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현건 기자
  • 입력 2020.05.13 18:34

[뉴스웍스=전현건 기자] 민경욱 미래통합당 의원이 최근 부정 개표의 증거라며 흔들어 댄 고작 6장의 투표 용지로 인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투표 관리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

공정한 선거제도를 준비하고 이에 관한 의혹을 해소하는 것은 투표시스템을 운영하는 국가라면 누구나 해야 될 의무다.  불필요한 의혹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도록 선거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 역시 국가와 선관위의 몫이다.

투표 개표결과를 직접 확인하고 검증하지 못하는 국민들은 국가와 선관위를 믿고 신뢰하므로 결과를 납득한다. 선관위가 투표관리를 허술하게 진행한다면 국민들의 신뢰는 흔들릴 것이고 곧 선거의 뼈대가 흔들릴 수 있다.

민 의원이 언론에 공개한 투표용지가 경기도 구리시 선관위에서 유출된 것으로 확인됐다.

투표용지가 유출된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12일 민 의원이 제기한 부정선거 의혹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며 지난 총선 투개표 과정에서 투개표 조작은 없었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검찰수사를 통해 명백하게 밝혀야 할 사안이라고 판단하고 대검에 수사를 의뢰했다.

선거관리 과정을 잠시 엿보자.

투표관리관은 본 투표일에 투표소에서 투표가 끝난 후 남은 투표용지들을 봉투에 넣고 봉인용 테이프를 이용해 봉인하게 된다. 이후 봉투는 다른 투표 물품과 함께 선거 가방이나 박스에 담겨 개표소로 옮겨진다. 개표 작업 동안 개표소의 별도 공간에 임시 보관되고, 개표가 끝난 후 구·시·군 선관위가 이를 가져가 창고 등에서 봉인 상태로 보관하게 된다.

이번에 민 의원이 들고나온 6장의 투표용지를 포함해 구리시 수택2동 제2투표구 잔여투표용지들도 투표가 끝난 후 봉인돼 개표소인 구리시체육관으로 옮겨져 체육관 내 체력단련실에 임시 보관됐다.

이후 개표 작업 중 투표자 수와 투표용지 교부 수가 불일치하는 점이 확인돼 선관위 직원이 봉인된 봉투를 한 차례 열어 잔여투표용지매수를 확인했다. 이때 문제의 6장은 봉투 안에 들어 있었다.

투표용지가 사라진 것은 이 시점 이후다.

개표 작업이 끝나 구리시 선관위가 봉인된 봉투를 가져갈 때까지 어떻게 투표용지 6장이 사라졌는지가 현재 불분명한 상태다. 

가장 큰 문제는, 선관위가 유출된 투표용지가 어떤 방식으로 사라졌는지 조차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투표용지 관리 실태가 허술했다.

당시 체력단련실 입구를 비추는 폐쇄회로(CC)TV가 없었고 이를 관리하는 별도의 인력 배치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선관위 매뉴얼에도 잔여투표용지 등 투표 관련 서류를 선거 가방에 넣어 별도 지정 장소에 보관·관리한다고만 돼 있을 뿐 보관장소를 관리할 별도 전담 인력배치 내용은 없다. 

민의원은 "기표가 되지 않은 채 무더기로 발견된 사전투표용 비례대표 투표용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사전투표는 유권자가 올 때마다 투표지를 인쇄하기 때문에 여분의 투표용지가 나오지 않는다며 자신이 용지를 확보한 것 자체가 조작의 증거라는 게 민 의원의 입장이다. 하지만 정작 그가 보여준 것은 구리시 선관위 청인이 날인된 비례대표 선거 투표용지였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민 의원이 잔여 투표지를 꺼내 언론을 향해 흔들지 않았다면 분실된 표가 사라진 사실조차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선거 관계자의 실수로 유출됐든, 누군가가 의도를 갖고 유출했든 간에 투표지 관리에 구멍이 뚫린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선관위는 허술한 관리감독 실태에 대한 사과는 커녕 "검찰수사를 통해 밝힐 사안"이라고 말하기에 급급했다.

과거에도 선관위는 허술한 투표 관리 실태로 인해 언론의 도마위에 오른적이 있다.

실제 2014년 7.30 재보궐 당시 서울시 동작구의 경우 사전투표함을 사무국장실에 보관하면서 낮에는 개방하고, 자물쇠는 물론 CCTV조차 없었던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일었다. 일부 지역구에서는 CCTV가 설치됐음에도 작동하지 않거나 영상이 실종돼 확인이 불가능한 사례도 있었다. 

서울 관악구에서는 하루치 영상이, 인천 서구 강화군에서는 전체 영상이 보름 정도 만에 지워진 걸로 밝혀졌지만 선관위는 "용량초과로 덮어씌워지는 바람에 일부 촬영분이 삭제됐다"고 변명만 할 뿐이었다.

지난 2006년 지방선거 당시 동대문구 선거구에서 기표가 완료된 투표지 85장이 사라진 적이 있지만 선관위는 이를 결국 찾지 못했다. 투표지분류기에 남아있던 이미지 파일로 기표 내용을 확인해야만 했다. 

매번 선거때마다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부실한 관리를 하고 있는 선관위의 잘못이 크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 선거법은 피선거권자 등에게는 굉장히 엄격한데 선관위 스스로에게는 다소 너그러운 게 사실"이라며 "착오·멸실·누락 등의 실수 또는 부실은 대부분 시정만 하면 되도록 돼 있다"고 전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대법관이 겸하고 있으며, 각급 선관위도 법률전문가인 부장판사가 위원장을 맡고 있다.

선거법에 대해서 검경 수사를 독점적으로 의뢰하는곳이 선관위다. 선거 관리를 유일하게 지휘하고 있기 때문에 무사안일의 늪에 빠져있는 것이다.   

이렇게 신뢰성이 의심되는 상황에서 선관위가 내놓은 해명에 대다수의 국민들은 허탈함은 물론이고 해명에 대한 신뢰감이 가슴에 와닿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선관위는 '변명에 가까운 해명'을 늘어놓을 것이 아니라 재발방지를 위해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민에게 확실한 신뢰감을 심어주기 위해선 보다 확실한 근본대책을 마련해서 이러한 논란을 잠재워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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