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원성훈 기자
  • 입력 2020.05.21 15:11
원성훈 기자.
원성훈 기자.

[뉴스웍스=원성훈 기자] '국민을 위한 법을 제대로 잘 만들라'는 취지로 지급된 혈세가 거대정당의 밥그릇 늘리기에 씌여져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적지않다. 국회 교섭단체 정책연구위원 얘기다. 정책연구위원은 1급~4급에 해당하는 별정직 국가공무원 신분으로 교섭단체 원내대표가 임명과 해임을 제청할 수 있다.

여야는 지난 20일 열린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각 교섭단체에 소속된 정책연구위원의 숫자를 늘리는 국회규칙을 의결했다. 원래 67명이었던 정원을 77명으로 10명 늘렸다. 이에 따른 재정 소요는 1인당 1억원이 넘어 총 10억여원이 추가로 더 들어갈 것으로 추산됐다.

물론, 정책연구위원들이 모두 억대 연봉자들은 아니다. 인사혁신처에서 나온 2020년도 '일반직공무원과 일반직에 준하는 특정직 및 별정직 공무원 등의 봉급표'에 따르면 1급 공무원 23호봉(최고 호봉)의 경우에 월 701만3700원의 봉급을 받고 있고, 헌법연구관·헌법연구관보의 경우엔 16호봉자(최고 호봉자)가 월 840만3100원으로 책정돼 있다. 

이를 연봉으로 환산하면, 8416만4400원 ~ 1억83만7200원이다. 즉, 정책연구원들이 최고 호봉자를 기준으로 했을 때 억대 연봉에 근접했거나 억대 연봉을 받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의미다.

이들에게 지급되는 금액은 국민들의 혈세로 충당된다. 따라서, 이 금액은 '국회 상임위에서의 입법을 위한 연구활동비'라는 당초 취지에 부합되게 사용돼야 하는 자금이다. 실제 현실에선 국회 교섭단체의 쌈짓돈으로 사용되고 있다.  

정책연구위원에게 지급되는 자금인만큼 어떤 법안의 입법과정에 필요한 정책연구비로 사용되는 뉘앙스를 풍기지만, 실제로는 거대정당 소속 당직자들에게 지급되고 있다.

미래통합당의 한 핵심관계자는 21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통합당의 경우엔 주요 당직자 중 일부 인원을 정책연구위원으로 위촉해 이들이 실제로는 당의 일을 하면서도 급여는 정책연구위원에게 주어지는 공무원 봉급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더불어민주당도 마찬가지였다. 즉, 국회 상임위별로 필요한 해당 분야의 입법을 위한 정책연구비가 아닌 자당의 당직자들에게 베풀어주는 일종의 시혜성 자금인 셈이다.

이들의 임용과 관련된 핵심 키는 해당 정당의 원내대표가 쥐고 있다. 민주당 원내행정실의 관계자는 같은 날 기자와의 통화에서 "정책연구원을 선발하는 것은 원내대표의 권한이고, 해당자의 임기는 원내대표의 임의로 어떤 사람은 짧게 어떤 사람은 오랫동안 보임하는 등 천차만별이다"고 답변했다. 통합당 측 핵심 관계자는 "정책연구원의 선발은 원내대표의 권한이지만 우리는 해당 연구원의 임기를 1년으로 정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이 문제와 관련해 이상직 호서대학교 벤처대학원 정보경영학과 교수는 이날 기자와의 통화에서 나름의 해법을 제시했다. 이 교수는 "전문가를 임명할 수 있는 투명한 절차를 도입할 필요성이 있다"며 "정책연구위원은 1년마다 '정책 역량 평가제'를 통한 재임용 절차 과정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어 "임용 후에도 입법활동 중심의 정책 평가연봉제를 도입하면 좋지 않을까 한다"고 피력했다. 

미래통합당 한 중진의원의 보좌관은 "허울 좋은 연구위원"이라며 "거의 해당 정당의 당직자라고 보면 될 것이고, 하는 일 역시 당과 관련된 일이 거의 대부분이고 혹여라도 연구가 필요할 경우 국회사무처 차원에서 연구용역을 의뢰해서 처리하는 것으로 알고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20대 국회 마지막 순간에 이것이 처리됐다는 게 다소 씁쓸하다"고 소회를 밝혔다. 

반면, 민주당 중진의원의 보좌관은 조금 다른 목소리를 냈다. 그는 "이 문제는 급여 문제로 접근할 것은 아닌 것 같다"며 "정책연구위원으로 가려면 입법분야에서 한 20년은 해야 되는 자리인 것으로 안다. 국회 정무위나 기재위처럼 전문성이 요구되는 상임위에는 정책연구위원이 현재 1명밖에 없어서 한 두명 정도 더 늘어나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총 10명이 늘어난 것이라면 각 당에는 4명 정도 늘어난 셈이니까 (적당하다)"고 언급했다. 

이런 상황속에서 정치권의 전반적인 흐름은 부정적인 견해가 우세하다. 여의도 정가의 한 핵심인사는 "이것은 당직자들의 인사 돌려막기를 위한 자리에 불과하다"며 "이 자리는 늘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줄여야 한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이런 비판 때문에 이번에 통과된 이 규칙은 지난 2016년 발의된 뒤 운영위와 법사위를 통과하고도 본회의에 오르지 못했다. 그렇게 여론의 눈치를 보던 여야가 서로의 밥그릇이 다소 늘어나는 사안이므로 서로가 이심전심으로 암묵적 동의 상태에 있다가 20대 국회의 마지막 본회의에서 슬그머니 끼워넣어 처리한 셈이다.  

민의의 정당으로 불리는 국회에서 거대정당들이 서로 야합해 소수의 민의를 대변하는 군소정당은 도외시 한 채 자신들의 배만 불리는 행태에 대한 질시의 눈초리가 쏟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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