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최만수 기자
  • 입력 2020.04.28 18:30

[뉴스웍스=최만수 기자]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란 말이 있다. 순간적 결정이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기에 우리는 늘 어느 길로 갈지, 무엇을 고를지를 놓고 고민하게 된다.

출근길 넥타이를 고르고, 점심메뉴를 정하는 사소한 일부터 취직, 결혼, 이사 등 개인적 중대사에 이르기까지 올바르고 합리적인 선택을 하기위해 부심하는 것이 인생이다. 경중이나 선후를 정확히 가려내 최상의 결정을 하라지만 이는 교과서에 나오는 원리원칙일 뿐이다.

상황이 이런만큼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택의 기로에서 신중해진다. 자신의 경험이나 지식, 감각, 정서 등을 총동원해 나름 최상의 결정을 내린다. 너무 신중하다보면 간혹 결정 장애에 빠질 때도 있다.

대소사(大小事)를 스스로 결정한뒤 초래된 결과를 수긍하면서 살아가는 범인(凡人)들과 달리 자신의 판단이 다른 이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공직자는 선후경중(先後輕重), 공평무사(公平無私)를 가리는 판단능력이 특별히 요구된다. 공직자의 숙명적인 의무라고 할 수 있다.

안동 산불 와중,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술을 곁들인 저녁식사 자리를 가진 것을 두고 부적절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경북도의 해명에 따르면 이 지사는 초기 산불진화 책임은 안동시장에 있었기 때문에 공식일정을 소화했고, 국회의원 당선축하 만찬자리에서 몇차례 건배제의가 있었을뿐 술판을 벌인 것이 아니며, 만찬 도중 산불현장에 가고자 했으나 날이 어두워져 포기하고 다음날 새벽부터 화재진압을 진두지휘하며 사흘째 불길을 잡아 인명피해 없이 대형산불을 조기진화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지사는 불이 나자 환경산림국장을 현장에 파견해 안동시를 지원하도록 하고, 소방본부장과 재난안전실장에게는 선제적인 위기대응체계 구축을 지시하는 등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았다. 논란이 된 만찬 도중에 행정부지사를 급히 현장으로 보내기도 했다.

산불 진행 상황과 이 지사의 일정을 겹쳐 대조해보자. 지난 24일 오후 3시 39분께 안동시 풍천면 인금리 산109번지 일원에서 불이 났다. 산불 발생 10여분 만에 경북도청에서도 연기가 크게 피어오르는 것이 보일 정도로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대기가 건조한 가운데 초속 8m 강풍이 불어 산불을 진압하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불은 강풍을 타고 급속히 번졌고, 인근 주민 1200여명은 마을회관, 청소년수련원 등지로 신속히 분산 대피해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이 지사는 산불발생 1시간 20분이 흐른 오후 5시부터 21대 총선 당선인(김희국, 정희용, 김병욱) 3명과 간담회를 가진 데 이어 오후 6시 40분부터 이들 3명의 당선인 및 실·국장들과 만찬을 열었다.

당선인 축하 인사와 함께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건배 제의가 이어졌다. 이 시각 불은 점점 번졌고, 날이 어두워져 소방헬기도 철수했다.

경북도의 해명에 의하면 만찬 도중이던 오후 7시 35분께 산불현장에 있던 안동시장과 도 환경산림국장이 전화로 진화상황을 보고했고, 이 지사는 곧바로 현장으로 가겠다고 했다고 한다.

불은 이미 걷잡을 수 없이 옮겨붙었고, 안동시장이 '날이 어두워 더 이상 작전을 펼칠 수 없어 헬기 등을 철수하고 있으니 내일 새벽에 합류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해 만찬자리를 서둘러 마무리했다고 한다.

피해면적이 급속히 확산되고, 진화가 늦어지면서 산림보호법에 의거해 이날 7시 59분에 산불진화 지휘권이 안동시장에서 경북도지사로 넘어왔다. 이후 11시 10분 산림청, 소방, 경찰, 행정기관이 참석한 가운데 상황판단회의를 가진 것으로 돼 있다.

날이 밝자 이 지사는 오전 6시부터 화재현장을 찾아 이틀 동안 통합지휘본부장으로서 진화에 최선을 다했고, 불은 산림 800h를 잿더미로 만든 뒤 26일 오후 2시께 꺼졌다.

시곗바늘을 화재발생 당일로 되돌려 보자. 이날 오후 3시 39분 산불이 났을 때 이 지사가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산불현장으로 즉각 달려갔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강풍을 타고 무섭게 번지는 화마(火魔)를 잠재울 수 있었을까. 아마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지사가 소방 지휘권이 넘어오지 않은 상황에서 산불 발생에 강력대응하기위해 당선인 간담회 이후 곧바로 현장에 가서 진두지휘하는 모습을 보였더라면 구설수에 오를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간 코로나19 사태에서 빛을 발했던 이 지사의 위기관리능력에 더욱 후한 평가가 쏟아졌을 것도 분명하다. 

공직자는 비록 자신의 몸이 힘들더라도 늘 솔선수범하는 자세를 가져야만 국민들이 보다 편안할 수 있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이 칭송을 받는 것도 사생활을 포기하면서 코로나19 극복에 올인해온 지난 100일의 모습이 국민들에게 각인됐기 때문이다.

공직자의 상황판단과 이에 따른 행동의 결과는 주민들의 기억에 차곡차곡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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