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0.06.01 11:18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전문위원 이재무.
이재무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전문위원

지난 5월 24일 '운암 김성숙 선생 기념사업회'가 주최한 '2020친일과 항일의 현장, 현충원 역사 바로 세우기' 행사에 참석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이수진 21대 국회의원 당선인들이 현충원에 묻혀 있는 친일 행적자들의 파묘에 관해 언급한 사실이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일부 보수단체들은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의 무덤을 파헤치자는 것이냐'며 반발했으며, 보수정당 인사들은 과거에 얽매여 국론을 분열시킨다거나 부관참시에 비유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한국전쟁의 영웅으로 일컬어지는 백선엽 장군의 현충원 안장 문제가 가세되면서 논란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그런데 필자가 직접 동석해 청취했지만, 행사에 참여했던 두 사람의 국회의원 당선자들은 두 전임 대통령에 관련해 파묘는 고사하고 아예 거론조차 한 바 없다. 또한 친일파 파묘 역시 무조건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백선엽 장군과 같이 문제가 생길 여지가 있는 경우 공론화 과정을 거쳐 공과 과를 따지고 합리적 법 절차에 따라 조치돼야 한다고 천명했다. 따라서 파묘를 반대하는 측의 주장은 지레짐작일 뿐이며, 논쟁을 만들기 위한 일부 언론의 부추기기에 불과하다.

오히려 '친일'이라는 반민족 행위자들에 대한 당연한 징치를 반대하는 이들의 언행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일본제국주의는 자신들의 욕망에만 충실하여 셀 수 없이 많은 우리 민족을 억압하고 비참하게 유린했다. 친일파들은 이렇게 일방적으로 자행된 잔인한 폭거와 살인행위에 동조한 자들이다. 이보다 중요한 사실이 필요한가? 그래서 친일 청산은 좌우 정치적 논리를 들이댈 사안이 아니며 국론을 분열시킨다는 주장은 괴이하기 그지없는 잡설일 수밖에 없다. 

시대적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친일을 했지만 차후 국가적 공로가 인정돼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100명을 죽인 연쇄살인마가 100명의 목숨을 구했다고 죄가 상쇄될 수는 없다. 또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은 그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도 가족과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우리나라 독립에 헌신했다. 따라서 '시대적 상황론'은 변명이 될 수 없다.

자꾸 과거에 매몰된다는 주장도 전혀 수긍할 수 없다. 오래전 심각하게 아팠던 사람은 앓았던 병증을 깨끗하게 제거한 상태에서 건강한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여전히 친일파 후손들이 떵떵거리고 부귀영화를 누리고, 독립유공자들과 같은 터에서 편안하게 안장돼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지금은 더욱 적극적으로 과거 바로잡기에 나서야 할 시기다.

전술한 논리를 근거로 친일파 무덤의 파묘는 모욕적 처사가 아니라고 확신하며, 민족의 정기를 올바로 세우기 위한 지극히 순리적인 이장이라고 판단한다. 그래도 현충원에 끝까지 있고 싶다면 별도의 영역을 조성해 '친일논란이 있는 사람들의 묘역'이라 지칭하고 거기로 모두 이장하는 방법도 합리적 방법이 될 것이라고 제안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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