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원성훈 기자
  • 입력 2020.05.16 07:00

[뉴스웍스가 만난 사람] "함께 나누면서, 소통하고, 이뤄나가는 세상 꿈꿔"
"후진양성 등 위해 시의회 의원 3선 이상 해선 안돼...다음 선거 출마 안해"

15일 서울시 의원회관 내의 최웅식 서울시의회 의원의 사무실에서 만난 최 의원은 인터뷰 내내 환한 표정을 지었다. (사진=원성훈 기자)
지난 15일 서울시 의원회관에서 만난 최웅식 의원. 최 의원은 뭔가를 설명할 때 상당히 진지한 표정을 짓는다. (사진=원성훈 기자)

[뉴스웍스=원성훈 기자] 최웅식 서울시의회 의원(3선)은 스스로에 대해 "내성적인 성격이라서 학교 선생님을 꿈꿨었다"고 말했다.

이랬던 그가 선생님의 길이 아닌 정치의 길로 들어선지 20여 년 만에 이제 제10대 서울특별시의회 후반기 의장에 도전한다. 서울시의회 의장의 임기는 2년이다. 15일 서울시 의원회관 내 그의 사무실에서 그의 의정 철학에 대해 들어봤다.   

-지난 2018년 7월에 있었던 서울시의회 전반기 의장 선거를 회고한다면.

"반드시 내가 선출되지 않더라도 신원철 의장이 충분히 잘 이끌어갈 것이라고 여겼다. 당시 결과를 보면, 1차 투표에서 내가 2표를 이겼길래, 곧바로 신 의장에게 가서 '축하한다'는 말을 전했다. 그러면서 '열심히 해달라. 나는 안 움직이겠다'고 말했다. 당시의 선거구도상 내가 1차 투표에서 2표 정도를 이겼다면, 결선투표에서는 반드시 질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안 움직이겠다고 한 것은 선거가 끝나고 나서 낙선자가 당선자를 흔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지 않아서다. 어찌됐건 간에 내가 부족해서 떨어진 것이니 내 잘못이다. 따라서 선거 이후 당선자를 흔드는 짓은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고 그것을 지켰다"

-지난 2018년 선거를 통해 느낀 점이 있다면.

"두 가지가 있다. 만일, 전반기때 내가 시의회의장이 됐다면 의장으로서의 활동은 어떨지 몰라도 의원으로서의 활동은 못 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9대때 전반기 운영위원장을 하다보니까 후반기 의원활동을 썩 만족할 정도로 못했던 것 같다. 그때 떨어지고 보니까 후반기 활동을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됐고, 하다 못해 상임위 활동만이라도 상임위 자체내에서 뭔가 지지를 못 받으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활동을 좀 열심히 하게 되더라.

또 하나는 전반기 의장님이나 집행부들이 그것(흔들지 않고 협조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은 표현하더라. 그러면서 내가 후반기에 나온다고 할 때 의원님들에게 그 부분이 약간의 플러스 요인으로 작동될 것 같은 느낌이다. 한때는 유혹도 있었다. 왜 움직이지 않느냐는 주변의 권유도 있었지만, '일을 하려다보면 100%는 만족하지 못 한다. 전반기 의장이 나름대로 무난히 했고 노력을 많이 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오히려 당시에 내가 출마자가 아니었다면 더 많이 (불만을) 표현했을 수도 있겠지만 누구나 자기 스타일대로 시의회를 운영하는 것인데 내가 출마했던 출마자 입장에서 당선된 의장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봤다"

최 의원은 상당히 인상적인 '밝은 웃음'을 자주 지었다. (사진=원성훈 기자)
최 의원이 상당히 인상적인 '밝은 미소'를 자주 보여주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자신의 장단점은.

"직설적이고 솔직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시간 지나면 다 드러나는 게 성격이다. 세상사가 다 부메랑이기 때문에 당장 숨긴다고 되는 일이 아니므로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원래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내꿈이 선생님이었다. 그래서 초중고때의 친구들을 만나면 그들이 지금의 나를 보고 '네가 정치를?'이라며 깜짝 놀란다. 어느 정도로 숫기가 없었냐면, 내가 어렸을때 어머니가 심부름을 못보낼 정도였다. 가게에 가서 '콩나물 좀 주세요'라고 해야 하는데 그 얘길 못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성격을 고치려고 보이스카웃을 했는데 그래도 내 성격이 바뀌지 않았다. 그러다가 고 3때 우연한 기회에 성격이 바뀌게 됐다. 활동적인 친구와 함께 대외활동을 하다보니 나에게도 잠재된 리더십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 그 이후 정치의 길을 걷게 됐다. 지금은 그렇다보니 외부에서 나에게 정치에 잘 어울린다는 평을 한다.     

하지만 지금도 내성적인 측면이 남아 있어서 내가 동료 여성 의원님들 방에 못 찾아간다. 그분들이 먼저 다가와서 서로 친하게 되는 상황이라면 몰라도 스스로 먼저 찾아 가는게 내게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다보니 외부에서 '최웅식 의원은 친한 사람과만 소통한다'는 평가가 나온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누구든지 막상 나를 만나서 몇번 대화를 하다보면 '진작 만나야 됐었는데'라는 얘기들을 한다. 그 이후 좋은 관계로 오래 간다"

-의정철학은 무엇인가.

"누군가가 10년 전에 내게서 명함을 받았건, 지금 받았건 간에 내 명함에 씌어있는 '함께 나누고, 함께 소통하고, 함께 이뤄가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글귀는 명함속에 변함없이 찍혀있다. 10년 전에 시의원이 되자마자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이 말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내가 생각하는 정치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뤄지는 관계가 정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객원교수라는 경력과 서울시의회 교통위원장이라는 이력이 안 어울리는것 아닌가.

"시의회 상임위에서 교통, 기획경제위, 문화체육관광 등의 위원장을 역임한 게 맞다. 하지만 나는 과거부터 일관되게 정치쪽으로만 걸어왔다. 지난 1988년도에 선거운동을 하다가 정치 쪽으로 들어와서 민주당에서 당직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에는 서울 영등포의 김영주 의원과 같은 지향으로 정치노선을 함께 했다. 서울시의원, 기초의원, 광역의원으로 길을 가게 된다면 일반적으로 때가 됐다 싶으면 구청장, 국회의원을 해볼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막상 의원이 된다면 의원이 되는 순간부터는 자신의 갈길을 명확하게 정해줘야 한다고 본다. 행정 쪽으로 갈 것인지 입법 쪽으로 갈 것인지를 명확히 정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야 한 쪽 분야에서 영향력과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입법 쪽의 길을 정해 걸어왔다"

최 의원은
최 의원은 지방자치의 현실을 얘기할 때는 다소 허탈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사진=원성훈 기자)

-'시의회 의원, 3선 이상 해선 안 된다'는 건 무슨 얘기인가.

"초선때는 의욕은 앞섰지만 뭔가를 모르고 넘어가고, 재선때는 뭔가를 아니까 테크닉도 발휘하면서 가는데, 3선이 되다보니 열심히 하려 해도 꾀가 생기고 (좋지 않은 의미의) 테크닉도 발휘되고 이러다보니까 문제가 생긴다. 또 인력적으로 순환이 돼야 하는 부분도 좀 있다. 신진 의원들이 시의회에 들어와서 시의회를 순환 시키는 그런 기능이 좀 있어야 한다. 후진양성이라는 게 바로 그런 것이다. 물론 3선 이상 되는 분들은 스스로의 능력이 있어서 되는 것이겠지만 여하튼 내 생각은 그렇다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나는 나태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이제 나는 내 역할이 필요한 곳을 찾아가려고 생각한다

따라서 다음 지방선거에는 출마하지 않을 생각이다. 진로와 관련해선 내가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므로 뚜벅뚜벅 걸어가면 된다. 지방선거에 단체장으로 출마하려다 보면 의회를 대변할 수 있는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다. 시의회 의장이나 원내대표 등이 구청장으로 출마한다 뭐한다 하다 보면 시의회는 공백상태가 된다. 그러다보니 지역의 대변자 노릇을 못해 사실 안타깝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 시의회 의장에 출마해서 당선이 되건 안되건 간에 지방자치제 하에서 시의원들이 해야 할 고유의 역할을 좀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향후 지방분권의 향방은 어떻게 보나.

"그건 향방이 아니라 무조건 해야 하는 것이다. 지방분권 역사가 30년 정도 됐다. 이제 성인이라는 얘기다. 내가 언론인이나 정치인들을 개인적으로 만났을때는 그들 모두가 '지방분권으로 가야된다'고 얘기하다가도 막상 뭔가 되려고 하면 이상한 목소리를 내는 것 같다. 특히 정치권에서 그렇다. 막상 딱 들어가면 '이게 문제다 저게 문제다 하면서 이건 좀 나중에 하자'면서 이런 식으로 30년을 끌어온 것이다. 

민주국가일수록 지방자치가 되지 않으면 제대로 된 민주화가 됐다고 보지 않는다. 특히 지방자치가 활성화 된다면 시의회 의원님들도 '내 경쟁상대가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 같은 경우도 내가 몇년을 더 하고 이걸 더하고 하는 '계획'에 신경 쓰게 되지 누군가와의 경쟁에 집착하지는 않게될 것이라고 본다. 지방자치의 진정한 활성화가 그런 역할을 할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지금은 국가통제하에 놓여져있다보니 뭘 하려 해도 그것이 행안부 방침에 저촉되고 또 뭐에 걸리고 이런 식으로 돼 있다. 이것을 인사독립권부터 시작해서 좀 해달라는 것이다. 하나하나 만들어가자는 것이다.

일례로, 서울시 예산이 50조에 육박한다. 행정사무감사 예산 심의할때 보면 서류가 굉장히 높게 쌓여져 있다. 나는 이것이 대단하다고 본다. 혼자서 이것을 다 독파하고 하는 것 보면 정말 대단하다. 10월, 11월쯤 시의회로 한번 와 보시면 알겠지만, 라꾸라꾸 침대 가져다 놓고 밤새워 가며 작업한다. 분량이 굉장히 많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세세한 부분까지 모두 다 찾아내겠는가. 정책지원관이라고 해서 시의원 두 명당 한 명을 (중앙에서) 지원해 줄 수는 있는데 시의원들마다 조금씩 사정이 다르다는 게 문제다. 지역관리하랴 이것하랴 저것하랴 하다보면 예산안 심사가 역부족이다. 내가 볼때는 제일 열심히 하는 분들이 기초의원과 광역의원들이다. 특히 서울시의회 의원들이 열심히 하고 있다고 본다"

-'서울시 예산을 혼자서 심의한다'는 것이 이해가 안 간다.

"물론 예결위원들이 있지만 예산안을 제대로 보려면 의원들끼리 그룹별로 나눠서 미팅을 한다. 많은 분량을 나눠서 분업화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누군가가 좀더 도와준다면 좀더 세비를 아낄 수 있다. 이게 1%라도 세비를 아낄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1%라면 엄청난 액수다. 그 돈으로 지원관이나 보좌할 인력을 지원해줘도 충분히 남기 때문이다. 그런데 외부에선 내부에서의 시각과는 달리 본다. 즉, 예산안 심사를 위한 인력지원이 불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물론, 의원들의 위상이라든지 그런 부분에서 약간의 손상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100을 놓고 봤을 때 99명이 잘했지만 1명이 못 했을 때 마치 그 1명 때문에 모든 것이 잘못됐다는 식으로 가서는 곤란하다. 

국민들이 공무원들을 믿고 최고의 직장이라고 생각하게끔 만든 건 우리 시의원들의 힘도 포함됐다고 본다. 실제로 예전에는 공무원들 만나기도 힘들었다. 권위주의다 뭐다 이랬다. 그러나 지금은 동네에 뭔일만 생겨도 119에 전화하거나 주민센터에 전화한다. 이렇게 바뀐 데에는 저희들의 역할도 있다고 본다는 얘기다. 그만큼의 역할을 만들어놨으면 거기에 걸맞게 시의원들을 지원해줘야 하는 것이다."

-어떤 의원으로 기억되고 싶나.

"최웅식이라는 사람이 서울시에서 그래도 나름 소통할 수 있는 역할, 소통을 만들어가려고 노력한 사람이었다고 기억된다면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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