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원성훈 기자
  • 입력 2020.05.25 17:37

"30년동안 이곳저곳 끌려다니면서 각종 모금활동에 동원…한쪽 눈 실명인 김복동 할머니까지 끌고 다녀"
"위안부 이용한 정대협, 도저히 용서 못해…만두 겉면은 정신대로 빚고 속에는 위안부 넣은 것처럼 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92) 할머니가 25일 대구 수성구 만촌동 인터불고 호텔에서 열린 제2차 기자회견에서 상황설명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인터넷언론인연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92) 할머니가 25일 대구 수성구 만촌동 인터불고 호텔에서 열린 제2차 기자회견에서 상황설명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인터넷언론인연대)

[뉴스웍스=원성훈 기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92) 할머니는 25일 대구 수성구 만촌동 인터불고 호텔에서 열린 제2차 기자회견에서 미리 써온 원고를 가리키며 "이것은 내가 직접 읽기가 어려워"라며 "이것을 전부 카메라로 찍었으면 좋겠어. 한부 밖에 없으니"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 할머니는 '정의기억연대(정의연) 회계 투명성 문제를 겨냥해 "내가 생각도 못하는 것이 나왔어"라며 "이것은 제가 생각하기에는 검찰에서 할 일이라고 생각해"라고 잘라 말했다. 

특히 이 할머니는 '정신대와 위안부를 혼동시킨 것이 문제'라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근로정신대는) 공장에 갔다온 할머니들인데 (이처럼) 공장에 갔다온 할머니들과, 아주 더럽고 듣기 싫은 위안부하고는 많이 달라"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할머니의 과거사 얘기가 이어졌다. 그는 "내가 만 14세(16세)의 나이로 일본의 가미가제 부대로 끌려가서 그곳의 일본 장교와 가타가나를 통해 대화를 했어"라며 "이 군인이 나에게 야스하라 도시코라는 일본이름을 지어준거지"라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지난 30년 동안 정대협이 위안부 피해자들은 이용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과거에는) 내가 정신대 대책협의회라는 곳을 몰랐어"라며 "그런데 1992년도 6월 29일에 모임이 있다면서 오라고 해서 어느 교회로 나가게 됐는데, 그날따라 일본 어느 선생님이 정년퇴직하고 돈을 1000엔인가 얼만가 줬다면서 (우리들에게) 100만원씩 나눠줬어. (당시에는) 그게 무슨 돈인지도 몰랐어"라고 증언했다.

더불어 "그때부터 (정대협이) 모금을 하는 것을 봤다. 왜 모금하는지 그것도 몰랐어. 따라다니면서 모금하는데 보니까 농구선수들이 농구하는데에서 기다렸어"라며 "기다렸더니 그 농구선수가 돈을 들고 모금을 했고 그 돈을 받아왔더라고... 농구하면서 애쓰는데 버젓이 앉아서 농구 끝나고 돈 받는 것을 봤어. 부끄러웠어"라고 회고했다.  

또한 "늦어서 배고픈데 맛있는 것 사달라고 하니까 '돈이 없다'고 하더라. 그래도 그것이 그런가보다 생각했지 뭐"라며 "어디가도, 교회가도 돈 주면 그런가보다 생각했는데 그래도 뭣도 모르고 쭉 30년을 이런 식으로 (모금)해가지고 나왔어"라고 털어놨다.  

그는 "정대협이라면 공장을 갔다온 할머니들을 위한 활동을 해야 하는데 마치 만두 겉면은 정신대로 빚어놓고 속에는 위안부를 넣은 것처럼 했다"고 강조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92) 할머니가 25일 대구 수성구 만촌동 인터불고 호텔에서 열린 제2차 기자회견에서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사진제공=인터넷 언론인연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92) 할머니가 25일 대구 수성구 만촌동 인터불고 호텔에서 열린 제2차 기자회견에서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사진제공=인터넷 언론인연대)

이 할머니는 또 '일본의 사죄 및 배상문제'에 대해서도 꼬집었다. 그는 "30년 동안 (일본에게) 항상 얘기하는 게 사죄해라, 배상하라는 건데 일본사람이 뭔줄 알아야 사죄하고 배상할 것 아니냐"며 "이걸 30년 동안 해가면서도 사죄배상 요구하고 그 학생들까지 고생시켰어. 그 학생들 돈도 받아서 챙긴거지"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에 더해 "왜 이렇게 바보같이 당하면서 여태까지 말도 못했나 생각하니 '그래, 내일 기자회견에는 이것을 반드시 밝혀야되겠다(생각했다)"고 밝혔다.

이어 "사죄배상 막지 않았느냐. 위안부하고 정신대하고 어떻게 같으냐. 위안부는 생명 걸어놓고 거기(위안소)가서 죽은 사람도 많아. (정대협이) 위안부 할머니들을 팔아먹었습니다. 내가 왜 팔려야 합니까. 이런 걸 30년을 이용했기에 (내가) 나온 거야"라고 토로했다. 
 
계속해서 이 할머니는 '책 판매 수익금'에 대한 의혹도 제기했다. 그는 "책을 놓고 6500원에 파는걸 봤어. 그래도 그걸 책으로 내는 줄 모르고 당연한가보다 하고, 미국으로 다니면서 제가 제일이라 생각하고 청원도 하고, 정신대 협의회 박물관 짓는 형무소에 짓는다 했다"며 "박경림씨하고 큰 조카하고 저하고 가서 15만원 받고 협의회에서 증언했어"라고 밝혔다.

뿐만아니라, '윤미향 당선인에 대한 질타'도 이어졌다. 이 할머니는 "소위, 국회의원으로 나올 적에 내가 도와준 건 없지만 가봐야 한다는 생각은 했는데, 그런 사람이 어떻게 저 따위로 행동을 하는지 모르겠어"라고 쏘아붙였다.  

그러면서 "어느날 저녁에 나갔다 들어와보니 윤미향이 들어왔어. 너무 놀랐어"라며 "와서 무릎꿇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용서해달라고 했어. 뭘 용서하나. 뭐라도 가져와야 용서를 하지. 뭘 용서하나. 보니까 엄청나구나"라고 했다.

이어 "(윤미향이) 한번 안아 달라 하더라. 그래서 내 생각에, 그래 이게 마지막이다 하는 생각에 안아주니 이걸 가지고 기자들이 '(내가 윤미향을) 용서했다'라는 식으로 기사를 썼는데 이게 너무 황당해. 그게 아니야"라고 단언했다. 

또한, 그는 "이래놓고 자기가 사리사욕 채우려고 마음대로 국회의원 비례대표 나갔는데, 나는 모르지. 어떤 얘기도 없었고 자기마음대로 하는 거니까 그가 무슨 용서를 구했나"라며 "이름도 성도 없는 용서냐, 자기마음대로 하든지 말든지 하는 것이지 뭣 때문에 용서를 바라냐"고 질타했다. 이어 "그게 아니라도 여러 수십만 가지를 제가 다 말씀 드리기는 어려워"라며 "속이고 이용하고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몇 사람이 받아 먹었어"라고 폭로했다. 그러면서 "이런 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도대체 뭘 용서하란 말이냐. 용서할 가치조차 없는거야"라고 일갈했다. 

이 할머니는 최근 들어 운영 상의 비리 문제가 불거진 '안성 쉼터'와 관련한 얘기도 했다. 그는 "(안성) 쉼터 화려하게 지었더라"며 "윤미향 대표의 위대한 아버님이 (그곳에서) 사셨다고 하더라. 이런 것들이 엄청나게 나왔는데 그건 다 검찰청에서 밝힐거야"라고 다짐했다. 이어 "죄는 지은 데로 가고 공은 닦은 데로 간다고 했다"며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 없도록 하기위해선 반드시 벌을 받아야한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이 할머니는 "할머니들 팔아서 했으니 이거 부정 아니냐. 이것 또한 죄를 받아야 해"라며 "그래도 끝까지 사죄(어쩌구) 하냐, 무슨 사죄냐. 김복동 할머니는 한쪽 눈이 실명이야. 한쪽 눈 조금 보이는 (그런) 할머니를 끌고 다녔어"라고 개탄했다. 

이어 "미국으로 어디로 끌고 다니면서 고생시키고 할머니 이용해먹고... 그래놓고도 뻔뻔시리 묘지가서 눈물을 흘려?, 그건 가짜 눈물이야. 병주고 약주고 하는... 그것도 죄인데 (그런) 죄를 모르고 아직까지도... 그것은 다 검찰청에서 밝힐거야. 정신대 협의회에서 위안부 이용한 건 도저히 용서 못해. 이것 또한 벌 받아야 해"라고 강조했다.

 

아래는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에서 배부한 회견 전문(구두회견과는 별도)이다.

저는 위안부였습니다.

그냥 위안부가 아니라 일제강점기, 일본군의 대만 주둔 가미가제 특공대의 강제 동원 위안부 피해자였습니다.

해방 이후 그 누구에게도 밝히지 못했던 제 삶의 상처를 대중에게 공개했던 것이 1992년 6월 25일입니다. 차마 용기를 내기가 어려워 제 자신이 아니라 친구의 이야기인 것처럼 당시 정대협에 거짓으로 피해를 접수했었습니다.

이후 1992년 6월 29일 수요집회를 시작으로 당시의 참상과 피해, 그리고 인권유린을 고발하고, 우리 인류에게 다시는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지 않도록 다른 피해 할머니들과 함께 문제 해결과 인권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서로 간 존재도 몰랐던 우리 피해 할머니들은 각자 겪은 참상과 인권유린을 이야기하며 부둥켜안고 눈물로 아픔을 함께 했었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투쟁이 30년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투쟁을 통해 손가락질과 거짓 속에 부끄러웠던 이용수에서 오롯한 내 자신 이용수를 찾았습니다. 먼저가신 피해자 언니들과 함께 이 문제를 저 이용수가 꼭 해결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양국 정부의 무성의와 이리저리 얽힌 국제 관계속에서 그 결실은 아직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번 기자회견과 입장문을 통해 지금까지 해 온 방식으로는 문제의 해결은 여전히 요원하다는 말씀을 감히 국민 여러분께 말씀드리며, 앞으로 개선해야 할 것들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그렇지만 제 기자회견 이후 전개되고 있는 상황은 제가 기대하거나 예상했었던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30년 동지로 믿었던 이들의 행태라고는 감히 믿을 수 없는 일들이 계속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 저는 당혹감과 배신감, 분노 등 여러 가지 감정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저는 두 가지는 꼭 지켜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번 기자회견을 준비했습니다. 저를 비롯한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회복과 일본의 사죄와 배상 및 진상의 공개, 그리고 그 동안 일궈온 투쟁의 성과가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위안부 피해자라는 사실을 고백한 후, 참 힘든 세월을 지내왔습니다만 그럼에도 저는 이 길을 지키기 위해 마음을 부단히 다잡아 왔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서 국민 여러분들께 부탁 아닌 부탁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현재 드러난 문제들은 우리 대한민국이 그동안 이뤄온 시민의식에 기반하여 교정되고 수정되어 갈 거라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미래로 향하는 발걸음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한 길에 '시민 주도 방식', '30년 투쟁의 성과 계승', '과정의 투명성 확보' 3가지 원칙이 지켜지는 전제하에 향후 제가 생각하는 활동 방향을 몇 가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 번째,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이 조속히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랜 세월 가까운 가족에게조차 피해 사실을 밝히지 못했던 많은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방안을 한일 양국 정부와 시민사회가 책임성을 갖고 조속히 같이 머리를 맞대고 만들어 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두 번째, 지난 번 입장문에서도 말씀드렸지만, 한일 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한 구체적 교류 방안 및 양국 국민들 간 공동행동 등 계획을 만들고 추진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 한일 양국을 비롯한 세계 청소년들이 전쟁으로 평화와 인권이 유린됐던 역사를 바탕으로 인류가 나아가야 할 길을 함께 고민하고 체험할 수 있는 평화 인권 교육관 건립을 추진해 나갔으면 합니다.

네 번째,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전문적인 교육과 연구를 진행하고 실질적인 대안과 행동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기구를 새롭게 구성하여 조속히 피해 구제 등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섯 번째, 앞서 말씀드린 것들이 소수 명망가나 외부의 힘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정대협과 정의연이 이뤄온 성과를 바탕으로 우리 국민의 힘으로 새로운 역량을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섯 번째, 이번 사태를 기점으로 개방성과 투명성에 기반한 운영 체계를 갖추기 위한 논의가 이뤄지길 바랍니다. 사업의 선정부터 운영 규정, 시민의 참여 방안, 과정의 공유와 결과의 검증까지 누구라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도록 깊은 논의가 이뤄지길 기대합니다.

마지막으로 말씀드릴 것은, 그동안 이 운동이 시민들의 지지와 성원으로 성장해 온 만큼 시민의 목소리를 모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를 비롯한 활동가, 그리고 국민 여러분 모두가 현재 상황을 어떻게 풀어내야 할 지 당혹스러우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투쟁 과정의 문제들이 공론화되길 기대했던 것인데, 여러 가지 문제가 드러나면서 그 과정이 복잡해질 듯 합니다. 제겐 운동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주셨던 여러분들이 계십니다. 먼저 한 발을 내딛어 새로운 길을 열어오신 분들께서 밝은 지혜로 시민과 함께 문제를 풀어낼 수 있도록 도움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저는 올해 93세입니다. 제게 남은 시간은 별로 없습니다. 어떤 이익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피해자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무력하게 당해야 했던 우리들의 아픔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그리고 미래 우리의 후손들이 가해자이거나 피해자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금 모두가 걱정하고 있는 코로나19바이러스에 대응하는 대한민국 국민은 이미 새로운 길을 만들어나가고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함께 그 길을 닦아나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어느 길에도 오르막과 내리막은 함께 합니다. 중요한 것은 한 걸음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를 위한 모두의 한 걸음을 이제 국민들이 함께 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여성인권운동가 이용수 드림.

관련기사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