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다윗 기자
  • 입력 2020.05.23 13:00

의협 "원격의료 도입 추진, 코로나19 정략적으로 악용하는 행위"
지난해 세계 원격의료시장 규모 약 37조…연간 15% 고속성장

캐나다 약국에 설치된 원격진료 시스템
캐나다 약국에 설치된 원격진료 시스템. (사진=뉴스웍스 DB)

[뉴스웍스=전다윗 기자] 원격의료가 또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약 10년간 지속됐던 해묵은 논쟁이 대통령의 발언으로 다시 불붙었다. 

원격의료란 의료진이 환자와 직접 대면 없이 통신 등을 통해 원격으로 진단하고, 치료하는 시스템을 뜻한다. 현행 의료법상 의사는 환자를 무조건 만나서 진료해야 한다. 원격의료는 의료진 사이에서만 가능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취임 3주년 특별연설'에서 비대면의료를 포스트 코로나 시대 개척을 위한 중점 육성 산업으로 꼽았다.

정부 고위관료들도 잇따라 문 대통령 발언에 힘을 실었다. 김연명 청와대 사회수석은 "최근 원격의료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있어 검토하고 있다"고 했고, 김용범 기획재정부 차관은 "비대면의료 도입을 위한 적극적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앞서 정부는 코로나19 확산을 계기로 전화상담을 도입하며 한시적으로 원격의료를 허용, 적잖은 성과를 거둔 것으로 자평하고 있다. 향후 제2의 팬더믹에 대비해 '상시 허용'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졌다. 

이에 대한 입장차는 극명히 갈리고 있다. 의료계와 시민단체는 결사반대한다. 의사와 환자가 대면하지 않았을 때 생길 의료 서비스의 질적 하락을 우려한다. 의료 민영화의 시발점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찬성 측은 원격의료를 피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으로 본다. 선진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이미 원격의료를 도입한 것이 근거다.

 

대한의사협회를 중심으로 한 의료계는 원격의료 도입에 반대하고 있다. (사진=대한의사협회)
대한의사협회를 중심으로 한 의료계는 원격의료 도입에 반대하고 있다. (사진=대한의사협회)

◆시민단체 "원격의료, 의료영리화의 초석"

대한의사협회는 원격의료 도입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드러냈다. 최대집 의협 회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부가 코로나19 비상시국을 이용해 그간 의협이 일관적으로 반대했던 원격의료를 강행한다"고 지적했다. '극단적 투쟁'을 불사하겠다는 입장도 덧붙였다. 이후 의협도 공식 성명을 통해 "원격의료 도입은 사상 초유의 보건의료위기인 코로나19를 정략적으로 악용하는 행위"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원격의료의 한계가 반대 근거다. 기존 대면 진료와 비교해 필연적으로 '의료의 질'이 떨어지고, 오진할 경우 책임 소재가 모호하다. 개원의들은 환자가 대형병원으로 몰리는 현상이 더 심화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시민단체는 원격의료가 의료영리화의 초석이 될 것을 우려한다. 참여연대·민주노총 등 시민사회단체가 주축인 '코로나19 사회경제위기 대응 시민사회대책위원회'는 "원격의료 도입은 관련 기기 제조업체, 통신기업, 대형병원의 돈벌이 숙원사업이지만 환자에게는 의료 수준 향상 없이 의료비만 폭등시킬 제도"라고 지적했다. 

정부의 앞뒤 안 맞는 태도도 반대 측의 공격 대상이다. 

문 대통령은 "선도형 경제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개척하겠다"며 비대면의료를 거론했다. 반면 청와대는 "대통령의 비대면의료 발언은 보건의료 서비스 증진 차원에서 검토 중일 뿐 산업화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사실상 청와대가 대통령의 발언 취지를 반박한 것과 다름없다. 여당은 의사단체와 시민사회의 반대가 이어지자 "관련 내용을 구체적으로 협의한 적 없다"며 슬쩍 발을 뺐다. 

'원격의료와 비대면의료는 다른 개념'이란 취지의 설명도 했지만, 정확히 다른 점을 설명하지 못했다. 야당 시절 원격의료를 격렬히 반대했던 탓에 용어를 바꿔 논란을 피하려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의료진이 스마트폰을 활용해 원격에서 진료하고 있다. (사진=KBS 캡처)
의료진이 스마트폰을 활용해 원격에서 진료하고 있다. (사진=KBS 캡처)

◆주요 선진국, 원격의료 속속 도입

원격의료 도입 찬성 측은 의료계·시민단체 반대 의견을 '기우'로 본다. 미국·중국·일본과 프랑스 등 유럽 주요국들은 이미 원격의료를 적극적으로 도입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지난 1993년 원격의료를 도입했다. 시장조사기업 'IBIS World'에 따르면 미국 원격의료 시장 규모는 지난해 24억달러(약 2조 9000억원)까지 커졌다. 오는 2022년까지 약 30억달러로 성장할 전망이다. 

지난 2014년부터 원격의료를 허용한 중국은 원격 진료를 받은 뒤 약을 택배로 배송받는 서비스도 갖췄다. 일본은 지난 2015년부터 재진(再診) 환자를 대상으로 원격의료를 허용했고, 올해 코로나19를 계기로 초진(初診) 환자까지 허용 범위를 늘렸다. 

파이도 나날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세계 원격의료시장 규모는 305억달러(37조 5000억원)로 추정된다. 지난 2015년부터 연간 약 15%씩 고속성장 중이다. 

한편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국민들 사이에선 원격의료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지난 21일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에 따르면 '비대면진료 도입에 찬성한다'는 의견은 43.8%로 반대의견(26.9%)보다 약 17%포인트 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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