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지훈 기자
  • 입력 2020.05.03 09:00

하루 빨리 저축과 친해져야…가성비 높은 알바 선택하자

기자가 대학생 시절인 2010년 여름 남양주시 발굴현장에서 가묘(假墓)를 발굴하고 있다. (사진=박지훈 기자)

[뉴스웍스=박지훈 기자] 청년들은 대부분 생애 첫 직장을 가진 이후 돈을 열심히 모아보겠다고 다짐한다. 부모님 집에 살지 않는다면 줄줄 새는 월세로 인해 저축하기가 쉽지 않다. 전세집을 구할 돈이 있다면 주거비는 월 50만원 수준에서 10만원 수준으로 대폭 줄어든다.

이제 막 스무살을 맞이한 청년에게 전세를 통한 주거 독립은 때이른 과제일 수 있지만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서울 주변부의 원룸 전세값이 지금 최소 6000~7000만원이지만 이들이 독립할 때쯤 1억원을 넘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적게 일하고 많이 버는 '알바'를 선택하자

아르바이트 포털 알바몬에 따르면 2019년 시급이 가장 높은 알바 1위는 피팅모델(1만8818원)로 최저임금(8350원)의 2배를 받는다. 가장 적은 시급을 주는 곳은 고시원(8424원), 편의점(8435원)이었으며 겨우 최저임금 수준이었다.

알바는 모름지기 적게 일하고 많이 버는 게 최고다. 미래 희망 직종과 관련된 알바를 해야 할 경우가 아니라면.

기자는 2000년대 중후반 외국환중개회사에서 기업어음(CP) 관련 알바를 했다. CP를 배송하는 일로 신속·정확성이 필요하나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근무시 이용할 수 있는 교통카드를 받아 택시를 타고 다니며 편하게 일했다.

최저임금이 시간당 3000~4000원대이던 시절, 8000원 이상을 받았으니 벌이가 꽤 괜찮았다. 당시 최저임금을 준수하지 않는 사업주가 많았던 걸 생각하면 우량 알바였다.

방학 때는 대학 전공(사학과)을 살리면서 큰 소득을 제공하는 문화재연구소 알바도 했다. 지금의 남양주 별내신도시가 들어서기 전에 현장으로 나가 문화재 수습을 도왔다. 기자가 받는 알바 수입은 일당 5만원이었다. 8시간 근무였으니 최저임금의 2배를 받는 셈이었다.

게다가 당시로서는 매우 드문 주휴수당까지 받았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근무하면 하루치 일당을 더 받을 수 있었다. 한 달이면 120만원을 받을 수 있었다. 주휴수당이 너무 달콤해 쉬지 않고 일했다.

기자는 친누나에 비하면 하수였다. 누나는 유아교육 전공이었는데, 소위 '부잣집' 손자, 손녀와 놀아주고 교육하는 알바를 했다. 최저임금이 3000원대이던 시절 1만원을 받았다. 당시 D그룹 외손녀를 가르치게 됐는데 명절선물부터 픽업서비스까지 받았다.

일찍부터 '저축'과 친해져라

대학생 시절, 알바 치고 고액의 돈을 벌었지만 용돈은 부모님께 받아썼다. 대신 알바비를 모조리 저축하겠다고 약속했고 가끔 통장 잔고를 보여드렸다.

용돈을 받는 대신 친척 어르신께서 주시는 용돈도 대부분 적금계좌에 부었다. 이모와 외삼촌만 총 7명이었으니 세뱃돈도 쏠쏠했다. 사실 세뱃돈은 태어난 순간부터 어머니께서 통장에 모아주셨고 고등학생 때 해당 통장을 받아 직접 운용하면서 돈 모으는 재미를 느꼈다.

취직 전까지 모은 돈은 7000만원이었다. 이중 이자 수입만 대략 7~800만원으로 추산된다. 20대 후반 취직 후 2년간 월급을 알뜰살뜰 적립해 총 1억원을 만들어 결혼했다.

앞서 효율적인 고소득 알바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기본적인 예·적금 활용을 익히지 않으면 돈을 지킬 수 없다. 여러 계좌를 만들어 용도에 맞게 관리하고 소비보다는 저축을 최우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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