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3.25 16:39
바람이 조용히 버드나무의 가지를 흔들고 있다. 버드나무는 웬만한 곳이면 모두 뿌리를 내려 잘 자라는 식생이다. 때로는 이별의 상징으로도 쓰였다.

버드나무를 가리키는 한자는 柳(류), 그리고 楊(양)이다. 이 둘의 차이는 이미 설명한 적이 있다. 간단하게 다시 소개하자면, 柳(류)는 길게 늘어지는 가지를 지녔고, 楊(양)은 늘어지지 않거나 적어도 그 정도가 매우 적은 가지의 나무다. 잎의 모습도 크기 등에서 조금 차이를 보인다.

이 버드나무는 아주 잘 자란다. 조금이라도 물기가 있는 곳이라면 쉽게 뿌리를 내린다. 따라서 우리의 산야에서도 잘 자라는 나무다. 수원시 권선구에 있는 이 세류(細柳)라는 지명은 말 그대로 풀자면 ‘가느다란 버드나무’일 것이다. 그 지명이 어떻게 생겼는지에 관한 정설은 없는 듯하다.

단지 일부 소개에 따르면 세동리(細洞里)라는 지명과 상류천(上柳川) 하류천(下柳川)이라는 지명이 각각 있었는데, 이들을 통합하다가 생긴 이름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일제강점 기에 세류정(細柳町)이라는 정식 명칭이 처음 등장했고, 이후 그를 따라서 오늘날의 이름이 자리 잡았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어쨌든 버드나무는 우리 산야의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식생(植生)이어서 매우 친근하다. 봄이 오면 이 버드나무의 잎이 먼저 파릇파릇해진다. 그래서 봄을 알리는 전령(傳令)과도 같아서 반가운 존재다. 우리에게는 그렇지 않지만, 중국에서는 이별의 서운함을 알리는 상징과도 같았다.

중국 한(漢)나라와 당(唐)나라 때의 수도였던 장안(長安)에 이 나무를 많이 심었다고 하는데, 사람들은 먼 곳으로 떠나는 사람에게 이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서 건넸다고 한다. 어디에 가서라도 이 버드나무 가지를 심어 고향을 생각하라는 일종의 정표(情表)였을 테다. 그리고 이 버드나무의 柳(류)라는 글자가 ‘머물다’ ‘남아 있다’의 새김인 留(류)라는 글자와 발음이 같아 ‘떠나지 말고 남아 있으라’는 뜻을 전하는 상징물이었으리라는 얘기도 있다.

그런 정서를 읊은 조선 때의 홍랑(洪娘)이라는 여인의 작품이 있어 먼저 소개한다.

 

묏버들 갈해 것거 보내노라 님의손듸

자시난 창(窓) 밧긔 심거 두고 보쇼셔.

밤비에 새닙곳 나거든 날인가도 너기쇼셔.

 

‘묏버들’은 산에 자란 버드나무일 테다. ‘갈해’는 ‘가려서’다. ‘것거’는 ‘꺾어’, 그 뒤는 ‘님의 손에’다. 주무시는 창 밖에 심어 두고 보소서, 그 나무가 밤비를 맞아 새 잎을 피우거든, 나를 대하듯 여기시라는 뜻이다. 이별, 그리고 서로를 그리워하는 정념(情念)이 담겨 있어 참 아름답다.

아무튼 이런 정서를 돋게 만드는 존재가 버드나무다. 그 ‘버드나무를 꺾다’는 뜻의 한자어는 ‘折柳(절류)’인데, 역시 그를 꺾어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기 위함이다. 그 버드나무를 꺾어서 상대에게 건네는 습속은 ‘贈柳(증류)’라고 하는데, 역시 ‘折柳(절류)’와 같은 맥락이다.

버드나무 역시 봄의 기운이 닿아야 푸릇푸릇 잎을 올리는데, 그 뒤에는 눈송이와 같은 버들개지를 피운다. 우리도 봄이 오면 늘 목격하는 광경이다. 그런 버들개지는 요즘 호흡기에 문제를 일으켜 성가신 존재로 치부하지만, 이별을 앞둔 사람들에게는 눈송이처럼 휘날리는 버들개지가 슬퍼보였던 모양이다.

그 버들개지를 한자로 적으면 柳絮(류서)다. 이 絮(서)라는 글자는 ‘솜’을 뜻하지만, 버들개지처럼 씨를 품고 공중을 날아다니는 그런 식생의 모습을 일컬을 때도 쓴다. 옛 중국의 어느 누군가가 아들과 딸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눌 때 갑자기 눈이 흩날렸다고 한다.

아버지가 “이 눈을 어떻게 묘사할까”라고 문제를 냈더니, 아들은 “소금을 공중에 뿌리는 듯”이라 대답했고, 딸은 “버들개지 흩날린다고 하는 게 낫지 않냐”고 했단다. 눈을 소금에 비유한 아들의 메마름에 비해 딸의 묘사가 훨씬 정감이 있어 아버지는 딸을 크게 칭찬했다고 한다.

그 일화에서 나온 말이 ‘버들개지를 노래하다’라는 뜻의 ‘咏絮(영서)’다. 이는 곧 ‘눈(雪)을 노래하다’라는 뜻의 성어로 자리 잡았고, ‘咏絮才(영서재)’라는 성어로도 발전했다. 뒤의 ‘咏絮才(영서재)’는 ‘버들개지를 읊을 줄 아는 재주’라는 뜻으로 ‘비범한 재주를 지닌 여인’을 가리키는 성어로 쓰인다.

같은 시각에서 보는 같은 사물과 현상일지라도, 품어내는 형용과 묘사는 사람이 지닌 그릇과 재주에 따라 제각기 다른 모양이다. 버드나무에 관한 이야기가 길어졌다. 그러나 우리는 버드나무 많이 자랐던 세류역을 지나며 갈고 닦은 기초가 튼튼하면 그가 발산하는 품성과 재주는 남과 다를 수밖에 없다는 이치를 다시 한 번 읽었다. 다음 역은 어디인가. 고소한 떡 냄새가 솔솔 풍겨온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