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3.28 14:27
매화가 지면 열리는 과실이 바로 매실이다. 그런 매실을 상상으로 그리면서 갈증을 참았다는 이야기가 <삼국지연의>에 나온다. 바로 '그림 속의 떡'과 같은 설정이다. 지하철역 병점은 그런 떡과 관련이 있는 이름이다.

이곳은 충청도와 전라도, 경상도를 일컫는 이른바 ‘삼남(三南)’으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다. 서울에서 남부 지방으로 내려가는 길목에 해당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많은 사람의 발길이 이곳을 거쳤고, 그런 사람들이 먼 길을 이동할 때는 적지 않은 음식이 필요했을 터.

지명 병점(餠店)은 곧이곧대로 풀자면 ‘떡 가게’다. 떡의 한자어가 병(餠)이고, 가게의 한자어가 점(店)이기 때문이다. 餠店(병점)이라는 지명은 그래서 생겼으리라 본다. 먼 길을 이동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음식, 곧 떡을 파는 가게가 많이 들어서서 붙은 이름이리라는 설명이다.

‘떡’은 이제 우리의 생활에서 그를 대체하는 수많은 음식이 생겨나 차츰 그 강렬했던 추억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으나, 한때 우리 생활에서는 아주 소중한 존재였다. 요즘도 설을 맞아 끓여 먹는 떡국으로부터, 생일을 비롯한 각종 잔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각종 떡에서 그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떡을 떡으로 부르면 그만이지, 왜 한자어 餠(병)이 필요할까라는 의문이 들 법도 하다. 중국의 餠(병)은 우리가 떡을 두고 품는 정서와는 조금 다르다. 과거의 중국에서 이 餠(병) 또한 쌀을 이용해 만든 음식의 일종이었으나, 밀이 본격적으로 들어온 다음에는 밀가루를 활용한 다양한 음식으로 발전했다. 따라서 멥쌀과 찹쌀을 기본으로 하는 우리의 떡과는 조금 다르다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이 餠(병)이라는 글자가 우리의 ‘떡’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한자어로 자리 잡았음에는 틀림이 없다. 기독교 성경(聖經)에 등장하는 ‘오병이어(五餠二魚)’의 이야기도 그중의 하나다. 예수가 떡 다섯 개와 두 마리 물고기로 5000여 명을 먹였다는 기적의 스토리 말이다. ‘그림 속의 떡’이라고 하면 실제 소용은 없이 보기에만 그럴듯한 것을 가리킨다. 이 말의 한자 표현은 ‘화중지병(畵中之餠)’이다.

떡을 그려놓고 배고픔을 넘겨보려는 행동도 있다. 이를 중국에서는 ‘畵餠充飢(화병충기)’라고 적는다. 떡(餠)을 그려(畵) 배고픔(飢)을 때우다(充)는 구조다. <삼국지(三國志)>의 주인공 조조(曹操)의 손자이자 위(魏)나라 2대 황제 조예(曹叡)가 대신에게 새로운 사람을 천거하라고 하면서 “이름만 있는 사람은 천거하지 마세요. 이름만을 좇는다면 배고픈 사람이 땅에 떡을 그려놓고 배고픔을 면하려는 짓과 다를 게 없습니다”라고 했던 일화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손자는 할아버지와 다른 것일까. 마침 조조는 군사를 이끌고 행군하다 물이 떨어져 고생한 적이 있다. 병사들이 지쳐가자 조조는 “저 산 너머에 매실이 가득 열려 있다”고 했고, 그 말을 들은 병사들이 매실을 떠올리며 낸 군침 때문에 결국 갈증을 이겼다는 일화가 있다. 성어로 정착한 말이 ‘望梅止渴(망매지갈)’이다.

땅에 떡 그림을 그려 배고픔을 참는 일, 그리고 있지도 않은 산 너머의 매실을 떠올리게 해 갈증을 참게 했던 일이나 본질적인 뜻은 같다. 궁색한 지경을 벗어나려는 일시적인 ‘변통(變通)’이 어느 때에는 통하고, 어느 때엔 부질없는가 보다. 조조는 위급한 경우에서 그 변통을 활용했고, 한 나라의 군주인 그 손자 조예는 변통을 그리 곱게 보지 않았다.

제가 처한 경우가 각각 달랐기 때문이리라. 떡은 실재해야 좋은 것이다. 그림으로 그리는 떡은 환상에 불과하다. 그 떡은 곧 식량이자, 우리 삶의 토대를 이루는 존재이리라. 헛것을 그려 잠시 배고픔을 달래는 식의 미봉책(彌縫策)도 필요하지만, 멀리 길을 가려면 실재하는 무엇인가에 대한 주의가 필요하다.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야 하는 인생의 길이 그럴 것이다.

그나저나 餠店(병점)이라는 한자 이름보다 ‘떡 고을’이 더 좋지 않을까. 그런데 그 ‘떡’이 요즘 우리말 속에서는 상스럽고 이상한 쓰임새로 입에 오르내려 그 또한 마땅찮다. 순수한 우리말은 이런저런 이유로 자꾸 우리의 언어생활을 떠나는가 보다. 그래서 속이 개운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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