 공동대표는 "당의 혁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총선을 치르게 된 것에 깊은 책임을 통감한다"며 "제3당에 대한냉엄한 심판이라고 생각하고 겸허히 수용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5월 내로 전당대회를 개최하기 위한 준비를 해나가겠다"며 "새로운 주체가 당의 주인이 되도록 만들겠다. '미래를 위한 혁신TF'를 구성해 변화와 쇄신을 위한 마스터플랜을 수립할 것"이라고 당 재건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2월 3당 합당 후 계파 간 반목을 거듭하며 화학적 결합을 끝내 이루지 못한 민생당은 사실상 해산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4+1 협의체의 일원으로 준연동형 비례제를 통과시켰던 정의당 역시 사정은 좋지 않다. 

이번 총선에서의 비례대표 득표율은 지난 20대 총선(7.23%)보다 높은 9.67%에 달했지만 얻은 의석은 총 6석(지역구 1석·비례대표 5석)으로 지난 20대 총선(지역구 2석·비례대표 4석)과 같았다. 거대 양당의 비례 정당이 등장하며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본래 취지가 사실상 의미없게 된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결과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10%에 육박하는 지지율에도 여전히 300석 중 2%에 불과한 의석을 갖게 됐다"며 "몹시 아쉬운 결과이지만 원칙을 선택했을 때 어느 정도 각오한 만큼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정의당은 민주당 중심의 국회에서 더 선명성을 강조하겠다고 밝혔으나 존재감을 발휘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이 '국회 선진화법'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180석을 확보하면서 정의당 도움 없이도 안건을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수 야권 일각에선 "결과적으로 4+1 협의체에 가담하지 않은 미래통합당만 가까스로 살아남고 4+1 협의체에 참여한 다른 소수 야당들은 전부 고사하거나 존재감이 확 줄었다"며 "민주당에 이용만 당하다가 버림을 받은 셈"이란 지적이 나온다.

지역구 후보자를 내지 않은 국민의당은 6.8%의 지지를 얻었다. 4년 전 같은 당명으로 26.74%의 정당 지지율을 얻었지만 이번 총선에서는 비례 3석만을 유지한 채 존재감을 드러낼 수 없을 것으로 분석된다.

안 대표는 "망국적인 이념과 진영의 정치를 극복해 실용적 중도정치를 정착시키고 우리 사회 문제들을 해결하는 합리적인 개혁을 추진하고 싶었지만 저희가 많이 부족했다"며 "국민의 선택과 결정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향후 국민의당은 보수 재편 등에서 제3교섭단체를 꾸릴 때 합류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외에 원내로 진출하고자 한 군소정당들은 '비례대표 봉쇄조항 3%'를 넘지 못해 모두 전멸했다. 

실제 3%에 가장 가깝게 얻은 원외정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운동에 모습을 비추지 않았던 자유통일기독당(이하 득표율1.8%)이다. 그 뒤를 민중당(1%), 우리공화당·국가혁명배당금당·여성의당 (0.7%) 등이 뒤따랐다. 가장 강하게 연동형 비례제 도입 운동을 벌였던 미래당·녹색당은 고작 득표율 0.2%에 그쳤다. 

민중당 이은혜 대변인 뉴스웍스와의 통화에서 "민중당은 당선자를 내지 못했다"며 "뼈아픈 반성과 각고의 노력을 더하겠다"고 전했다. 이어 "3기 당직선거를 조기에 실시해 새로운 인물과 대표단이 당 혁신 전면에 나설 수 있도록 하겠다"며 "한국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위해 '부와 빈곤의 대물림'을 끝장내야 한다. 삶의 현장, 노동의 현장에서부터 일궈가겠다"고 다짐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떴다방 식으로 급조된 위성정당들이 비례의석 대부분을 잠식했다"며 "다당제 취지의 개정 선거법이 적용된 첫 선거에서 그 취지는 완전히 사라지고 역설적으로 21대 국회는 거대 양당만 남은 꼴"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선거로 사실상 군소정당들은 원내에서 정치적 역할을 하기가 힘들어졌다"며 "의석을 어느 정도 확보해야 하는데 과거보다 못한 선거제도 아래 설 땅이 없어졌다. 중도층을 표방한 정당들은 아예 설 땅을 잃은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거대 양당, '위장 야당' 추진…꼼수정당 비판 또 직면 

21대 국회가 거대 양당체제로 회귀한 가운데 양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의 임명을 앞두고 서로 위성정당을 교섭단체로 활용할 수 있다는 구상을 공연히 밝히고 있는 상황이다. 21대 국회에 각자 '위장 야당'을 두겠다는 속내로 보인다.

정부와 민주당은 7월 15일을 공수처 출범 예정일로 정하고 공수처 출범 준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공수처장은 국회 추천을 받아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돼 있는 만큼 제1당을 차지한 민주당은 차기 국회 개원과 동시에 공수처장 후보 추천을 밀어붙일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의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이 17석, 통합당의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이 19석을 차지한 가운데 모(母)정당과 합당을 할지, 자체적으로 교섭단체를 구성할지 여부를 두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는것으로 알려졌다. 

합당을 놓고 이들을 고민하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는 공수처장 인선과 관련한 규정 때문이다.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회는 모두 7명으로 구성되는데 법무부 장관, 법원행정처장, 대한변호사협회장이 1명씩을 추천하고 여당과 야당이 2명씩을 추천하도록 돼 있다. 사실상 여당 성향 위원 5명과 야당 성향 2명으로 나뉘는 것이다. 이들 7명 중 6명이 동의하는 후보자에 한해 대통령에게 추천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야당 추천 몫 위원 2명이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민주당은 과거 공수처법을 통과시킬 때 야당이 절대적 비토권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바로 '야당몫 2명'에 담긴 변수 때문이다. 공수처법에는 '대통령이 소속되거나 소속되었던 정당의 교섭단체가 추천한 2명', 그리고 이를 제외한 다른 '교섭단체가 추천한 2명'이라고 표현돼 있다. 제1야당(한국당) 외에 다른 교섭단체가 있을 경우엔 한국당은 1명만 추천하고, 다른 야당이 1명을 추천하게 된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비례대표 위성정당인 시민당이나 범여권 야당이 제2야당으로 올라서 야당 몫 2명 중 1명에 대한 추천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될 경우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의 의사와 관계없이 공수처장을 임명할 수 있다. 반대로 통합당 비례대표 정당인 미래한국당이 제2야당이 되면 야당 몫 2명에 대한 추천권을 모두 갖게 돼 공수처 출범에 제동을 걸 수 있다.

이에 따라 여야는 각 위성정당을 교섭단체로 만드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민주당과 통합당이 비례대표 위성정당의 제2야당 지위 확보를 위한 '의원 꿔주기'나 살아남은 군소 정당과의 공동 교섭단체 구성등 합종연횡에 나서는 등 치열한 수 싸움을 벌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원유철 미래한국당 대표는 "교섭단체 구성을 포함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정무적으로 판단할 것"이라며 "(21대 국회 개원 전) 조급하게 결정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꼼수정치'라는 비판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예측된다. 이번 선거기간 동안 '형제정당'을 강조해왔고 비례용 위성정당을 만들 때보다도 명분이 적다. 특히 민주당이 지난해 말 야당에게 '절대적인 공수처장 비토권'이 있다면서 공수처법 처리를 강행했던 만큼 교섭단체를 만드는 이른바 '정당방위'에 부담이 될 수 있다.

민주당과 시민당 양 당 지도부 사이에서도 이견이 감지되고 있다. 우희종 시민당 대표는 20일 MBC 라디오 '시선집중'에 출연해 "당의 존재 이유인 적폐청산, 검찰개혁을 위해서라면 '총선 후 해체'로 돼 있는 당규 변경은 충분히 할 수 있다"며 "공수처법에 대한 마무리를 생각해서 당의 존속을 결정한다면, (공수처장 추천위원 임명 등) 구체적인 걸 고려하면서 풀어가야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설훈 민주당 최고위원은 같은 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복수의 교섭단체를 구성하려 하는 등 국민의 뜻을 벗어난 경우에는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예정대로 시민당을 해체하고 민주당과 합당 수순을 밟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장제원 미래통합당 의원은 본인의 페이스북을 통해 "미래한국당은 한 술 더 떠 합당에 정무적 판단을 운운하고 있다"며 "그 당이 자력갱생한 정당인가"라고 비판했다. 

정의당도 논평을 내고 "꼼수가 꼼수를 정당화해 또다른 꼼수로 이어지고 있다"며 "거대양당 대결정치의 폐해가 21대 국회에 상흔을 남기고 민주주의를 손상시킬 것이 두려울 따름"이라고 비난했다. 

이런 상황에서 통합당이 지난 2월 '공수처는 초헌법적인 국가기관'이라며 헌법재판소에 낸 공수처법에 대한 헌법소원이 변수가 될 수 있다. 헌재는 이 사건을 최근 정식 심판에 회부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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