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3.25 17:41
대한제국이 들어서면서 만든 '제고지보(制誥之寶)'. 황제와 국권을 상징하는 나라 도장이다.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요즘 새누리당의 내분 상황이 정말 가관이다. 당 대표와 이른바 ‘친박’에 속하는 최고위원 측이 가까스로 타협점을 찾아 움직였으나 그 과정에서 드러난 집권 여당의 모양새는 측은함을 넘어 가련함까지 불러일으킨다. 당의 최고 지도부를 이루는 사람들의 깜냥이 저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비감(悲感)도 새삼 고개를 든다.

그 과정이야 언론 보도를 통해 상세하게 드러났으니 여기서 다시 적을 필요는 없다. 단지 새누리당 대표의 직인(職印)이 일으킨 파문이라는 점에서 이 사태를 ‘옥새 투쟁’이라고 명명한 언론과 우리사회의 언어감각에 조그만 이의를 제기하고 싶다.

옥새는 한자로 玉璽다. 이는 원래 고유명사였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秦始皇)이 남부지역에서 캤다는 중국 최고의 옥돌, 화씨벽(和氏璧)으로 나라 도장을 만들었던 데서 연유한다. 옥돌로 판 도장이라는 뜻에서 옥새의 이름을 얻었고, 이는 곧 진시황이 만든 황제의 도장을 가리켰다.

진시황의 옥새는 권력의 상징이자 축선이었다. 그 뒤에 등장한 각 왕조들이 이 희귀한 옥돌 도장을 손에 넣기 위해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벌였음은 불문가지다. 그러니 옥새는 평범한 도장이 아니었다. 피와 권력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아주 특별한 도장이었다.

그러나 진시황의 옥새는 이후 몇 통일왕조를 거치다가 슬그머니 역사 무대 저 뒤편으로 사라진다. 심각한 쟁탈전이 벌어져 모퉁이 한 쪽이 깨지는 ‘상처’를 입기도 했다가, 전란의 와중에서 아예 모습을 감췄던 것이다. 그러나 그 상징성만큼은 대단해 옥새가 없어진 뒤에도 왕조의 권력자들은 옥으로 도장을 만들어 나라 도장으로 삼았다. 이 나라 도장이 바로 국새(國璽)다.

따라서 ‘옥새’라는 낱말은 처음 ‘진시황의 나라 도장’이었다가, 황제 권력과 왕조 정통성 상징의 뜻을 얻은 뒤, 결국에는 여느 다른 황제들이 제 권력과 왕조의 권위를 내세우기 위해 만들었던 나라 도장이라는 뜻을 획득했던 셈이다.

속사정이 그러니 새누리당의 당 대표 직인에 ‘옥새’라는 말을 붙이는 일은 조금 과하다. 어폐가 생길 수 있는 소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우선 일개 정당에 불과한 새누리당의 대표 직인에 나라 최고의 권력을 상징하는 옥새라는 낱말을 갖다 붙인 일은 분명한 언어 인플레이션이다.

아울러 당 대표와 최고위 사이의 당파적 갈등과 내분 상황에 ‘옥새 투쟁’이라는 말을 붙이면 경우에 따라 사태의 속성을 청와대와 새누리당 대표의 직접적인 권력 싸움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오해의 여지가 생긴다. 물론, 사태의 흐름에 그런 요소가 없지는 않지만 오해의 소지가 크다는 점에서 적절한 표현은 아니다.

그래서 새누리당의 내분과 갈등을 ‘옥새 투쟁’이라고 표현하는 우리사회의 언어적 감각은 문제가 크다. 제동이 걸리지 않았고, 문제를 지적하는 움직임도 없었다. 언어 선택에 신중해야 할 언론의 잘못이 우선이다. 아울러 과장과 선정성이 보인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다.

정치인들이 빚어낸 또 한 차례의 소란스러움에 마음이 다시 편치 않다. 무감(無感)으로 대응하는 게 속이 편하겠으나, 이 봄의 소란 속에 우리가 아무 망설임 없이 쓰는 말 ‘옥새’에 박힌 티가 자꾸 눈에 걸리는 것은 또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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