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현건 기자
  • 입력 2020.04.30 18:50

오바마 재선 성공 기여…박원순 서울시장, 대권 도전 위해 고한석 민주연구원 부원장 영입

국회의사당. (사진=전현건 기자)
국회의사당. (사진=전현건 기자)

[뉴스웍스=전현건 기자] 이제는 선거도 빅데이터 시대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기술인 '빅데이터'가 선거의 승패를 좌우하면서 향후 정치권의 판도를 바꿀 핵심 가치로 급부상하고 있다. 

1일 정치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21대 총선을 앞두고 정당 역사상 최초로 이동통신사의 빅데이터를 활용해 선거를 치렀다. 그 결과 180석이라는 유례없는 대승을 거두게 됐다. 민주당은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해 유권자의 동선·취향을 심층 분석하고 지역구 후보 선거 유세 및 공약 등에 사용했다. 실제 빅데이터를 활용해 '표심 요충지'를 예측할수 있었다. 특히 한 표를 놓고 다투는 박빙지역에서 빅데이터가 주요한 역할을 함에 따라 향후 치러질 2022년 대선에서는 각 정당이 두발 벗고 나서 활용할 것으로 예측된다.

빅데이터로 펼침막·유세차 위치까지 선정

민주연구원은 지난 4월 13일 총선에서 한 이동통신사와 독점 계약을 하고 빅데이터 시스템 구축에 필요한 정보를 받았다. 유동인구및 세대별·지역별 특성 등을 포함한 빅데이터에 근거해 펼침막 위치와 유세차 동선, 맞춤형 공약 등을 정해 각 후보자들에게 전달했다.

물론 사생활 침해라는 우려 때문에 민주당은 빅데이터에 담긴 이동통신 가입자의 누적 동선, 소비 패턴 등을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활용했다. 심지어 철저한 보안을 위해 빅데이터 열람자는 지역구 후보자와 후보자가 지정한 1인으로 한정됐다. 열람자를 기준으로 보안교육을 실시하고 보안서약서를 받기도 했다.

지난 2016년 시행된 개인정보보호법 개인정보 비식별 조치 가이드라인에 따라 익명화를 거친 개인정보는 기업이 다른 곳에 공유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지난 1월 데이터3법(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신용정보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암호화 같은 비식별 조치를 거친 가명정보를 당사자 동의 없이 기업이 제3자에 판매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마련됐다.

실제 이수진 동작을 당선자는 유세 동선과 현수막 설치 등을 빅데이터에 기반해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빅데이터가 제공하는 시간대별 정보에 맞춰 아침·저녁인사 장소 등 모든 일정을 짠 것으로 전해졌다. 이 후보 측은 "실제로 데이터를 따라가 보면 사람이 정말로 많이 모여있어 놀란 적이 많다"며 "현수막을 다는 위치도 빅데이터를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웅래 당선인은 한발 더 나아가 빅데이터를 공약에 접목했다. 경의선숲길 공원 단절 구간 연결 공약이 대표적이다. 노 후보 측은 "시간대별로 화면에 뜨는 동그란 점들이 유동인구를 나타내는데 마포의 경우 공원에 유동인구가 많다"며 "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공약을 만들었다"고 전했다.

장경태 동대문을 당선인은 "민주연구원의 빅데이터는 키워드 등으로 분석해 후보자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했다"면서 "마이크로 타기팅(정교하게 유권자와 대화하기)에 좋다면서 유세나 메시지를 전달할 때 유리한 면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동대문을은 격전지였기 때문에 민주연구원 빅데이터뿐만 아니라 타 연구소의 빅데이터 자료, 비공개된 여론조사 자료 등 3가지 각도에서 분석해 선거에 임했다"고 전했다.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부총장 출신인 이경수 더불어시민당 비례후보는 "이제 정치에도 과학이 필요하다"며 민주당의 대승은 과학의 힘이라고 평가했다.

이 후보는 '정치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의 성공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란 기업이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서 기존 사업이나 서비스 모델의 고객 가치를 개선하고, 필요한 운영 체계를 최적화하는 것을 뜻한다. 정치에 이것을 접목한 것이 '정치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다.

그는 "이번 선거 중 민주당 캠프에 수많은 젊은 자원봉사자가 모였다"며 "그들은 어른들처럼 고리타분하지 않다. 그래서 그들이 추천하는 기술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후보는 그 기술이라는 것이 '자동 댓글 프로그램' 같은 반칙 기술이 아닌 정확한 데이터를 기초하는 공정한 첨단 시스템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1주일에 한 번씩 발표하는 설문조사보다 장기간 계속된 모니터링으로 데이터를 수집하고, 인공지능을 활용해 분석하는 것이 국민 의도를 더욱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오바마, 빅데이터 이용해 재선 성공

유권자의 빅데이터를 활용한 '타기팅(맞춤형) 선거운동'은 미국에서 시작됐다. 2008년 미국 대선 당시 오바마 민주당 후보는 유권자들의 누적 투표결과, 대규모 전화설문을 통해 확보된 정치성향, 유권자의 연령·인종·성별·소득·주택·교육수준 등 인구학적 데이터를 종합해 점수를 부여한 뒤 우편·전화·방문 선거운동을 통해 홍보·설득·투표독려 활동을 펼쳐나갔다.

재선에 도전하는 오바마는 2012년 대선 2년 전부터 빅데이터 분석팀을 설치하고 구매 가능한 모든 상업용 데이터 등 수집한 정보를 취합해 거대한 데이터베이스로 만든 뒤 정확한 분석을 통해 대선 로드맵을 도출했다. 그 결과로 오바마는 재선에 성공한 미 대통령이 됐다. 

미국 대선후보들은 정치헌금 기부명단, 각종 면허, 신용카드 정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등 다양한 빅데이터의 분석을 통해 유권자 개개인의 성향을 파악해 개인별 맞춤형 선거운동을 전개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대선에서 빅데이터를 활용했다. 특히 선거 전 미국 100대 일간신문 가운데 단 2곳만이 트럼프를 공개 지지를 표명하며 전통 미디어전쟁에서 사실상 트럼프는 완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샤이 표'가 자신을 당선시킨다고 호언장담한 트럼프 후보의 말은 결코 허풍이 아니었음을 입증했다. 

승리의 비결은 철저한 빅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선거과학이다. 양당제 국가인 미국에서 마지막 주에 대통령후보를 선택하는 비율이 무려 10% 안팎이나 된다. 트럼프가 당선된 지난 2016년에는 13%로 치솟았다. 여기에 포함된 유권자는 사실상 승자가 결정돼있는 양당 우세 주에서는 찾아보기 힘들고, 대부분 경합 주의 스윙보터들이다.

따라서 경합 주로만 한정하면 스윙보터들은 15~30%까지 급등한다. 대선 후보들이 공화당과 민주당 표밭인 와이오밍과 워싱턴D.C.를 포기하다시피 하고 경합 주에서만 집중 유세를 펼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빅데이터는 핵심 공약 역시 경합 주 스윙보터에게 철저히 안성맞춤으로 내놓았다. 대표적으로 트럼프의 러스트벨트 백인 중산층 이하 노동자를 겨냥한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쌓겠다'이다.

도널드 트럼프 후보를 도운 영국 데이터 분석 기업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CA)' 사업개발 이사인 브리태니 카이저는 "데이터 과학과 타깃(target) 커뮤니케이션 전략이 특정 지역의 몇몇 표를 완전히 바꿔 전체 결과를 좌우할 수 있다"며 "유권자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있으면 아무도 모르게 나라 전역을 흔들어 근소한 차이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박원순 시장,  빅데이터 전문가 임명

유력 대권후보로 평가받고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은 최근 빅데이터 전문가 고한석 서울디지털재단 이사장을 새 비서실장에 임명했다.

고 실장은 지난 2013년 버락 오바마 미국대통령의 재선 당시 빅데이터 선거 전략을 풀이한 '빅데이터 승리의 과학' 등 3권의 관련 저술을 쓰고, 2015년 '빅토리랩'이라는 데이터 분석 회사를 설립한 빅데이터 전문가이다.  

민주연구원 부원장으로 재직할 당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전국 3500개 읍·면·동을 대상으로 한 마이크로 전략지도를 만들어 문재인 대통령의 선거 승리에 기여했다.

고 실장은 지난달 12일 메디치미디어 출판사가 운영하는 웹사이트 '피렌체의 식탁'에 2017년 대선의 경험을 들어 "여론조사상의 응답자 이념지형을 보정해서 정당지지율을 구하면 14%포인트 차이를 보이던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은 9%포인트 차이로 줄어든다"며 '샤이 보수'의 존재를 실증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이 때문에 박 시장이 빅데이터와 여론조사 분석에 능한 고 실장을 기용함으로써 차기 대선을 앞두고 지지율 제고 작업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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