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현건 기자
  • 입력 2020.05.09 15:30

이낙연 의원실 5급 비서관 채용, 111대 1 경쟁률…글쓰기는 기본, 동영상편집기술까지 요구

국회의사당. (사진=전현건 기자)
국회의사당. (사진=전현건 기자)

[뉴스웍스=전현건 기자] 5월 30일 시작되는 21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보좌진 채용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매번 총선이 끝나면 보좌진들의 취업시장에는 많은 변화가 생긴다. 떨어진 의원들이 많이 생긴 미래통합당의 보좌진들은 일자리가 사라지고 반대로 유례없는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의 보좌진들은 한결 여유로워졌다.

이번 21대 국회는 고능력·고스펙을 요구하는 의원실의 모집공고가 잇달아 올라오는 가운데 기존 '정무형' 보좌진 대신에 '특정 분야' 전문가로 보좌진을 꾸리려는 의원들이 늘어나고 있다. 민생당처럼 기존 정당 소속 의원 당선자가 없거나 의원수가 줄어든 보좌진들의 재취업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미래통합당 역대급 취업난…"200여명, 21대 국회 입성 못할듯" 

총선에서 대패를 당한 미래통합당에선는 의원 보좌진 상당수가 구직난을 맞이하고 있다.

이번 총선 불출마를 더해 총 의원 77명이 의원회관에서 방을 빼기 시작하면서 보좌진들도 새 일자리를 찾아야만 하는 상황이다.

보좌진은 국가공무원법상 임기가 정해져 있지 않은 별정직 공무원이다. 자신이 보좌하는 의원이 선거에서 떨어지면 소속 보좌진 전원은 일자리를 잃는다. 

의원 1명은 보통 인턴을 포함해 4급 보좌관 2명, 5급 비서관 2명, 6·7·8·9급 비서 1명씩 등 총 9명까지 보좌진으로 둔다. 상술적으로 가정한다면 약 700명 이상이 보좌진 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미래통합당 소속의 한 보좌관은 "이력서를 많이 넣고 있지만 연락이 잘 안 온다"며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일단 들어와서 일을 해야 한다는 보좌진도 있기 때문에 직급을 낮춰서라도 지원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21대 국회 입성에 실패한 의원들까지 발벗고 나서 자신을 보필했던 보좌진의 취업을 위해 나서고 있다. 낙선하거나 불출마한 다선 의원들이 초선 당선인들에게 자기 보좌진의 자리를 부탁하는 것이다.

일부 초선 당선자들은 다선 의원들에게 자문을 구하거나 능력을 검증받은 보좌관을 입도선매하는 경향까지 보이고 있다. 다만, 일부 초선 당선자들은 선거지원 공로나 후원관계 등으로 얽혀 능력 있는 보좌진을 구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통합당의 비례정당인 미래한국당으로 보좌진들이 대거 몰리고 있다. 미래한국당 당선인 19명 중 18명이 초선이므로 경험 있는 보좌진에 대한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원유철 대표 등 미래한국당 지도부의 추천이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래한국당 대표를 역임했던 한선교 의원의 보좌진 중 일부는 같은 당 김예지 당선인을 돕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의원이 대표 시절 김 당선인을 영입한 인연이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통합당 소속 보좌진이 또 다른 선택지로 민주당에 이직을 신청하는 것 역시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

윤호중 민주당 사무총장이 "타당 출신 보좌진을 채용할 때 정체성을 정밀 검증하라"며 지침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업무능력 외에 정체성과 '해당(害黨) 행위' 전력을 기준으로 내세웠다. 지난해 4월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사태 때 민주당 의원·보좌진들과 물리적인 충돌을 겪은 통합당 소속 보좌진들로서 난감한 대목이다. 

구직 중인 통합당 한 보좌진은 "패스트트랙 정국 이후 민주당과 인적 교류가 아예 끊겼다"고 말했다.

이종태 통합당보좌진협의회 회장은 "통합당 보좌진 약 200명은 21대 국회에 못 들어올 것 같다"고 전했다.

여유로운 민주당…"보좌진에 친인척 임용 금지"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며 180석을 얻은 더불어민주당은 기존 20대 국회(128명) 보다 52명 많은 현역의원을 배출하게 됐다.

덕분에 민주당의 보좌진들은 상대적으로 통합당 보좌진보다 여유로운 모습이다. 의원 1명이 고용하는 보좌진의 수가 9명으로 계산한다고 가정해도 약 450개 이상의 일자리가 생겼다. 

민주당은 보좌진 임용에 신중을 가한다는 입장이다. 최근 보좌진의 구설수로 인해 현역 의원이 난감한 상황에 빠지게 되면서 보다 신중하게 채용하는 상황이다.

민주당은 낙선 국회의원 보좌진을 우선하고, 타당 출신 보좌진은 더 확실하게 검증하는 것은 물론 보좌진은 반드시 당원 가입을 해야 한다는 등의 가이드라인을 만든 것으로 전해졌다.

윤호중 사무총장 명의로 당선자들에게 보낸 공문에서 "의원 본인이나 배우자의 친인척을 보좌진으로 임용하는 것은 금지한다"고 밝혔다. 또한 다른 당 보좌진을 임용할 때 정밀 검증하라는 지침도 내려왔다. 다른 당 보좌진이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비방하거나 네거티브를 한 보좌진은 제외해야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보좌진 당적 보유 여부도 따지기로 했다. 보좌진이 되면 반드시 당원이 되어야 하며, 당규에 따른 직책 당비를 납부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비례대표 당선인의 경우 중앙당에서 추천하는 당직자를 4급 이상 보좌직원으로 임용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우리 당의 낙선 의원실 소속 보좌관들이 있기 때문에 초선 당선인들이 굳이 통합당이나 민생당에서 보좌진을 데려올 필요는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엄청나게 늘어난 의석수에 민주당 내부에서는 4급 보좌관, 5급 비서관의 '세대 교체'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민주당은 보좌진 인력풀이 부족하다 보니 5급 비서관이 4급 보좌관으로, 6~7급 비서들이 5급 비서관으로 승진하는 경우가 적지 않을 것으로 예측된다. 자연스럽게 보좌진의 연령대가 낮아지면서 세대교체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사진=국회 의원실 채용 공고 홈페이지 캡쳐)
(사진=국회 의원실 채용 공고 홈페이지 캡쳐)

고스펙 원하는 의원실…이낙연 의원실 5급 비서관 채용 111대 1 경쟁률​​​​​​

지난 8일 의원실 채용공고를 살펴보면 상당수 의원실은 보좌진 자격요건으로 고스펙을 요구했다. 태영호 통합당 의원실은 공고에 4급 보좌관 필수 자격요건으로 영어 능통을 제시했다. 탈북 외교관 출신으로 외국 기관 및 해외 언론과 접촉이 많을 것으로 예상돼 영어 연설문 및 메시지 작성을 담당하는 보좌관을 두겠다는 의도다.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은 4·5급 보좌진 우대사항에 영어·중국어 능통자, 국제기구 유경험자, 거시경제·산업정책 전문능력자' 등을 명시했다.

다만 이 당선인은 보좌진 중 1명은 20·30대 국회 보좌관 채용을 통해 후배세대를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국제적 경험이 있거나 전문성이 있는 2030들을 공개 채용하자"며 "공채가 끝나면 향후 한달 간 전체 교육을 시키고, 의원들이 각자 마음에 맞는 인재들을 뽑아가면 된다"고 주장했다. 

차기 유력 대권주자로 손꼽히는 이낙연(5선) 의원실은 5급 비서관에 경제 또는 국제관계 분야 전문가를 자격요건으로 내걸었다.  경제 및 국제관계 관련 토론회·포럼·콘퍼런스·공부모임 등을 기획하는 자리다. 그러면서 이력서·자기소개서와 함께 분량 제한이 없는 경제·국제관계 현안 관련 논문·기고문·보고서 등의 추가 서류까지 요구했다.

자격 요건을 경제 또는 국제관계 분야 전문가로 한정해 까다로운 조건을 요구했음에도 이낙연 의원실 5급 비서관 채용은 111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며 인기를 끌었다.  

이 위원장 측은 1차 서류심사와 2차 면접을 거쳐 5급 비서관을 최종 선발한다는 계획이다. 좁은 문을 뚫고 합격하면 경제 및 국제관계 관련 입법 및 정책 등 전반에 대한 보좌 업무를 맡게 된다.

이외에도 다수 의원실은 프리미어·파이널컷·포토샵 등을 능숙하게 다룰 줄 아는 보좌진을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유튜브 채널 개설 등 동영상 플랫폼을 활용한 홍보를 위해 기본적으로 보좌진에게 요구되는 글쓰기 능력뿐 아니라 능숙한 동영상 편집 기술까지 원하는 것이다.

고스펙 보좌진 채용을 원하는 의원실이 늘어나면서 이번 총선 이후 구직난을 겪는 보좌진의 생존은 한층 더 어렵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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