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장진혁 기자
  • 입력 2020.05.22 04:50

[뉴스웍스=장진혁 기자] 4·15 총선 투표지가 정식 규격 보관상자가 아닌 제빵회사의 종이상자에 담겨있던 사실이 드러났다.

21대 국회의원을 뽑은 중요한 증거자료가 허술하게 보관돼 왔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초등학교 반장 선거도 아닌데 말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측은 투표지 보관상자의 수량이 부족해 간식용 빵 상자를 일부 활용했다면서 관련 규정이 없는만큼 법 절차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만일 투표 당일날 선관위가 직원들에게 배포한 간식이 초코파이였다면 초코파이 박스에, 컵라면이었다면 컵라면 박스에 담겨 있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사진=가로세로연구소)
21대 총선 투표함 증거보전 신청 과정에서 서울 도봉구을 선거구의 관내사전투표함 중 쌍문4동의 투표지가 제빵회사의 종이상자에 보관돼 있었다. (사진=가로세로연구소)

유튜브채널 '가로세로연구소'에 따르면 21대 총선 투표함 증거보전 신청 과정에서 서울 도봉구을 선거구의 관내사전투표함 중 쌍문4동의 투표지가 제빵회사 종이상자에 보관돼 있었다.

가로세로연구소는 강용석 변호사와 김세의 전 MBC 기자가 설립한 우파 성향의 민간 싱크탱크로, 현재 사전투표 조작 의혹을 제기하면서 국회의원 후보자들과 함께 선거무효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이로인해 선관위의 허술한 투표관리 실태가 만천하에 드러나면서 국민들의 신뢰는 무너지고 있다. 

선관위 측은 "사전투표율이 예상보다 높아 사전에 준비해뒀던 투표지 보관상자의 수량이 부족해지자 간식용 빵 상자를 일부 활용해 투표지를 보관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어 "공직선거법 제186조에 따라 투표지 등을 보관해 소송에 대비하는데, 이를 보관하는 상자를 규정하고 있지는 않다"면서 "공직선거법 제184조에 규정된 대로 개표한 투표지를 유·무효별, 후보자별로 구분한 후 각각 포장해 봉인하고 있으므로 절차상의 문제는 없다"고 설명했다.

4년에 한 번 열리는 국회의원 선거에서 투표지 보관상자를 충분히 준비하지 못했다는 선관위의 해명은 국민들에게 그저 핑계로 들릴 뿐이다. 그간 사전투표율은 지속적으로 상승해왔다. 이런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은 선관위의 전문성을 의심케 하기 충분하다. 

더구나 근처 다른 선거구로부터 투표지 보관상자를 빌려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간식용 빵 상자를 활용했다는 점은 선관위의 안일한 태도를 입증한다.

투표지가 담겨있던 빵 박스는 도매용 핫도그번을 납품하기 위한 용도의 상자로 추측된다. 일반적으로 쉽게 구매할 수 있는 간식용 빵 상자가 아니기에 선관위의 해명은 변명과 다름없다.

더구나 국민들의 소중한 한 표가 행사된 투표지를 이리 취급한 것은 한국 민주주의 수준과는 격이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진=가로세로연구소)
경기 안산시단원구 선거구의 투표지 보관상자에는 봉인 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어있고, 봉인 도장이 수차례 찍혀있다. (사진=가로세로연구소)

이보다 더 충격을 준 모습은 경기 안산시단원구 선거구의 투표지 보관상자다. 봉인 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어있고, 봉인 도장이 수차례 찍혀있는 모습이 관측됐다.

일반적으로 중요한 서류를 보관할 때 봉인을 하고, 개봉 여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밀봉한 자리에 도장을 찍는다. 개봉시에 봉인이 뜯겨 있거나 훼손된 정황이 포착된다면 그 서류는 조작됐을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서는 "투표수를 조작한 흔적 아니냐"며 부정선거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다. 처음에 도장을 찍어 봉인한 보관상자를 뜯어내고 모종의 작업을 한뒤 다시 봉인하면서 재차 도장을 찍었다는 주장이다. 특히 이같은 흔적들은 사전투표지를 보관하는 상자에서 주로 발견되고 있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사전투표 조작 의혹이 근절되지 않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투표지를 보관상자에 봉인하는 데 있어 도장을 남용한 점은 관리 소홀의 전형이 아닐 수 없다.

민경욱 미래통합당 의원은 최근 사전투표용 비례대표용지 6장을 흔들어 대면서 부정선거를 주장했다. 당시 선관위는 유출된 투표용지가 어떤 방식으로 사라졌는지 조차 모르고 있었다.

선관위 측은 부정선거 의혹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하면서 투표 조작은 결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런 주장과는 달리 허접한 관리 행태가 하나둘씩 드러나면서 선관위가 제몫을 과연 다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제대로 준비된 매뉴얼이 없기에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임기응변으로 대처하기에 급급한 것은 아닐까.

올해 선관위 예산은 7301억원으로, 선거가 없었던 지난해 예산(3436억원)의 2.1배다. 총 직원수는 2903명에 달한다. 이같은 거대한 규모의 국가기관이 정식 규격 보관상자 수량이 부족해  빵 박스를 활용했다는 사실은 곧 그 행정력을 허튼 데 쓰고 있다는 것을 말해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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