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현건 기자
  • 입력 2020.05.31 14:05

노동계 "구의역 참사 막을 '중대기업 처벌법' 제정 요구"…재계 "처벌 강화보다 사고예방 활동 더 중요"

(사진=전현건 기자)
국회의사당 전경. (사진=전현건 기자)

[뉴스웍스=전현건 기자] 지난 5월 28일은 서울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사고로 숨진 김 군의 4주기였다.

김 군의 사망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다. 당시 서울메트로 하청업체인 은성피에스디(PSD) 소속 비정규직 수리공이었던 19살 김군은 '2인 1조' 이상 근무가 원칙임에도 불구하고 사업소의 지시에 따라 스크린도어를 수리하기 위해 홀로 출동했다 

또 스크린도어 개폐 시에는 역무실·전자운영실과의 출동보고 작업 전 보고 등 소통이 이뤄져야 하지만 사실상 사문화된 절차인 탓에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결국 열차는 예정대로 역으로 진입했고 이를 피하지 못한 김군은 그대로 목숨을 잃고 말았다.

당시 서울시 구의역 사고 진상규명위원회가 작성한 사고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구의역 사건은 원청인 서울메트로가 비용 절감을 위해 4~6명의 하청업체 직원에게 48개 역을 담당하게 해 사실상 1인 근무 시스템을 만든 것이었다.

이같은 사고는 김군이 사고를 당하기 전인 앞서 2013년 성수역과 2015년 강남역에서도 반복됐지만 서울교통공사는 하청업체의 책임으로 몰았다. 특히 서울교통공사의 이같은 인식은 지하철 내 스크린에서 나온 광고에도 나타났는데, 김군의 사망을 '개인의 부주의로 인한 사고'로 표현해 논란이 된 바 있다. 사업주는 사실상 중대재해 가능성을 알면서도 각종 설비을 안전하게 점검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지 않고도 이에 대한 책임을 노동자에게 몬 셈이다.

이 사건과 관련, 안전관리 책임 의무를 다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된 이정원 전 서울메트로 대표와 은성PSD의 대표는 각각 벌금 1000만원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고, 이는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2017년 기준 10년간 4만2000건에 달하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례 중 책임자 구속은 단 9건에 불과한 것에 비하면, 구의역 참사는 이전의 산재 사고와는 다른 판결이 내려졌다. 노동계는 중대산재 사망사고를 야기한 사업주에 대한 처벌 수준은 여전히 미약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중대기업 처벌법 일명 '노회찬법' 사실상 폐기

구의역 참사같은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지난 2017년 4월 고(故) 노회찬 정의당 의원은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을 발의했다. 앞서 태안화력발전소, 서울 메트로, 환영철강 등 피해자들은 있지만 가해자는 없는 시스템 자체를 바꾸자는 취지다.

대형재해는 대체로 기업의 위험관리시스템 부재 등에서 오는 경우가 많지만 현행 법으로는 안전관리 주체인 경영자에게 책임을 묻기 어려운 상황이다.

노 의원은 당시 "현대 사회에서 재해사고는 성과를 위해 사람의 안전을 소홀히 하는 기업의 조직문화와 제도가 낳은 결과"라며 "세월호 참사와 같은 중대 재해의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기업의 안전관리의무를 명확히 규정하고, 이를 위반한 때에는 경영자와 기업에게 무거운 책임을 지도록 하는 입법이 필수적"이라고 입법 취지를 밝힌 바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공중이용시설 및 공중교통수단을 소유. 운영, 관리하는 경우, 사업장 및 시설을 이용하는 시민·노동자 등 모든 사람에 대한 위험방지의무 ▲사업장에서 취급하거나 생산·판매·유통 중인 원료나 제조물로 인해 시민·노동자 등 모든 사람이 위해를 입지 않도록 할 위험방지의무를 부과 등의 내용이 담겼다.

특히 사업주 및 경영자가 이러한 의무를 어겨 인명사고가 일어나거나, 상해가 일어나면 형사처벌 대상이 되고, 경영자가 명시적·묵시적으로 위험 방지 의무를 소홀히 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확인되면 해당 기업의 전년도 수입액의 10분의 1 범위 내에서 벌금을 가중하는 등의 내용도 담겼다.

이 법은 2017년 9월 법제사법위원회 전체 회의에 상정됨에 따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 가시화되는 듯했다. 

하지만 이 법은 발의된 지 3년에 다다르는 동안 소관 상임위 문턱도 넘지 못하고 말았다. 더불어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가 지난 20일 마무리되면서 자동 폐기될 예정이다.

(사진=전현건 기자)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와 공공운수노조 소속 발전·집배노조 노동자 등은 27일 국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산재는 살인이다, 살인기업 처벌하라"며 "위험의 외주화 중단하고 건강권을 쟁취하자"고 촉구했다. (사진=전현건 기자)

21대 국회,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처리할까…처벌만이 보단 예방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이같은 반복되는 참사를 막기 위해 노동계와 시민사회는 21대 국회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입법 쟁취를 꾀하고 있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136개(20년 5월 26일 기준) 단체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운동본부'라는 범 시민사회 운동본부를 지난 27일 발족했다.

본부는 "솜방망이 처벌로는 안전을 위한 조치를 비용으로만 여기는 기업과 정부의 탐욕을 제어할 수 없다"며 "숱한 죽음을 딛고 우리가 깨달은 것은 제대로 된 처벌 없이는 재발 방지도, 온전한 피해자 권리 보장도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노동계가 추진 중인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사용자에 대한 처벌 범위와 수위를 대폭 늘리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른바 '김용균법'이라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보다도 처벌 수위가 높다.

김용균 법이라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은 원청 사업주가 안전 조치 의무를 위반할 경우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벌금의 형을 받도록 했다. 기존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서 높아진 것이다. 노동자가 사망할 경우엔 7년 이하 징역이나 1억원 이하 벌금의 처벌을 받게 된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서는 처벌 범위가 넓어지고 강도도 더 세졌다. 원청 사업주는 물론 경영 책임자에게까지 3년 이상의 징역이나 5억원 이하의 벌금을 처하도록 한다.

지난 1월 산업재해에 대한 사업주의 처벌을 강화한 새 산업안전보건법이 시행된 지 반년도 안 됐지만, 지금보다 처벌 강도를 더욱 높여야 한다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노동계의 요구는 거세지고 있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도 지난 28일 정책조정회의에서 "'김용균법'이라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법이 올해부터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작업현장의 현실은 아직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원내대표는 "민주당은 연구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산재예방을 위한 법과 제도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며 "정부와 협의해서 산업안전 인력과 예산도 확충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안전한 일터를 위해서는 사법부의 변화도 필요하다"면서 "산재 사건의 경우 법에 비해서 법원의 선고 형량이 너무 가볍다. 사망사고조차 집행유예나 벌금으로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산업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려면 솜방망이 처벌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산재 사망사고에 대한 양형기준 상향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저도 정부의 의견에 동의한다. 대법원의 검토를 바란다"고 전했다.

산업재해는 처벌보다 예방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실제 지난 1월, 산업재해에 대한 사업주의 처벌을 강화하는 새 산업안전보건법이 시행됐지만 산업재해는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경영계는 과잉형벌의 문제를 지적한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처벌 대상에 최고경영자 등 안전업무와 관련이 없는 법인의 모든 이사를 포함하는 것은 전과자 양산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경영계 관계자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기업 대표에 대한 과한 처벌만 있을 뿐 예방은 없다"며 "산재에 대해 최고경영자까지 형사책임을 묻기에는 무리한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사후 처벌이 아닌 사전 예방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한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선진국에서 배워야 할 것은 강한 처벌 수준만이 아니라 산재예방행정시스템"이라며 "한국은 감독관의 전문성도 떨어지고 법 내용도 추상적이라는 평가가 많다"고 전했다.

그는 "산재 예방 시스템을 높이지 않은 채 사용자 처벌만을 강화하는 것은 ‘공부할 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아이를 다그치기만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전승태 한국경영자총협회 산업안전팀장은 "처벌만 강화한다고 해서 산업재해가 예방되는건 아니다"라며 "처벌 강화 등에 집중할 게 아니라 사고예방 활동이 현장에서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에 대한 철저한 관리감독이 더 필요하다"고 밝혔다.

영국은 벌금 최대 300억원…산재 사고사망자 감소

기업 처벌이 강화된 이후 산재 사고사망자가 감소한 나라가 있다. 바로 영국이다.

영국은 경영자가 아닌 '법인'을 범죄 주체로 보고 과실치사, 과실치상에 대해 형사책임을 묻는 '기업살인법'(Corporate Manslaughter and Corporate Homicide Act 2007,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을 2007년에 제정하고 그 다음해부터 시행했다. 

이 법은 매출 규모에 따라 벌금 양형이 정해진다. 매출 규모가 5000만파운드(한화 755억원) 이상 기업의 상한은 최대 2000만파운드(약 302억원)이다. 

노동자 1명이 숨졌던 첫 사건에서 소속 기업(Cotswold Geotechnical Holdings)에게 연매출액의 250%에 38만5000파운드(5억8100만원) 해당하는 벌금이 선고됐다.

당시 재판부는 벌금 때문에 회사가 파산하더라도 "피할 수 없고, 필연적" 이라고 말했다.

영국 산재 사고 사망자는 2007~2008년 180명에서 2018~2019년 147명으로 줄었다. 안전보건법령 위반으로 기소된 사건 중 유죄 판결 건수는 2018~2019년 364건, 같은 기간 벌금 총액은 한화로 약 854억원이다. 이후 영국은 10만 명 당 0.7명이었던 사망 노동자 비율이 10년 만에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영국 기업살인법의 특징은 산재 사망이 발생할 경우 기업 뿐만 아니라 정부 기관도 처벌한다는 점이다. 기업살인법이 정한 처벌 대상은 정부조직, 지역경찰, 노동조합, 사용자협의회까지 과실치사 및 살인 행위의 주체로 보는 대상 범위가 상당히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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