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장진혁 기자
  • 입력 2020.05.29 19:30

두산그룹, 알짜 계열사 매각 '고심'…박상덕 연구위원 "문 정부는 이성적 판단 아니라 이념적 판단 내리고 있다"

서울 중구에 소재한 두산타워 전경. (사진제공=두산)
서울 중구에 소재한 두산타워 전경. (사진제공=두산)

[뉴스웍스=장진혁 기자] 두산그룹이 유동성 위기에 놓인 두산중공업의 경영 정상화를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지만 힘에 부치는 모습이다.

두산중공업이 올해 갚아야 할 빚은 총 4조2000억원에 이른다. 전 세계에서 친환경 기조가 확산하면서 화력발전 수요가 줄어든데다 정부의 에너지 전환(탈원전) 정책까지 더해져 경영 위기에 직면했다.

채권단은 지금까지 두산중공업에 총 2조4000억원을 투입했다. 두산중공업의 대주주인 두산그룹은 대출 약정에 대한 담보 제공을 결정했다. 두산그룹이 보유한 두산중공업 보통주식을 비롯해 다른 주식과 부동산 등을 담보로 제공한다.

현재 정부와 채권단은 두산중공업에 1조원 가량의 추가 지원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일 두산중공업이 이번에 1조원의 자금을 추가로 받게 되면 두산중공업에 대한 지원금액은 총 3조4000억원으로 늘어난다.

두산그룹은 유동성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앞서 두산그룹은 지난달 말 자산매각, 제반 비용 축소 등을 통해 3조원 이상을 확보하겠다는 내용의 최종 자구안을 확정하고 채권단에 제출한 바 있다.

현재 채권단은 약속한 3조원의 유동성 확보를 위해 알짜 계열사들을 매각 대상에 포함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두산솔루스·두산타워 팔아도 3조에 못 미쳐

핵심 계열사와 부동산 매각설이 잇따라 제기되는 가운데, 두산그룹의 고심은 나날이 깊어지고 있다. 섣부른 매각은 기업의 경쟁력과 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미래 성장 가능성도 저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두산솔루스와 두산퓨어셀, 두산타워, 산업차량, 모트롤, 골프장 등이 매각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특히 시장에서는 전지박·전자·바이오 소재 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두산솔루스 매각을 주목하고 있다.

두산그룹은 두산솔루스 지분 전량(61%) 매각을 추진 중이다. 두산솔루스는 ㈜두산(17%)과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등 주요 주주를 포함한 특수관계인(44%)들이 지분 61%를 갖고 있다.

채권단은 두산그룹이 제시한 자산을 모두 판다 해도 3조원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두산솔루스의 매각가는 7000~8000억원 사이며, 두산타워도 8000억원 정도를 호가하지만 담보 등을 제외하면 실제 금액은 1000억원 안팎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두산베어스 야구단 매각설까지 불거졌다. 최근 채권단이 고강도 자구안 마련을 압박하기 위해 두산그룹에게 있어 상징성이 큰 두산베어스를 협상 카드로 꺼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두산그룹 측은 "두산베어스 매각 계획이 없다"고 바로 선을 그었다.

두산인프라코어나 두산밥캣 등 그룹 내 알짜 계열사 매각을 놓고 채권단과 두산그룹 간 신경전이 펼쳐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두산중공업의 경영 정상화 방안 확정도 최대한 미뤄질 것으로 관측된다.

◆두산중공업, 미래 혁신기술로 사업구조 재편…"당장 수익성 낮아"

모든 계열사가 매각 대상으로 거론될 정도로 두산중공업은 그 저력과 미래 가치가 크다고 평가받고 있다. 두산중공업은 국내 유일의 원전 핵심기기 생산업체로서의 강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두산그룹은 지난 2001년 발전·담수 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을 시작으로, 2003년 고려산업개발(현 두산건설), 2005년 건설기계장비 사업 중심의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 등을 사들였다. 2007년에는 소형 건설장비 부문 세계 1위인 밥캣(현 두산밥캣)을 인수함으로써 소형부터 중대형에 이르는 제품군을 갖춘 글로벌 건설장비 기업으로 도약을 꿈꿨다.

두산그룹은 산업기반시설, 건설기계 장비, 에너지, 생산설비까지 아우르는 중공업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전환하면서 2000년 3조4000억원이던 매출을 지난 2018년에는 18조2000억원으로 끌어올렸다.

반면 두산중공업은 2012년 가장 좋은 실적을 기록한 이후 매년 실적이 악화하는 실정이다. 현재는 탈원전 정책 기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미래 혁신기술로의 사업구조 재편에 힘을 쏟고 있다.

두산중공업은 가스터빈 발전사업과 신재생에너지 사업 등 두 분야를 큰 축으로 내세웠다. 두산중공업 관계자는 "친환경 미래형 고부가가치 사업인 두 사업을 주축으로 '파워 솔루션 프로바이더'로서의 입지를 강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두산중공업 직원들이 발전용 대형 가스터빈의 최종 조립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공=두산중공업)
두산중공업 직원들이 발전용 대형 가스터빈의 최종 조립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공=두산중공업)

지난해 세계 다섯 번째로 독자개발에 성공한 한국형 가스터빈은 현재 성능시험 중이며 실증화 작업을 거쳐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게 될 예정이다. 세계 가스터빈 발전시장 규모는 2018년 기준 97조원이며 2035년에는 이의 두 배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성장성이 높은 가운데 독자적으로 제작할 수 있는 기업이 적어서 향후 두산중공업의 주력사업으로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가스터빈 사업은 부품교체 및 유지보수 수요가 많은 특징 때문에 안정적 매출이 가능한 것이 장점이다. 가스터빈 독자 개발 과정에서 얻게 된 특수금속소재 3D프린팅 기술을 토대로 한 신사업도 추진된다.

두산중공업은 풍력, 에너지저장장치(ESS) 같은 기존 사업을 확대하는 한편 친환경 수력발전사업, 태양광 EPC사업 등을 추진하고 수소 생산 및 액화 등 수소산업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일각에서는 두산중공업이 추진하는 가스터빈 발전사업과 신재생에너지 사업이 당장은 수익성이 높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 확실한 먹거리인 원자력으로 회사를 먹여 살리면서 가스터빈 시장에 안착할 수 있는 전략적 기회를 노려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경남 지역경제 살리기위해서라도 탈원전 정책 폐기할 때"

두산중공업이 경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폐기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치명성, 국민의 생명·안전 등을 이유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17년 6월 19일 "준비 중인 신규 원전 건설계획을 전면 백지화하고 원전의 설계 수명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탈원전 정책을 추진할 것임을 천명한 셈이다.

문제는 탈원전 정책 추진 과정에서 발생할 에너지 비용 상승 등 각종 문제들에 대해 구체적인 대안은 여전히 없다는 데 있다. 정부는 원전 해체를 미래 먹거리로 적극 육성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한계가 분명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원전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 원전 건설 중단으로 해외 원전 수주가 힘들어지며, 설령 수주에 성공한다해도 그 수행이 어려워진다"면서 "원전 해체사업도 산업기반 와해로 해외업체로 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두산중공업은 신한울 3·4호기와 관련, 지난 2018년 3월 한전기술과 종합설계용역 계약을 맺었고 지난해 2월 발전사업허가를 취득했다. 당시 계획대로라면 신한울 3호기는 2022년 12월, 4호기는 2023년 12월 공사에 들어가야 한다.

두산중공업 창원공장 전경. (사진제공=두산중공업)
두산중공업 창원공장 전경. (사진제공=두산중공업)

현재는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따라 해당 절차는 멈춰선 상태다.

원전업계에 따르면 두산중공업의 원전 건설과 관련한 협력사는 460여개에 이르고, 관련 일자리는 3만여개에 달한다. 두산중공업 창원공장은 창원지역 총생산의 15.4%, 제조업 종사자의 5.7%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한울 3·4호기 건설 중단은 두산중공업뿐만 아니라 협력사와 창원지역 경제에도 치명타를 가할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경상남도 창원시를 지역구로 둔 미래통합당 국회의원 5명 전원은 지난 22일 두산중공업의 경영 위기 해결을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냈다. 박완수(의창), 윤한홍(마산회원), 강기윤(성산), 이달곤(진해), 최형두(마산합포) 의원이 성명서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두산중공업을 비롯한 창원, 경남의 산업위기 극복해법은 탈원전 정책 폐기에 있다"며 "에너지 산업 근간을 흔들고, 세계 최고 원전기업을 사지로 내모는 졸속 원전정책을 중단하고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즉각 재개해야 한다"고 정부·집권 여당에 촉구했다.

서울대학교 원자력정책센터는 최근 한국갤럽에 의뢰해 총선 이후 원자력에 대한 국민 여론을 조사했다. 이 조사는 지난 12일부터 14일까지 전국 성인 1000명 대상 전화조사 방식으로 진행됐다.

조사 결과, 국민 10명 중 6명은 원자력 발전 이용에 긍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참여자의 66%가 찬성한다고 답했고, 반대는 21%에 불과했다.

박상덕 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 수석연구위원은 뉴스웍스와의 통화에서 "문재인 정부는 이성적 판단 아니라 이념적 판단을 내리고 있다"면서 "지금이라도 전향적인 자세로 탈원전에 의해 중지된 신한울 3·4호기를 건설하는 길만이 40년간 쌓아온 기술의 붕괴를 막고 인프라를 유지하는 길이라는 점을 알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