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고종관 기자
  • 입력 2020.05.26 11:39

식약처의 판매금지 조치는 절묘한 '선긋기'?

(사진=YTN뉴스 캡처)
(사진=YTN뉴스 캡처)

[뉴스웍스=고종관 기자]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이번에 판매금지 조치한 '메트포르민' 함유 당뇨병 치료제는 모두 22개 제약사의 31개 품목이다. 환자를 비롯한 의료계는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쉴 만하다. 현재 2형 당뇨병 환자의 1차치료제로 처방되는 의약품이 288개 품목에 이르기 때문에 얼마든지 대체처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건의 발단은 싱가포르 보건과학청(HSA)에서 시작됐다. HSA는 지난해 12월 자국내 유통 중인 메트포르민 성분의 당뇨병 치료제 46개 중 3개 품목에서 발암 우려물질 'N-니트로소디메틸아민'(NDMA)이 검출돼 회수조치했다고 발표했다. 이후 캐나다의 3개 제약사가 관련 제품을 자진 회수했고, 이어 인도 제네릭의약품을 만드는 란박시도 2개 제품의 6개 로트에 대해 같은 조치를 취했다.

이번에 판금된 당뇨치료제는 역사가 오랜된만큼 광범위하게 처방되는 약이다. 1959년 선보인 머크의 ‘글루코파지’ 이후 1985년 국내에 출시돼 수많은 국내 제약회사가 제네릭 약을 만들었다.

이번에 식약처가 이 약을 복용하고 있는 환자는 26만명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현재 치료받고 있는 당뇨환자가 500만명이 넘는데다 임상 현장에선 적어도 50~80%의 당뇨환자에게 같은 계열의 약이 처방된다고 얘기되고 있어서다.

이 약이 이렇게 광범위한 1차치료제로 처방되는 것은 대체로 부작용이 적고 긍정적 효과가 많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안전성이 입증된 데다 혈당감소 효과와 낮은 저혈당 위험성, 상대적으로 낮은 체중증가율, 심장혈관 예방효과 등을 꼽을 수 있다. 무엇보다 가격이 싸 환자와 건강보험 재정에 부담이 적다는 것도 장점이다.

그럼에도 일부 부작용 때문에 약을 바꾸는 환자도 있다. 예컨대 울렁거림, 설사와 같은 위장관계 부작용이 그것이다. 보통 복용환자의 20~30%가 이러한 부작용을 경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드물지만 혈액에서 젖산이 축적되는 젖산증을 일으킬 수도 있다.

이번 식약처의 메트포르민 당뇨치료제 판매금지 조치는 고심 끝에 이뤄진 절묘한 ‘선긋기’라는 인상이 짙다.

환자와 제약업계에 가중될 혼란을 피하면서 발암약 시판을 방치했다는 비난을 피하자는 것이다. 지금까지 식약처가 발암가능 의약품으로 곤욕을 치룬 일종의 학습효과다.

실제 지난해 9월 발생한 발암성분 함유 위궤양치료제 라니티딘의 경우, 269개 전 품목을 판매금지시키면서 엄청난 사회적 혼란을 야기했다. 현재 메트포르민 함유 당뇨치료제는 대체 품목이 많아 이러한 전철은 밟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으론 전세계 국가 중 가장 강력한 조치를 내려 사회적 비난을 모면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실제 각국 규제기관은 이 사건을 대체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심지어 미국 식품의약품국(FDA)조차 10개 품목을 조사해 2개 제품에서 소량의 NDMA가 검출됐다고 발표했지만 별다른 조치를 내리지 않았다. 유럽의약품청(EMA)은 공식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다. 발암물질이 하루 허용치를 넘지 않을뿐더러 그 같은 발암물질은 다른 식품의 조리과정에서도 나타날 수 있을 정도라는 뜻이다.

식약처 역시 이번 발표에서 환자 복용량을 최대로 환산해서도 전 생애에 발생할 수 있는 암 발생 가능성이 ‘10만명 중 0.21명’이며, 이는 ‘매우 낮은 수준’의 위해율이라고 밝히고 있다.

발암가능 물질이 어떻게 일부 품목에만 나타났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는 것도 아쉽다. 따라서 일부에선 인도 또는 중국 등 원료물질을 공급하는 생산단계부터 체계적으로 분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재 식약처는 NDMA 검출이 완제의약품 제조과정에서 비롯됐을 거라고 추정할 뿐이다. 과거 원료의약품에서 비롯된 고혈압 치료제 '발사르탄'이나 위장약 '라니티딘' 사태 때와는 다르다는 뜻이다.

식약처는 이에 대해 'NDMA 발생원인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정확한 원인을 조사·분석하겠다고 발표했다. 늘 하던 얘기다.

어찌됐던 식약처의 ‘후약방문식’ 조치가 반복되는 한 피해를 보는 것은 환자와 제약업계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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